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년시절 09화

불량식품은 맛있어

대담한 탐식

by 기억수집가

#석유난로

우리 집엔 일제 석유난로가 있었다. 가운데 까까머리 중학생 같기도 하고, 전구 같기도 한 동그란 모양의 구가 불뚝 솟아있었는데 아래쪽에 심지에 불을 붙여 사용하는 것이다. 겉은 철망 덮개가 씌워 있었다. 우린 가끔 밤에 출출해지면 그 위에 가래떡을 구워 먹거나 삶은 고구마를 올려놨다 먹기도 했고, 찌개나 국을 덥혀 먹기도 했는데 그게 꼭 무슨 간이 부엌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뻥튀기와 강냉이

사실 엄마의 먹거리 정책이 일관성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길거리 간식이 불량하다면 아예 못 먹게 해야 하는데 몇 가지는 허락이 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게 강냉이와 동그랗게 생긴 뻥튀기 또는 일명 뻥과자는 허용됐다. 그건 당신도 좋아했으니까. 뻥튀기와 쌀 뻥튀기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 사용한다는 점에서 같은 의미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좀 다르다. 쌀 뻥튀기는 무슨 그물처럼 만든 관에서 그야말로 뻥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 쌀 낱알이 두세 배 커져서 튄다. 놀랄까 봐 아저씨가 주의를 주기도 한다. 그럼 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귀를 막기도 하고 후에 흩어진 낱알을 주워 먹느라 바쁘다. 지금도 시골 장날 같은 곳에서 하지 않을까?


동그란 뻥튀기는 무슨 뚜껑 달린 조그맣고 까만 프라이팬 같이 생긴 것이 여러 개가 있어 거기에 쌀을 몇 알씩 넣고 뚜껑을 닿으면 희한하게도 뻥하고 터지는 순간 동그랗게 퍼지는 방식이다. 그 뻥튀기는 따로 쌀을 맡길 필요 없이 돈만 내면 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쌀 뻥튀기 보단 이 뻥튀기가 좋아서 일부러 시구문에 있는 시장까지 가서 사 가지고 온 적도 있다. 거긴 또 미리 해 놓는 법이 없다. 꼭 돈을 미리 내야 한다. 그게 무겁지는 않은데 부피가 있어 덩치가 작은 나는 눈앞의 시야를 가리도 한다. 그러면 넘어지지 않으려고 고개가 삐뚤어지고 집까지 애 좀 먹었다. 지금은 공장에서 아예 봉지에 담아 나오지만 그땐 리어카를 개조해 개인으로 했다.


강냉이는 주로 빈병들과 바꿔 먹었는데 고물 장수 아저씨가 리어카를 끌고 투박하게 생긴 놋쇠 가위를 요란하게 울리며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러면 주로 동네 아낙들이 부지런히 나와 안 쓰는 물건들과 바꾸는 것이다. 안 쓰는 물건과 바꾸는 게 강냉이라니. 조금 억울할 법 도한데 그땐 안 쓰는 물건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강냉이라도 바꿔먹으면 그게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모험 쟁이였던 오빠는 강냉이가 먹고 싶어 엄마 몰래 책을 팔기도 했다.


#풀빵

어느 날 풀빵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의 붕어빵의 시조라고나 할까? 초등학교 2학년 때 집 앞 포장마차에서 팔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우린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엄마가 예의 불량 식품군에 속한다고 판단해서 못 먹게 했다. 그래도 이게 어떤 맛일지 궁금해 나중엔 사 먹기 시작했다.


붕어 모양의 틀에 무슨 밀가루 풀 같이 생긴 반죽을 넣고 팥소를 넣고 구워주는데 식감이 그야말로 붕어다. 그나마 방금 구워내면 가장자리가 약간은 바삭했지만 식으면 밀가루 풀처럼 흐물흐물해진다고 해서 풀빵이라고 했던 것 같다. 비싼 설탕 대신 사카린을 넣었는데 그것도 없어서 못 먹는 간식이다. 지금의 붕어빵은 겨울 한철 장사지만 그때는 한 여름에도 팔아었다. 그 풀빵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먹는 붕어빵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생각한다.


#달고나

길거리 간식의 왕좌는 단연 연탄불 위에 국자를 올리고 설탕과 소다를 넣어 만든 달고나는 아닐까 싶다. 다르게는 뽑기라고도 불렸는데, 뜨겁게 달궈진 달고나를 식기 전에 판에 옮겨 동그랗고 납작한 도구로 눌러 편 다음 여러 가지 모양의 틀을 새겨 그것을 깨지지 않게 잘 오려 보여주면 달고나를 하나 더 먹을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게 워낙 잘 깨지고 부서져 성공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국자의 달고나는 나무젓가락으로 긁어먹기도 한다. 그런데 그거야 말로 비위생적인 것 같긴 하다. 나중에 다 먹으면 아저씨가 물을 부어 그 단물까지 마실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그걸 또 물이 담긴 큰 양재기에 집어넣지만 결코 그것을 다시 맑은 물로 헹구는 법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골목 한쪽 귀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하는 장산데 깨끗한 물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러니 이거야 말로 우리들에게 금단의 간식이었다. 이래서 아이들 간식엔 부모의 지도편달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바깥에서 못 먹으면 집에서라도 먹으면 좋으련만 엄마는 이가 썩고 국자를 못 쓰게 만든다고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달콤한 걸 안 먹을 우리가 아니었다. 엄마가 외출한 틈을 타 국자를 몇 개 태워 먹기도 했다. 하지만 우린 생각보다 그리 심하게 혼나진 않았다. 엄마는 잘한 건 아니지만 길에서 먹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모르긴 해도 당시 국자가 생각 보다 심하게 비싸지 않은 이유도 있지 않을까.


#떡볶이

난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친구 따라 포장마차에서 파는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내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친구가 그것을 먹으면 못 먹게 말렸다. 우리 엄마가 먹지 말라고 그랬다며. 하지만 친구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질 못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맛있는 걸 안 먹다니 하는 눈치였다. 하긴 그건 정말 우리 집안에서나 통할 말이지 집 밖에서 그러면 오히려 미움받는다.


결국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 따라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 맛이 나쁘지 않았다. 내친김에 오뎅이라고 불리는 어묵도 먹고. 과연 이 맛에 학교 다니는구나 했다. 확실히 초등학교 2학년은 1학년 보다 컸다. 나중엔 대담하게 핫도그도 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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