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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슈가 Sep 25. 2020

브런치의 내 서랍 속 글

'비단향 꽃무'의 향기를 기억하며..

올 한 해는 늘 불안해하면서 신경은 예민해진 상태로 보내는 중이다. 그나마 이제는 조금씩 이런 상황에 적응을 한 것도 같다. 왜냐면 작년의 기록을 들춰보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일을 마무리한 시간 밤이 깊어간다. 그냥 자기에 아쉬움이 남아 브런치 나의 서랍을 열었다. 예전의 기록을 읽어보며 미소를 짓기도 한다. 올 한 해 잃어버린 시간을 생각해보면 지난해의 기록은 그때가 얼마나 좋았던 시절인가를 확인시켜준다.  

추억 삼아 작년의 기록을 옮겨보는 것으로 이번 주 브런치 글을 시작한다.


photo by sugar  내가 찍은 사진을 걸어놓은 한 쪽 벽면

오늘도 기억해두어야 할 일이 여러 가지가 생겼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일 텐데 '준 것보다 받은 것을 더 기억하라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내가 사는 세상이 지옥이 되기도 하고 천국이 되기도 한다는 것.'
나는 울 슈가님들, 그리고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을 천국에 두고 싶다.


-늦잠을 푹 잔 오전 시간. (늘 새벽에 자는 일의 특성상)

미영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밥은 패스하고 출근했다. 그렇게 슈가의 하루는 다른 날보다 1시간 빨리 시작했다.

4년 전쯤 김해로 이사 간 미술 선생님은 학원 오픈 시간이 우리 가게 오픈 시간과 비슷해서 쇼핑을 잘 못 오신다. 그나마 가끔 진해에 특강 가는 날에는 마치고 김해로 넘어가는 중간에 우리 가게에 잠시 들르신다. 선생님은 딸내미 유경이가 다섯 살 때부터 우리 가게 단골손님이셨다. 그 어린 유경이가 벌써 5학년이 되었단다. 그때는 늘 어린 유경이를 데리고 슈가에 오셨고 유치원생 유경이는 엄마가 입는 옷을 예쁘다. 안 예쁘다 하면서 봐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사를 가시고 미술학원을 시작하신 선생님은 자주 오지를 못하셨지만 여전히 바쁜 시간 쪼개어 김해에서 슈가까지 오시는 팬 중에 팬이기도 하다. 그날도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급히 출근했던 것이다. 선생님은 빛의 속도로 쇼핑을 마치고 부지런히 학원으로 발걸음 하셨다.


-어떤 날은 귀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직원들과 차 한 대로 작업복 입은 채로 슈가까지 오는 손님이 계신다. 빠듯한 점심시간에 달려와서 까탈스러움 없이 사가시는 미야 님과 그녀의 직장동료들을 보니 같이 다니는 사람들은 닮아가나 보다. 참 순하고 수월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들 일하느라 바빠서 옷은 필요한데 한가하게 쇼핑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토요일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가끔은 토요일에 쇼핑을 오기도 하지만 직장 생활해 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쉬는 날이면 밀린 집안일도 많으며 가족들과 함께 시간 보내느라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일요일은 나도 쉬는 날이니..


책방선생님이 수줍게 건넨 '비단향 꽃무'

사진 전시회(작년 봄) 끝난 지가 한참 지나 그때 받은 꽃이 드라이플라워가 되어갈 즈음. 

책방 선생님께서 바빠서 못 와보셨다며 환한 미소로 꽃을 한 다발 들고 오셨다. 이미 끝난 전시회이며 대단한 전시회도 아닌데 괜히 소문만 내어서 부끄러웠는데 오히려 책방 선생님이 더 수줍게 꽃을 건네주신다.

'비단향 꽃무'

이름도 이쁜만큼 향기 또한 은은한 이 꽃이 꽃을 들고 오는 사람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밖에는 약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시간이었는데 가게 안에 번지는 은은한 향과 선생님의 미소로 저녁시간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단향 꽃무' 꽃말을 찾아보았다. '영원히 아름답다'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떤 역경이라도 밝게 극복하는 강인한 사람을 뜻하기도 하며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훌륭하다는 뜻도 안고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나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훌륭하다'는 이 꽃말을 새기기로 했다.


