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년시절 17화

꽃처럼 좋았다

by 기억수집가

#외면

2학년이 되자 1학년 때 한 반이었던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나와 같은 반이 된 아이들도 있었고 다른 반이 된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흩어져 못 만나게 되더라도 복도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되면 서로 인사라도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분명히 1학년 때 같은 반이던 아이가 복도에서 마주쳐도 아는 체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난 그게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나도 그냥 모른 척했다. 아, 이런 게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모른 척하며 살아왔을지 알 수가 없다.


#폐품 수집

학교에선 한 달에 한 번인가 두 달에 한 번씩 폐품 수집을 했다. 학교에선 그 폐품을 모아다 학교 운영에 보태 쓰겠다는 것인데 그만큼 학교가 가난했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당시 공립학교 중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기로 소문난 곳이다. 그런 학교가 아이들에게 폐품을 가져오라는 건 지금으로선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아이들이 가져오는 폐품이란 주로 빈병이나 안 보는 신문, 잡지가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조금씩 밖엔 가져오지 않았다. 그런데 비해 손 힘이 좋았던 엄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어디서 그런 폐품이 그렇게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그야말로 한 보따리를 노끈으로 꽁꽁 묶어놓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도 아닌 네 묶음을. 물론 다 똑같은 것은 아니고 그나마 좀 보기 좋고 소담스럽게 묶은 것도 있는데 우리 형제 누구든 잽싸게 낚아채지 않으면 가장 큰 덩이를 가져간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딱 걸렸다. 시쳇말로 쪽팔려 안 가져가고 싶은데 묶어놨는데 왜 안 가져가냐며 엄마가 닦달질을 할 테니 안 가져갈 수도 없었다. 그나마 언니가 맞들어줘서 학교까지는 어떻게 가져갔지만 아니나 다를까, 여자 아이들은 그냥 눈만 굴리고 있었고, 남자아이들은 내가 돼지라도 잡아 온 양 호들갑이었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담임선생님대로 내가 가장 많은 폐품을 가져왔다면서 수고한 의미에서 박수를 쳐주자고 했다. 하지만 난 그게 왜 그리도 반갑지 않던지. 그냥 조용히 선생님만 칭찬해 주셨다면 오히려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공부나 다른 이유에서 받는 박수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꽃처럼 좋았다

초등학교 1학년은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2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슬슬 학교생활이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한 무리의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내게 와 “우리랑 같이 놀지 않을래?”해서 뭔지도 모르면서 대답도 제대로 않고 끼어들었다. 그런데 순간 아이들의 놀이가 내 마음을 확 사로잡았다. 두 패로 나뉘어 술래를 바꿔가며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찾으러 왔느냐, 왔느냐

00이(이름을 넣어) 꽃을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그러면 그 술래 상대 아이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지면 상대 쪽으로 넘어가고 이기면 남아 오히려 상대 쪽에서 아이를 데려 오는 그런 놀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들의 이름이 꽃이 되는 놀이라니. 이 얼마나 신선하고 예쁜 놀인가. 더불어 내 이름도 꽃이 됐다. 그러니 정말 친구가 꽃처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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