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4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75. 폭삭 늙었수다, 폭삭 속았수다!

매우 고생 많으셨습니다!

by OHarmony Mar 21. 2025

며칠 전, 엄마가 건강검진을 위해 내가 사는 지역으로 오셨다.

내가 휴직으로 잠시 쉬고있는터라 부모님 곁에 있어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특별히 한건 없고 그저 엄마가 건강검진 기관에서 검사 받으시는 동안 옆에서 핸드폰 정도만 들어드리거나,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말동무가 되어주는 정도로 함께 했다.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반가웠다, 좋았다, 고맙다" 하셨는데

참 그게 뭐라고...


위와 대장 내시경 예정이셨던 엄마는 며칠 전부터 식단 조절도 하시고 하루 전날은 화장실을 들락날락하시느라 너무 지친 모습이셨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문득 엘리베이터 문 자체에 달린 거울에 우리의 모습이 비춰졌다.

엄마는 거울에 비친 본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엄마 많이 늙었지? 이제 다 늙어서 주름도 너무 많이 생기고, 화장품을 잘 바르고 해도 나아지는 거 같지가 않아."

"그러고보니까 엄마 오늘 얼굴에 아무것도 안발랐네? 아무리 그래도 스킨로션에 선크림까진 발라야지! 엄마 피부 나빠진다고 몇 번을 말해. 머리도 좀 감고오지 그랬어."

"머리도 며칠을 안감아도 건조하고 푸석푸석하고.. 이제 머리 기름도 안생기나봐~ 폭삭 늙었어 이제 엄마"

더 잔소리를 하려다가 진심으로 속상해하는 엄마의 넋두리에 더 이상의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엄마의 마지막 한마디 때문에 괜히 요즘 애청하는 드라마인 '폭삭 속았수다'가 떠오르기도 했고, 거기에 나오는 애순이가 떠올랐다.

드라마 속 어린 애순이와 나이든 애순이를 보며 우리 엄마도 비슷한 방식으로 여자의, 또 엄마의 인생을 사셨겠지. 지금도 그렇게 살고 계시고...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소녀처럼 행복해하는 엄마, 할머니 집에서 고모들보다 더 많은 일을 묵묵히 하시던 엄마, 마음이 여러서 남들한테 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엄마, 집에서도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는게 일상이던 엄마.

내가 결혼을 하고 보니 더.. 더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더라.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그제서야 엄마의 나머지 마음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딸들은 이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안 흘릴수가 없겠더라..

근데 우리 남편도 나랑 똑같이 울어.. 왜...^^


'폭삭 속았수다'는 제주도 방언으로, 해석하자면 '매우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 엄마, 젊을 때 사진보니 참 이뻤는데...

그래 울 엄마 그때에 비하면야 폭삭 늙었수다! 그렇지만.. 폭삭 속았수다!!

필요하다하면 리프팅 해드릴게!! 피부과 가자!! 말만하라고!!


 




 

작가의 이전글 67. 친절해야 할 이유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