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년시절 16화

돈 보다 자유

영부인께서 돌아가셨다

by 기억수집가

# 새마을 노래

나는 이 노래를 초등학교 2학년 때 옥상에서 언니에게 배웠다.

나름 활기찬 노래라고 생각했다.


#국장

어느 날 가히 국민의 어머니로 추앙받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이 쏜 총탄에 피살당했다는 소식이 TV에 전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을 TV는 거듭해 보여주는데 정말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사실 문세광은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려 했다. 그런데 그 총탄이 비껴가는 바람에 육영수 여사가 맞았다는 것이다.


나는 울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이 사실을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그저 침통할 뿐이었다. 처음엔 위독하다더니 결국 서거했다는 것이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TV는 일주일인가 꽤 오랫동안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육영수 여사를 추모하는 방송을 계속 내보냈다. 특히 6시면 하는 어린이 방송도 하지 않았다. 유일한 낙인 어린이 방송을 볼 수 없는 건 좀 갑갑한 일이긴 하지만 영부인을 잃은 슬픔에 비하면 참을만하다고 생각했다.


국장이 끝나고 다시 정규방송을 시작했을 때 고인껜 죄송하지만 정말 숨이 쉬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땐 아직 컬러 방송을 시작하기 전이었지만 마치 세상이 온통 흑백이었다 컬러로 바뀐 것처럼 밝아진 느낌이었다. 역시 슬픈 건 슬픈 거고 TV를 보는 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빠르게 육영수 여사의 서거를 잊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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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잊히지 않은 건, 육영수 여사의 관을 실은 운구차가 청와대를 빠져나갈 때 차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던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이다. 통곡을 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그는 애써 눈물을 참고 있는 것도 같고, 지금 생각해도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 이후 그분의 운명을 생각하면 말이다.


#추모

그렇게 우리나라 방송이 일제히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를 추모하고 있을 때 나는 나대로 언니와 함께 옥상에서 누가 먼저 그렇게 하자고 정한 적도 없는데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노래를 계속해서 불렀다. 그중 하나가 <그네>라는 우리 가곡이었는데 이건 정말 그분을 떠올리기에 가장 좋은 노래는 아니었나 싶었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바람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보너스

학교를 들어가니 확실히 사람의 격이 달라지는 것 같긴 했다. 나나 동생은 이제 하루 10원이나 받고 좋아라 하며 가게로 뛰어가는 어릴 적 코흘리개가 아니었다. 물론 1학년 때는 그게 피부로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2학년이 되자 어느 날 아버지가 거나하게 술에 취해서 우리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성적을 향상하면 그에 따른 보너스를 차등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고학년인 언니나 오빠는 나 보다 액수가 컸고, 난 그 보다 작긴 했지만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었다. 600원인가 800원을 주겠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그 돈이 아까웠을까? 한 번인가 두 번 정도 지급하곤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나는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했다. 구두쇠인 아버지가 그걸 계속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나라도 그런 제안은 안 할 것 같다. 이제까지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는데 거기다 보너스까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학생이 공부하는 건 당연한 건데 그러면 돈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의도와 동기가 순수하지 않았다. 더구나 과외까지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최적의 조건에서 공부를 하는 건데 보너스까지 준다는 건 과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보너스를 준다면 언제까지 줄 것인가? 물가가 상승될 때마다 액수는 더 올려줘야 한다. 이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했던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다 그놈의 술 때문이라고 하셨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그렇다. 매번 돈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면 언제까지 잘해야 하는 것인가? 공부를 좀 못하더라도 자유가 훨씬 낫지 않나?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이제부터 공부를 왜 못하냐고 우리를 야단칠 수도 없게 되었다. 이런 대박이. 돈 보다 자유다. 자유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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