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시간은 어른의 시간과 다르다
#쇼쇼쇼
그 시절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MC는 ‘후라이 보이’ 곽규석 씨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후라이가 아닐 것이다. 날다의 뜻을 가진 ‘플라이’일 것이다. 그가 그런 별명을 가졌던 건 미국으로 가는(어쩌면 미국에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결혼식을 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알고 있다.
그가 TBC 방송국에서 주말 밤이면 진행했던 <쇼쇼쇼>란 프로는 최고의 쇼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하고 말끔한 이미지에 유려한 말솜씨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 이후 여러 쇼 진행자가 있었지만 그는 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시간대를 보니 요즘 말하는 골든타임(저녁 8시에서 10시) 때 편성되었는데 나는 그게 왜 토요일 밤늦은 시간에 방송됐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그땐 통행금지도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시간은 어른의 시간과 다른 느낌을 갖기 때문인 것 같다.
#여가수들
난 그 프로를 통해 당대 최고의 가수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내가 아는 최고의 가수는 김추자와 정훈희 그리고 펄 시스터즈였다고 생각한다. 난 왠지 이들만 나오면 따라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정훈희와 펄 시스터는 굉장히 세련되고 멋있는 가수라고 생각했고, 김추자는 뭐라고 해야 할지 표현이 불가능 했다. 그냥 뭔지 모르게 끌렸다. 특히 그녀가 부른 <월남에서 돌아 온 김 상사>와 <님은 먼 곳에>는 어린 나에게도 뭔가 끈적끈적하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가수는 정훈희였다. 그녀가 부른 <무인도>란 곡을 김추자도 불렀다. 정훈희의 음색은 워낙에 현대적이라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흉내 낼 정도였다. 특히 나의 막내작은 엄마가 그녀의 목소리 톤과 흡사해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시절 가요계 최고의 가수는 패티 김과 이미자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부모님 세대가 더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고 보면 그 시절은 여성 가수 전성시대였는지도 모른다.
#고민
한글을 아직 익히지 않은 어린 아이는 단어를 어떻게 인식할까? 그건 거의 대부분 부모나 집안의 어른들을 통해서인 것 같다. 그러니 불완전 할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 아무리 표준말을 구사해도 말이다. 예를 들면, 김추자가 부른 <님은 먼 곳에>라는 노랫말을 보면, “마음 주고, 꿈도 주고”란 말이 있다. 나는 왜 김추자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껌을 준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난 그 단어를 잘못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 외할머니가 사투리를 쓰셨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하셨던 것도 아니었다. 경기도분이라 그런지 가끔 껌을 끔이라고 하고 귤을 줄이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있었다. 더구나 어린 아이가 꿈을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걸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꿈을 껌으로 알아듣고 김추자가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혼동했던 것이다. 때문에 나도 나중에 애인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껌을 사줘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