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년시절 15화

성적표, 내놓은 자식 같은 것

도대체 학교생활은 얼마나 잘해야 하는 걸까?

by 기억수집가

#동화(同化)

1학년 때 나는 어느샌가 모르게 담임선생님께 소위 얌전한 아이로 보였던 것 같다. 내가 그런 아이로 보인 줄 정말 몰랐다. 나는 나름 거칠고 말괄량이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우리 반엔 유난히 수선 맞은 여자 아이가 있었다. 선생님은 어느 날 그 아이와 내를 짝이 되도록 하셨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아이가 산만하니 나와 짝이 되면 좀 얌전해질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결국 난 나의 얌전함과 의젓함으로 그 아이 특유의 수선 맞음을 변화시켜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셈이었다.


그게 좀 부담스럽긴 했다. 학교에 처음 들어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누가 누구를 가르치란 말인가. 선생님이 그런 식으로라도 나를 예뻐하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인정해 주면 안 되는 걸까? 그 후, 어떻게 됐을까? 과연 내 특유의 얌전함이 그 아이의 산만함을 다스렸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내가 그 아이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산만한 것이 아니라 명량한 것이다. 그리고 자기 나름의 몸짓으로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런데 비해 나는 얌전한 것이 아니라 매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웅크리고 있는 것뿐이다. 선생님껜 죄송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아이와 짝이 된 덕분에 학교생활을 조금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빨간색

동생은 빨간색은 여자 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사준 옷에 빨간색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입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엄마는 동생에게 빨간색이 뭐가 어때서 그러냐고 야단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동생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한 번은 엄마가 동생에게 감색과 빨간색이 적절히 들어간 조끼를 입혀 학교에 보냈는데 집에 올 때는 그것을 벗어 가방에 넣어가지고 왔다. 결국 엄마가 진 것이다. 엄마는 그때 이후로 동생에게 빨간색이 들어간 옷은 절대 입히지 않았다.


#성적표

초등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성적표를 받았다. 나는 체육에서 최하위 점수인 가를 맞았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지난번 달리기에서 가장 꼴찌로 들어온 여파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국어 점수도 신통치 않았는데 학생 평가란엔 내가 책 읽기를 싫어하는 것 같으니 지도를 바란다는 내용의 선생님의 글이 쓰여 있었다.


언니는 그걸 보고 킥킥대고 웃었다. 그게 웃을 일인가? 언니가 되가지고 위로는 못 해 줄망정 조롱이나 하고. 난 그저 난생처음으로 받는 성적표에 그저 어안이 벙벙해 웃고 있는 언니에게 뭐라고 하지도 못했다. 도대체 학교생활은 얼마나 잘해야 하는 걸까? 선생님이 나를 싫어하시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성적을 주실 리가 없다. 지난번 실내화 사건도 있고.


그나마 2학년은 좀 나서 전 과목 미를 받았다. 수, 우, 미, 양, 가중 미면 딱 중간이다. 하지만 그것도 신통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난 그저 전 과목에서 미나 받는 보통 어린이 었을 뿐이다. 뭐 특별히 잘하지도 못 하지도 않는. 물론 성적이 1학년 때 보다 향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외 공부까지 하고 그 정도도 하지 못하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그러고 보면 난 어느 정도 학교에 적응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나의 학창 시절을 통틀어 볼 때 난 그 하얗고 빳빳한 종이를 나는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증오한 적도 없다. 그저 그건 내놓은 자식 같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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