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패키지 여행의 실상. 몸이 두개라면 가능할지도?
TV채널을 돌리다 가끔씩 눈길이 멈추곤 하는 홈쇼핑 채널. 특히 '저 가격에 저게 가능해?'라는 감탄을 자아내는 가성비의 패키지 여행 상품들은 안가는 사람이 호구같은 느낌마저 준다. 여하튼 여행 깨나 다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나 포함) 패키지 여행에 극도의 적대감을 드러내기 일쑤다. 그런데 고작 비행기 삯에 버금가는 돈으로 초특급 호텔+식사+교통까지 한큐에 해결이라는데, 솔깃은 한다. 사실 터키는 관심도 없었지만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타는 판타지를 가진 동행인(엄마)의 추천과, 워낙에 땅 덩어리가 넓은 탓에 개별적인 이동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기에 패키지 여행을 택했다. 결론은 비추천이다. 장시간 버스 탑승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강철 엉덩이가 없다면 터키 패키지 여행은 말 그대로 '극한 여행'이다. 여행지 풍경을 바라보며 멋진 레스토랑에 앉아 와인 한잔을 하는 여유 같은 건 없다. 창밖 풍경을 보며 안락한 버스에 앉아 사온 음료수를 마시긴 한다(그마저도 화장실 갈까봐 몇모금 적시는 게 전부다). 당신의 연차는 너무나 소중하다. 신중해라. 당신의 연차와 잔고를 수호하기 위해 비추천 여행기를 써내려 가려고 한다. 일상을 떠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게 여행의 목적이라면, 터키갈 돈과 시간으로 발리를 가서 하루에 3번씩 술마셔라(그래도 남는다).
아시아나 항공을 오랜만에 이용했는데 기내식으로 김치볶음밥을 처음 봤다! 밥은 맛있었는데 비행기 기종이 상당히 오래된 기종이다. 스크린도 작고 엔터테인먼트도 구식이다... 그냥 진짜 옛날 비행기다. 매각되면 신상 비행기 좀 많이 샀으면 좋겠다(?). 이스탄불 공항에 오후 3시쯤 도착하는데, 도착하자마자 일정이 시작돼서 당황했다. 물론 우리 팀 말고도 다른 여행사의 아주 수많은~ 팀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같은 여행 코스를 돈다. 약 200~300여명의 한국인과 일주일 내내 여행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중에는 안면도 터서 인사도 주고 받았다. 진기한 경험... 단순히 마주치기만 하는게 아니라 이들과 식당, 휴게소, 관광지, 화장실 모든걸 공유한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시차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하루종일 일정을 돌고 밤늦게 호텔로 귀가 했다.
패키지 여행 중 묵는 호텔은 대부분 시내에서 1~3시간 걸리는 외곽에 위치해있다. 저렴해서 여행 상품 단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새벽4시에 기상, 5시40분쯤에 호텔에서 출발해 이스탄불 시내로 갔다. 6시 반쯤 유람선 선착장에 내려주는데 이때 부터 인지부조화가 온다. '내가 왜, 새벽 6시에 유람선을?' 잠도 피로도 덜깬채로 유람선을 타는 일정을 시작한다. 여행사들이 생각이란게 있으면 차라리 야경을 볼 수 있게끔 저녁타임으로 바꾸는게 좋을 듯 하다. 어제까지 한국이었는데 갑자기 이 새벽에 이스탄불 유람선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이 상황이 웃기다. 유람선 선장은 나름 센스를 발휘한다고 한국 트로트를 브금으로 깔아주는데, 진짜 깬다. 이런 바이브 느끼려고 유럽 온 거 아니고요...
다음 일정은 그랜드바자르.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 같은 곳이다. 아침 8시경에 갔는데 열었을리가? 샤따내린 상점들 구경을 열심히 하고 환전을 하고, 약 20분정도 자유시간을 줘서 길거리에서 케밥과 석류쥬스를 사먹었다. 8일간 터키에서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 석류쥬스는 100% 석류를 착즙해서 준다. 어딜가나 판다. 이날 이스탄불 시내 구경을 했는데 앨범에 사진이 하나도 없다(눈물) 찍을게 없었다 진짜... 각종 미디어가 '동서양 문화교류의 중심지' 어쩌고 하면서 이스탄불을 추켜세웠지만 화려하기보단 투박하고, 인파만 가득한 곳 이었다.
마을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프란 향이 넘치는 '사프란볼루'. 미리 공지된 여행 일정에 포함된 곳이었는데 가이드가 귀찮은지(사프란볼루를 들리면 동선이 길어진다), 노골적으로 다른 곳을 가자며 밑밥을 깔더라. 그런 태도가 아니꼬웠던 패키지 팀원들의 더욱 강력한 지지로 어렵게(?) 방문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연이어 다른 여행사 팀들이 도착했고 또 300명 단체 관광이 시작됐다. 자유시간 딱 20분 있었다. 실화냐
터키쉬 커피를 맛보고 싶었는데 커피내리는 것 까지 기다려줄 시간이 없었다(눈물) 골목도 들어가보기는 커녕 슬쩍 훑어보고 기념품만 사서 약속장소로 돌아오기에도 빠듯했다. 조금 더 여유있게 둘러볼 시간이 있었다면 카페에서 차도 한잔하고, 구경도 실컷하고 그랬을텐데! 이날도 또 몇시간 버스를 타고 돌아와 호텔도착, 기절 후... 4시 기상! 여독은 언제푸나요?