'슈가'의 데스크


세 자매가 슈가 옷을 좋아해 주셔서 같이 쇼핑을 오기도 하는데  그녀들은 똑같은 옷을 사기도 한다. 나와 여동생도 그랬듯이 자매들은 전혀 다른 스타일도 있지만 이렇게 비슷한 스타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이거 예쁘네. 니도 입어라. 나도 하나 입을 란다."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간다. 오늘은 두 분이 시간을 맞추어 오셔서 보기 좋게 서로의 옷을 봐주면서

"하하호호." 참 보기 좋다. 막냇동생이 바빠서 못 왔는데 너무 오고 싶어 했다면서 언니 두 분이서 막냇동생의 옷을 골라 주었다. 옷을 골라서 영상통화도 하며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면서 결정도 해주었다. 내가 하는 것보다 친자매인 언니들이 골라주며

"이게 괜찮아 보인다. 이 색이 더 낫다."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가게에 오지 못한 동생의 쇼핑까지 두 자매가 해주었다. 나도 덩달아 내 동생 옷 고르듯이 즐거운 시간이기도 하다. 세 자매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 가게에 온다.


-그리고 조용히 혼자 오셔서 밀린 쇼핑을 하고 가시는 분도 계신다.

오늘은 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슈가에 들르고 싶은 날이었다면서 집 근처도 아닌 슈가에 오셨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옷이 눈에 들어오는지 잘 온 것 같다며 쇼핑을 하셨다. 마음이 이끌려서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닌 우리 가게로 발길을 돌렸다는데 혹시라도 마음에 드는 옷을 얻지 못하면 참으로 허 할 것이다. 나는 나대로 괜히 미안해질 것이고..  이럴 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싼 옷을 사입는 것도 아니고 쓸데없이 몰려다니며 남 얘기나 하면서 시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이것은 내 기준에서 좋다는 말이다.


photo by sugar  가게근처 수변공원

저녁이 되었는데 또 한분 내가 '언니'라고 부르는 손님이 혼자 오셨다. 늘 같이 오던 분이 있었는데 오늘은 혼자였다. 저녁에 잠깐 하는 일이 있는데 취소가 되어 시간이 남는데 집에 바로 가기 싫어서 슈가로 발길을 돌리셨단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날이 있었다. 집으로 바로 들어가기에 무언가 아깝기도 하고 어딘가로 발길이 닿는 대로 가고 싶은 날. 그럴 때 마땅히 갈 곳이 없으면 여자들은 상가를 둘러보거나 장을 보기도 한다. 반찬거리를 사기도 하고 상가를 둘러보며 꼭 필요한 것이 아니어도 작은 무어라도 하나 손에 쥐고서 허 함을 달래기도 한다. 물론 이웃이나 친구가 때마침 함께 있다면 같이 차를 마시거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달래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혼자가 좋을 때가 더 많다. 그럴 때 우리 가게에 혼자 오는 단골손님들이 계신다.


이 모든 분들이 벌써 몇 년째 알고 지낸 인연들인가. 이외에도 기억해야 할 슈가님들이 있었다.

내가 기억해두어야 할 사람들의 애정 어린 마음. 두 번의 망설임 없이 슈가에 불쑥 오신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다. 언제 오더라도 나는 그렇게 반가운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손님들은 가끔은 혼자 이렇게 나와 마주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는 뭐랄까 오래 알아왔고 가까운 것 같지만 제삼자의 입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혼자 오는 손님은 편할지도 모른다.


저녁에 잠깐 다녀간 언니는 모임에 가는 길이라며 한껏 기분이 좋은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조금 전에 사간 옷을 입고 간다면서 기분이 좋다 하신다. 부디 모임 가서 예쁘단 이야기 듣고 나한테 보고하라고 말하면서 같이 웃었다. 전화기 너머로 언니의 행복한 웃음이 보였다. 다음에도 예쁘게 잘 코디해달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신다.


아.. 나는 이럴 때 참 행복하다.
그냥 옷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에 내가 이 일을 오래 즐기면서 보람까지 느끼면서 하고 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손님들과 같이 나이 먹어 가는 것 같다. 내일은 또 다른 반가운 손님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늦은 퇴근시간.. 작은 마을이다 보니 근처 상점들은 이미 불이 꺼져있다. 불 꺼진 설탕 마을을 뒤로한다.

-2019년 5월 어느 날-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날은 퇴근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기도 한다. 이 날은 '비단향 꽃무'를 받은 날이었다.

작년 에 써 놓은 짧은 일기 같은 글을 모아 보았다. 올해 봄과 여름 잃어버린 계절이 되었으며 이렇게 거리낌 없이 마주 보며 웃던 손님들은 마스크를 쓰고 만나고 있으며 쉽게 들르던 옷가게였지만 횟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했던 작년의 일상의 기록이 이렇게 그리운 날로 기억될 줄 몰랐다. 마음 놓고 편히 다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계절이 바뀌니 마스크를 쓰고라도 꾸준히 방문해주는 손님들 덕분에 요즘 분주해졌다. 이렇게 짬 내어 글도 쓰고 일도 하는 나는 오늘도 마음은 천국이.

다른 이들의  오늘 하루도 천국이기를.. 바라본다.


-달달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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