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년시절 13화

어린 아이의 판타지를 무시하지 마

by 기억수집가

#구두

그때는 무엇으로 어른과 아이는 구분되는 것일까에 관심이 많았다. 멋쟁이였던 큰 이모는 항상 우리 집에 올 때면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왔는데 그게 왠지 멋져 보였고 부러웠다. 그래서 나는 언제 어른이 되어서 저런 구두를 신어 보나 했다. 그러니까 나는 굽 높은 구두를 신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어른과 아이로 구분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시장에서 내가 신을 여름 샌들을 사 가지고 들어왔는데 약간의 굽이 있는 것이 딱 내 스타일이었다. 얼마나 좋던지. 난 그게 너무 마음에 들어 신을 때마다 굽을 몇 번이고 내려다보곤 했다. 하지만 그 샌들은 생각보다 많이 신지도 못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아끼느라고 못 신었던 것 같다. 그러는 사이 나의 발이 갈수록 커져서 결국 그걸 신을 수 없게 되었다. 얼마나 아쉽던지. 그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신는 건데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주(립스틱)

어린이와 어른을 나누는 또 다른 기준은 화장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외출을 할 때면 난 가끔 언니와 함께 엄마의 화장품을 훔쳐 바르곤 했다. 그래 봐야 엄마의 립스틱을 입에 바르고 손거울로 실룩거려 보는 것이 전분데 그게 나름 짜릿한 기분을 갖게 했다.


당시 TV 쇼 프로그램에 나왔던 여자 연예인들은 유난히 입술이 반짝반짝 빛나기도 했는데 아마도 요즘의 틴트 같은 걸 발랐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의 립스틱은 그런 윤기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안티푸라민’을 입술에 덧바르곤 했는데 아쉬운 대로 연예인 입술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당시 노래 부를 때 가장 입술이 육감적인 가수는 하춘화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바르고 그녀를 흉내 내곤 했다. 그리고 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오기 전에 입술을 지웠다. 하지만 TV에 여자 가수들이 나오면 노래는 듣지 않고 유난히 번들거리는 입술을 쳐다보며 저건 어디서 살까 항상 궁금해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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