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고생 많으셨습니다!
며칠 전, 엄마가 건강검진을 위해 내가 사는 지역으로 오셨다.
내가 휴직으로 잠시 쉬고있는터라 부모님 곁에 있어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특별히 한건 없고 그저 엄마가 건강검진 기관에서 검사 받으시는 동안 옆에서 핸드폰 정도만 들어드리거나,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말동무가 되어주는 정도로 함께 했다.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반가웠다, 좋았다, 고맙다" 하셨는데
참 그게 뭐라고...
위와 대장 내시경 예정이셨던 엄마는 며칠 전부터 식단 조절도 하시고 하루 전날은 화장실을 들락날락하시느라 너무 지친 모습이셨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문득 엘리베이터 문 자체에 달린 거울에 우리의 모습이 비춰졌다.
엄마는 거울에 비친 본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엄마 많이 늙었지? 이제 다 늙어서 주름도 너무 많이 생기고, 화장품을 잘 바르고 해도 나아지는 거 같지가 않아."
"그러고보니까 엄마 오늘 얼굴에 아무것도 안발랐네? 아무리 그래도 스킨로션에 선크림까진 발라야지! 엄마 피부 나빠진다고 몇 번을 말해. 머리도 좀 감고오지 그랬어."
"머리도 며칠을 안감아도 건조하고 푸석푸석하고.. 이제 머리 기름도 안생기나봐~ 폭삭 늙었어 이제 엄마"
더 잔소리를 하려다가 진심으로 속상해하는 엄마의 넋두리에 더 이상의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엄마의 마지막 한마디 때문에 괜히 요즘 애청하는 드라마인 '폭삭 속았수다'가 떠오르기도 했고, 거기에 나오는 애순이가 떠올랐다.
드라마 속 어린 애순이와 나이든 애순이를 보며 우리 엄마도 비슷한 방식으로 여자의, 또 엄마의 인생을 사셨겠지. 지금도 그렇게 살고 계시고...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소녀처럼 행복해하는 엄마, 할머니 집에서 고모들보다 더 많은 일을 묵묵히 하시던 엄마, 마음이 여러서 남들한테 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엄마, 집에서도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는게 일상이던 엄마.
내가 결혼을 하고 보니 더.. 더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더라.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그제서야 엄마의 나머지 마음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딸들은 이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안 흘릴수가 없겠더라..
근데 우리 남편도 나랑 똑같이 울어.. 왜...^^
'폭삭 속았수다'는 제주도 방언으로, 해석하자면 '매우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 엄마, 젊을 때 사진보니 참 이뻤는데...
그래 울 엄마 그때에 비하면야 폭삭 늙었수다! 그렇지만.. 폭삭 속았수다!!
필요하다하면 리프팅 해드릴게!! 피부과 가자!! 말만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