브런치북 유년시절 08화

우리 엄마는 이상해

by 기억수집가

#음료수

더운 여름 우린 학교에서 돌아오면 무조건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녹강(물을 저장해 놓는 수조)의 물을 퍼서 세수를 했다. 그런 후 미숫가루나 미제 분말주스를 타 먹기도 했다. 그것은 이 더운 날 이 낙도 없다면 학교를 어떻게 다닐까 싶을 만큼 맛있었다.


미숫가루 먹는 방법이 따로 있는데, 양을 너무 많이 잡으면 텁텁하고 너무 적게 잡으면 밍밍하다. 텁텁하면 물을 더 잡으면 되지만 미숫가루를 더 넣어야 할 때는 숟갈에 붙고 컵에 몽글몽글 떠있기도 해서 처음부터 양 조절을 잘해야 한다. 그게 대략 티스푼으로 수북하게 떠서 4 개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적당량의 설탕을 넣고 저은 후 벌컥벌컥 다 마셔주는 게 아니라 일부는 밑에 가라앉혀준다. 그런 후 그 걸쭉한 걸 숟갈로 떠먹으면 고소하고 달콤한 게 맛있었다.


하지만 미숫가루를 제친 새로운 맛이 등장했는데 그건 미제 분말주스다. 약간 입자가 굵은 오렌지 빛깔을 띠고 있었는데 아마도 아는 사람은 할 것이다. 역시 적당량의 설탕을 넣고 마시면 되는데 개운하고 상쾌한 것이 고소하지만 텁텁한 미숫가루보다 낫다. 물론 얼마 안 있어 ‘환*’와 ‘오란*’란 과일 맛이 나는 청량음료가 그것을 이겨 버렸지만. 이 둘도 쌍벽을 이루며 서로 내 맛이 더 잘났니, 네 맛이 더 잘났니 싸우느라 피곤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능가할만한 새로운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건 당시 현모양처의 아이콘이라고 할 만한 배우 태현실 씨를 앞세운 얇고 조그만 플라스틱 병에 담긴 살색의 *쿠르트다. 아마도 그게 우리나라의 처음 요구르트는 아닐까 싶다. 엄마는 그것을 우리 넷을 위해 4병을 배달시켜 먹도록 했다. 당신과 아버지는 안 드셨던 것이다. 우린 그게 얼마나 맛있던지 학교에서도 온통 그 생각뿐이다. 학교가 끝나면 그것을 마실 생각에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빨랐다. 하지만 엄마는 뭐 때문인지 몇 개월 후에 그것을 끊었다. 안 그래도 너무 잘 먹어 건강한데 뭘 그것까지 먹이나 아차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쉽긴 했지만 우리는 감히 엄마의 그런 결정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엄마는 화만 났다 하면 쳐 먹기만 하고 속만 썩인다고 우릴 불효자로 매도하는데 우리가 무슨 권리로 그걸 끊으면 안 된다고 항의하겠는가. 그런데 엄마는 참 이상했다. 좋다고 이것저것 신나게 먹일 땐 언제고 화만 났다 하면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공들여 챙겨 먹이면 먹인 만큼 우리가 공부를 잘하던가 잘하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싹이 보이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면 좀 덜 먹이던가. 그때 먹었던 거 살로도 안 갔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요즘 나오는 음료수에 비하면 맛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 시절 모든 음료의 제왕은 **콜라는 아니었을까? 그건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주 특별한 때가 아니면 못 먹는 음료다. 그걸 마시고 트름이라도 할리치면 코가 비틀어질 정도로 톡 쏘긴 하지만 그맛에 먹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엄마가 탄산음료를 못 먹게 하는 바람에 그건 우리 집에서 정말 귀한 음료였다.


#10분

광희동엔 초등학교가 없어서 장충동에 있는 장충 초등학교를 다녔다. 가끔 어른들이 집에서 학교까지 얼마나 걸 리냐고 물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그냥 어림잡아 10분쯤 걷는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림없는 소리다. 같은 구역을 다니면 모를까 옆 동네를 더구나 보폭이 짧은 어린아이가 무슨 수로 10분 만에 걷는단 말인가. 못해도 20분 정도는 걸리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우린 항상 그렇게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옛날 어르신한테 길을 물어보면 무조건 조금만 걸으면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면 그 조금만이 어느 정돈지 감이 잘 안 온다. 그건 아이도 마찬가지다. 걷는 속도와 시간 감각이 아직 덜 발달된 어린아이는 그저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게 되는 것이다.


#이층 양옥

우리 집은 그다지 잘 사는 집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TV와 냉장고가 있고, 피아노와 오븐이 있으면 잘 사는 집안이라는 것에 쉬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거의 대부분의 집들이 기와집이었다. 우리 집도 기와집인데 우리 집이 뭐 그리 잘 사는 집안이겠는가. 그 무렵 막 사귀기 시작한 학교 친구들 사이에선 공공연하게 너는 어떤 집에서 사느냐는 질문이 유행이었다. 그러면 대부분이 기와집에서 산다고 대답하곤 했는데 그러면 보통으로 산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층 양옥쯤 돼야 잘 사는 집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를 가기 전에는 이층 양옥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학교를 가려면 장충동으로 넘어가는 제법 넓은 언덕길이 하나 나오는데 거기에 잘 빠진 이층 양옥 두 채가 나란히 있었다. 도대체 저런 집엔 누가 사는지 궁금했고 기와집에 보통으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볼 품 없이 사는 것인지 알 것도 같았다. 또한 보면서 나는 평생 저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아득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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