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년시절 14화

학교생활은 피곤해

by 기억수집가

#여전사

나는 그렇게 선생님 댁에 가서 과외 공부를 했지만 선생님이 직접 우리 집에서 오셔서 가르치시기도 하셨다. 그러면 언니와 같이 공부하는 그룹 따로 오빠가 하는 그룹이 따로 있었다. 난 언니 그룹 멤버들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 보다 4살이나 위였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내가 꼬맹이로 보였을 것이다. 그나마 오빠 그룹 멤버들은 좀 만만했다. 그래서 어울리기가 쉬웠다. 그들이 아랫방에 모이면 선생님이 올 때까지 나는 동생과 함께 신나게 놀았다.


아무래도 노는 것은 내가 그들을 쫓아가야지 그들이 나한테 맞출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몸으로 싸우고 씨름하느라 좀 거칠어졌다. 혹시 내 안에 여전사의 피가 흐르는 건 아닌가란 의심을 가져보기도 했다.


#달리기

나는 운동신경이 꽤 좋은 줄 알았다. 그것이 여지없이 깨졌던 건 학교를 들어가고 체육 시간이 되서다. 7,8명의 아이들이 한 조가 되어서 달리기를 하는데 내가 그렇게 달리기를 못하는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놀아도 늘 남자 형제들과 옥상에서 거칠게 뛰어놀았는데 운동 신경은 바닥이어서 내가 꼴찌였다.


생각해 보면 내가 거칠게 노는 것과 달리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정서가 좀 거칠어진다는 정도지 달리기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잘하려면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내가 꼭 달리기 연습을 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도 안 하는 것을 내가 왜 해야 하는가. 그냥 순수하게 타고난 힘으로 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좀 아쉽긴 했지만 나는 그냥 천성적으로 달리기를 잘 못하는가 보다 했다. 꼴찌로 달리는 건 좀 창피하긴 했지만 그렇게 인정하니 그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실내화

교실에 들어가려면 꼭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했다. 그래서 항상 책가방과 함께 빠트리면 안 되는 게 신발주머니다. 실내화는 얼핏 고무신을 개조한듯한데 고무신 보단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닐 가죽으로 만들었다. 체육 시간이나 조회같이 운동장을 나가야 할 경우 신발주머니를 가지고 나갈 수 없다. 실내화를 교실에 두고 맨발로 신발을 들고 교사 현관까지 나가 신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어느 순간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어느 체육 시간이었다. 실내화를 벗고 나가야 하는데 뭐가 그리도 급한 건지 실내화를 신은 채 신발을 들고나갔다. 신발은 어떻게 바꿔 신었는데 손에 실내화가 들려있었다. 얼른 교실로 들어가 두고 나오면 되는데 교실은 그새 잠겨있었다. 나는 이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니 고민하다 결국 체육 시간이 끝날 때까지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반 아이 두 명이 나에게로 와 선생님이 날 찾는다며 실내화를 어디다 두고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만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엄마한테 혼이 날 것이고, 체육 시간 이후로 난 맨발로 수업을 받아야 하는데 결벽증에 가깝도록 키워진 나는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체육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난 무슨 생각이었는지 수업에 참석한 것 마냥 약간 헐레벌떡 거리며 아이들 틈에 섞여 교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담임선생님한테 딱 걸렸다.


선생님은 다짜고짜로 뒤에서 내 머리를 쥐고 흔들고 몇 대 때리더니 이내 교실로 들어가 가시는 것이었다. 난 그때 창피한 것도 창피한 거지만 그다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어안이 벙벙했다. 이럴 경우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면 된다. 전에도 나처럼 그런 식으로 선생님께 혼이 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럴 경우 다른 아이들은 모른 척한다.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좀 서러웠다. 선생님이 엄하시다는 건 알겠는데 꼭 그렇게 머리채를 쥐고 흔드셔야만 하셨을까? 만일 그렇게 반 아이들이 와서 어딘가에 실내화를 두고 늦게라도 체육 시간에 참석했다면 그 정도로 혼났을까?


나의 이런 섭섭함을 학교가 알았을까? 훗날 2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는 바닥에 기름칠을 하고 실내화를 없애고 신발을 신은 채 자유롭게 교실을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그건 확실히 환영할만한 일이긴 했지만 그럴 것 같으면 진작 할 일이지 선생님께 혼날 것 다 혼나고 이게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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