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
2학년이 되고 어느 날 두통이 있어 조퇴를 했다. 복도를 나가는데 어디선가 1학년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그 목소리를 듣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선생님도 1학년에 이어 2학년을 맡으셨는데 나는 선생님 반에 들어가지 못해 이렇게 바깥에서 목소리나 듣고 있는 신세가 되어 아프기도 하고 좀 서러운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1학년 마지막 날 몇몇 아이들은 선생님과 같은 반이 되어 좋아라 했다. 그중 나와 이름이 같은 새침한 그 아이도 선생님 반이 되었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혹시 나와 헷갈린 건 아닐까? 왜 쟤는 되고 나는 안 됐을까 뭔가 소외감이 들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나한테 그렇게 살갑게 대해 주신 것도 아닌데 지나 놓고 나니 그만도 정이 들었나 보다. 선생님은 하교 때면 교문까지 배웅을 나와 아이들의 머리를 하나라도 더 만져 주시려고 바빴다. 아마도 선생님의 그 만짐이 좋아 일 부러 머리를 들이밀거나 쭈뼛대며 기다리는 아이도 있었을 것이다.
학교를 처음 들어가면 선생님께 어떻게 인사하라는 지침이 있었는데 그게 “선생님, 안녕.”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좀 닭살이 돋다 못해 버릇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세상에 어떤 제자가 선생님께 그런 인사를 하겠는가. 그냥 초등학교 1학년 귀엽고, 선생님 어려워하지 말라고 그렇게 한 것이겠지. 실제로 그렇게 인사를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선생님 안녕은 그렇게 복도에 흘러나온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대뇌면서 하는 것은 아닐까. 안녕하신지, 평안하신 지 선생님과 함께 보냈던 지난 1년을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고사떡
엄마는 매년 가을이면 고사를 지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밑이 구멍이 숭숭 뚫린 제법 큰 시루에 하얀 쌀가루와 팥을 켜켜이 쌓아 김이 모락모락 나고 고슬고슬한 시루떡을 쪄냈다. 그것을 큼지막하게 썰어 접시에 담아 집 여기저기에 놓고 손바닥을 돌려가며 집안의 무사안녕을 빌었다. 그게 어린 나의 눈에도 참 신심 있어 보였다. 그때 우리 집이 특별히 이렇다 할 신앙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다. 때문에 고사를 지내면 누구에게 지내는지 그 대상도 알 수가 없었다. 있다면 집 귀신이었을까? 좀 여유가 있으면 돼지고기 편육도 했던 것 같다.
고삿 날은 좀 특별하긴 했다. 떡을 흔하게 먹고살았던 시절이 아니니 그때가 아니 면언제 떡을 먹을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문제는 엄마가 집안 곳곳에 떡을 놔뒀는데 변소에도 놔뒀다는 것이다. 고사가 끝나고 떡을 먹는데 과연 이 변소에 둔 떡을 먹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이었다. 정말 변소에도 신이 있다면 섭섭하실 일이긴 할 것이다. 내가 뭐 어때서 나한테 바친 떡은 안 먹겠다는 거냐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건 크게 걱정할 일이 못됐다. 알뜰한 엄마가 그 떡을 버릴 리는 없고, 나중에 고사가 끝나고 큰 양재기에 여기저기 바쳤던 떡을 한꺼번에 쏟아 놓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떡이 어디에 두었던 떡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엄마가 언제 우리가 걱정하는 걸 알아주기나 했나? 다 같지 않다고 멋대로 하기 대마왕이 된지도 오래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내 입에 떡 들어가면 그만이다. 고사는 일종의 풍습 같은 것이라 우리 집뿐 아니라 다른 집에서도 했고 이웃끼리 서로 나눠 먹기도 했다. 그때 휩쓸려 갔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엄마는 이 고사를 꽤 오래 기간 지냈다. 언젠가 엄마는 그때를 떠올리며,
“근데 참 이상하지? 광희동 땐 시루떡이 그렇게 잘 되더니 이사하고는 죽어라고 안 되더라. 이사하고 첫 고사를 드리는데 지하실에서 연탄 화로에 떡을 찌는데 그땐 외할머니도 와 계셨거든. 근데 그렇게 안 되더라고. 떡이 막 설익고. 그 이후에도 번번이. 그리고 나선 점점 고사도 멀어졌지.”
듣고 보니 그것도 집을 타나 싶다.
언젠가 엄마는 고사 지내는 게 참 싫었다고 했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할머니가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했다고. 사실 그때 할머니가 미신을 좋아하긴 하셨다. 마음 같아선 안 하고 싶지만 할머니 눈치 보느라 엄마는 내키지 않은 일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사떡 앞에서 손바닥을 동 그렇게 굴려가며 빌었던 그 신심 깊은 그 모습은 가식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