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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mony Nov 13. 2022

61. 아빠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임종

'슬픈 예감은 잘 틀리지 않는다'는 징크스는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요양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연락을 받은 후, 자꾸만 밀려오는 불안감에 일부러 댄스곡을 재생해서 듣는 의미 없는 행동을 해봤지만 결국.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신 지 며칠 만에 호흡이 가빠지신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몇 년간 자택에서 가족들의 케어를 받으시다가 요양원,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시고는 너무 급격하게 나빠지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혹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지내는 그 며칠이 힘드셨을까'하는 일말의 죄책감이 들다가 '나는 생전에 할아버지를 얼마나 찾아뵈었었나'하는 부끄러움이 더 크더라..


불과 몇 주전 할아버지를 뵈었을 때, 할아버지는 빼빼 마른 몸을 한껏 움츠리신 채 소파에 기대어 계시거나 침대에 누워계셨다. 병세가 악화되시고는 할아버지가 사람을 잘 알아보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내가 할아버지 앞에 가서 손 흔들며 인사하는 시늉을 하자 할아버지는 마치 내가 누군지 안다는 듯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시며 뼈만 남은 앙상한 팔을 흔들어 대답해주셨다. 할아버지를 케어하시던 고모는 "아버지는 나한테는 반응을 안 하는데 손녀딸한테는 반응을 하시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할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눈 맞춤이었고 할아버지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기억 속 손녀딸의 마지막 모습이 웃는 얼굴로 전하는 인사여서 다행이다 싶었다.


할아버지의 임종을 실감한 것은 입관식 때였다. 사진 속에서 어린 나를 안아주시던 늠름한 가슴과 유난히 깔끔하셨던 외모와 꼿꼿하시던 기백은 사라지고 너무나 차가운 피부와 노랗게 변해버린 얼굴색만이 남아있었다.

할아버지의 전신이 고작 몇 장의 천 쪼가리로 모두 가려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화장된 할아버지의 시신에서 남은 뼛조각과 금니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연약한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가 다시 어린아이처럼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변하셨던 할아버지의 내면과 외면을 보며, 결국 사람들의 '사랑'으로 왔다가 '사랑'으로 가는 것이 인생인가 싶기도 했다. 그것이야말로 충분히 복받은 삶인것 같기도하고.


5명의 자식들이 모두 외향적인 성향을 가진 탓일까,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했고 덕분에 울음소리도 웃음소리도 유난히 많았던 것 같다.

어떤 죽음이 나쁘지 않은 죽음일까? 그런 죽음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할아버지의 친손주 중 장손인 내가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다니며 할아버지를 보내드렸다.

할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다닌건 나지만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짊어지고 간다는 생각으로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그래서일까 괜스레 입안이 다 헐고 입술이 부르트고 난리였다. 나는 참 예민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지만, 평소 할아버지를 찾아뵈면 흔한 애정표현도 잘하지 못하는 손녀였는데.  

이렇게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리지 못하게 되고 나서야 할아버지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아진다.


할아버지, 거기서 저희 다 잘 보고 계시죠?

사진 속에서조차 머리칼 한 오라기까지 깔끔하신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를 닮은 아빠를 보며 문득문득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될 것 같아요.

철도공무원 일을 오랫동안 하시면서 할머니와 함께 다섯 명의 남매를 키우신 할아버지.

손녀보다는 손자를 원하셔서 둘째 손주까지 딸임을 아셨을 때 혼자서 소주를 들이켜셨다는 할아버지.

그럼에도  당신에게 생겼던 손녀들을 특별히 더 이뻐하셨던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 교사된 거 아세요? 아마 저도 할아버지의 성실함과 보수적인 면을 닮은 거겠죠. 제가 조금만 더 빨리 공부를 시작했더라면 할아버지가 저를 보고 뿌듯해하셨을 텐데. 할아버지께 더 멋지고 자랑스러운 손녀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곳에서 다 알고 계신 거죠?


사실은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보다, 당신의 아들, 그러니까 우리 아빠가 눈물을 흘리며 할아버지 앞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하실 때 저는 더 뜨거운 눈물을 흘렸어요. 더 슬프고 가슴이 아렸어요. 자꾸만 아빠의 모습에 제 모습이 겹쳐 보여서요. 잘해드린 것보다 잘해드리지 못한 것들이 많이 기억나겠죠? 부모 자식은 어쩔 수 없이 다 똑같나 봐요.

하나밖에 없는 내 할아버지! 더 많이 찾아뵙지 못해서, 더 많이 안아드리고 손잡아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할아버지가 그렇게나 사랑했던 아빠께 제가 더 잘할게요. 그곳에서는 아프신 곳 없이, 늘 좋아하시던 꽃과 나무들을 마음껏 가꾸시면서, 저희 가족 잘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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