사실 터키는 카파도키아 보러 가는 거잖아요? (여기서부터 갑자기 존댓말 시작) 카파도키아 까지는 버스로 약 7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남한의 8배라더니 진짜 엄청 넓은 것 같아요. 엄청난 황야+듬성듬성 마을이 계속 이어집니다. 빈민가도 많고 전반적으로 휑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창밖으로 돌무데기 같은 게 점점 보이기 시작합니다. 스머프 마을의 모티프가 됐다는 파샤바 계곡을 먼저 구경하러 갔습니다.
짠 스머프들이 살법한 버섯모양 집처럼 바위가 솟아난 특이한 곳입니다. 사진찍으러 바위 올라갔다가 저세상 구경 할뻔 했습니다. 적당히 조심조심 안전하게 사진찍으세요! 바위 밑쪽으론 기념품 상점들이 있는데 조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나는 터키인마다 한국어를 다들 왜이리 잘하는지... 나만 모르는 트루먼쇼인줄 알았답니다. 한국인 단체관광객 코스다보니 다들 한국어를 배웠나봐요. 군밤타령 부르며 군밤 팔던 터키 할아버지 잊지 못해
옵션 관광이었던 지프투어를 받았습니다. 지프...는 아니고 쉐보레타고 카파도키아의 곳곳을 속성으로 구경시켜 줍니다. 전부 돌멩이(?) 지형이다보니 나중에는 '아까랑 다른곳이야?' 하는 질문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옵니다. 다섯군데 정도 구경을 마치고 마지막에는 와인파티(라고 쓰고 무알콜 음료 한잔씩 돌리고 팁을 받아갑니다)를 즐겼습니다아~!
자유시간이 촉박해 홍차는 반쯤 마시고 그대로 반납. 이날 일정은 이렇게 마치고 카파도키아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호텔은 여행사 사이트에서 초특급 호텔이라고 소개를 하는데, 용산역 앞 드래곤스파가 더 고급일 듯. 한주먹거리 보안 수준의 문짝을 단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역시 4시 기상했습니다. 열기구 타러가야 되거든요
창밖으로 열기구가 보이니 카파도키아에 온 게 실감이 납니다. 근데 이때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열기구에 직접 타는 것보다 밑에서 보는게 더 이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던 스팟이 있더라구요. 열기구 탑승은 한사람당 약 20만원 정도 했던 옵션 관광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난 고소공포증이 있는데에
올라가 버렷! 엄마!! 열기구 캡틴 말을 들어보니 약 400m(기억이 가물가물)정도 맥시멈으로 올라간다고 해요. 열기구에는 약 20명 정도 탑승하는데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각각 구역마다 나눠탑니다. 눈 깜짝할 새 하늘로 올라왔습니다. 밑에 보면 기절. 먼 곳만 바라봅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두번은 안해도 될 것 같아요... 체감상 약 40분여간의 둥둥을 마치고 내려옵니다. 내려오면 밑에서 버스가 기다리고 있어요. 버스에 탑승하고 다음 일정을 향해 또 강행군을 떠납니다.
터키에서 가장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길 강아지, 고양이들이 엄청~~나게 많고 사람을 만만하게(?)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호텔 식당에도 고양이들이 들어와서(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먹더라구요. 넘나 귀여운 것.
혹시 츄르를 들고 터키에 오신다면 당신은 인기쟁이 예약...
거진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달려 파묵칼레에 도착합니다. 하루에 5-6시간씩은 버스를 타는 것 같아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려서 관광한 기억보다 버스에서의 추억이 더 많습니다. 엄마도 버스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그시간에 다른 곳을 갔어야 했다며 터키 1비추천. 정말 가고 싶은 곳 몇군데만 골라서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 훨씬 괜찮을 것 같아요. 버스이동은 정말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도착한 파묵칼레는 트레이드 마크였던 옥색빛깔 물이 모두 말라버렸습니다!!! 오지마세요!!!
밤하늘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파묵칼레
몇시간 버스를 타고 산길을 올라 겨우 도착한 쉬린제 마을에서는 15분의 자유시간과 5분컷 와인시음을 했습니다. 이걸 여행코스라고 팔고있는 여행사는 양심이란게 있는 걸까요? 커미션을 받은 쇼핑센터에서는 1시간+a의 시간을 보내도록 강제하면서(게다가 다섯군데나 갔습니다) 출처도 불분명한 고가의 물품을 판매합니다. 절레절레
터키를 시계방향으로 돌아 다시 이스탄불에 도착합니다. 이때도 6시간정도 버스를 탔습니다. 이스탄불에 도착해서는 도장깨기식의 관광코스 구경을 마치고 공항 근처의 호텔(그나마 제일 괜찮았습니다. 비즈니스 호텔)에서 숙박한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습니다.
터키 공항 엄청 크고 쇼핑할 곳도 많고, 이번 여행 중 최고의 관광 코스였습니다. 집에 간다고 생각하니 너무 행복했나봐요. 사실 패키지 여행이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선택 관광 추가금 + 현지가이드 팁+ 한국인 가이드 팁+ 운전사 팁 다 더하면 자유여행 맞먹는 금액이 나옵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해보셔요. 자유여행으로, 버스대신 비행기를 타고 터키를 갔다면 지금보다 좋은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비교해보시고 좋은 선택하셔서 소중한 연차 알차게 즐기시길 바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