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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슈가 Jul 01. 2020

"그러게 장사라는게 쉬운거냐고"

화장실에서 남몰래 흘린 눈물

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 여동생은 전업주부였다. 동생은 숙녀복 가게를 하고 싶다며 작은 옷가게를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상가만 알아보고 다녔으며 못하는 이유들만 늘어놓고 추진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 상가는 이래서 고민이고, 저 상가는 저래서 고민이었다. 어떤 상가는 비싸고 또 어떤 가게는 싸기는 하는데 위치가 별로인 것 같다고 했다. 한동안 주춤하다가 또 병이 도지듯이 다른 지역에 옷가게를 알아보고 다니기도 했다. 주말이면 우리 부부를 불러내어서 여동생 부부와 같이 옷가게 자리라고 봐 둔 곳을 보러 가기도 했다. 나는 옷가게니 장사니 이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냥 내 스타일에 맞는 옷가게에서 예쁜 옷을 사 입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동생은 옷가게 하고 싶다는 말을 수년째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게를 보러 다닐 때마다 시작을 하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시작하기 전에 생각이 많았다. 당연히 생각이 많겠지만 '잘 안되면 어쩌지?' 이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미리 걱정부터 하는 편이었다.


"언니야, 이 가게는 어떻노? 안쪽이긴 한데 세가 좀 싸더라."

"괜찮은 것 같은데 해봐라."

"덜렁 시작해가지고 장사 안되면 우짜지?"

"그걸 우째 알겠노?"

"하지 마까? 위치가 괜찮나? 다른 상가 더 알아볼까?"

"그리 걱정되면 하지 마라."


내가 창업컨설팅 전문가도 아닌데 항상 물어보았으며 결론은 늘 이런 식이었다. 이런 반복을 한동안 한 것 같다. 그러다가 잠잠해지면서 옷 가게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정말 생각도 안 했던 내가 우연한 기회에 장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막상 내가 옷가게를 하게 되었다고 말하자 여동생은 충격을 받았다.


"진짜 하기로 했나? 내가 옷가게 하고 싶었는데." 라면서 부러움을 드러냈는데 시샘도 느껴졌다.

"맨날 옷가게 하고 싶다고 말만 하고 몇 년째 시작도 못했잖아."

"니는 좋겠다. 나도 하고 싶다."


여동생은 이때부터 우리 집 단골이 되었다. 우리 가게에  드나들던 여동생은 내가 하는 것을 보고 용기가 생겼는지 어느 날 옷가게를 하겠다고 점포를 얻었다고 했다. 역시 여동생은 내 '따라 쟁이'가 맞았다. 그렇게 아무의 도움도 없이 나 하나만 믿고 옷가게를 시작하였고 처음 서울 동행하는 것부터 나와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서울 갈 때 따라다니면서 일을 배울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나도 아직 초보이면서 가게도 바빴고, 남을 챙길 상황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경기가 좋았으며 나의 손님들이 많이 늘어나서 예쁜 옷가게로 인기 있는 가게가 되었다. 결국 여동생은 나와 같이 서울을 다니면서 내가 순미에게 배운 것을 가르쳐주어야 했다.



photo by sugar 북면 생태공원 금계국


서울 가면 하룻밤 만에 필요한 것들을 다 사 와야 하는데 혼자서 발 빠르게 쫓아다녀도 시간이 늘 부족했다. 그런데 걸음이 느린 동생까지 같이 다니는 것은 집중하기가 힘들어서 피곤함이 두 배로 느껴졌다.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짜증이 나기도 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남도 아닌데 좀 도와주면 어때서'라고 쉽게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의 경우는 그 당시 빡빡한 현실이 동생과 처지가 달랐다.      

어떤 날은 일이 자꾸 처지자 다리 아파서 힘들다는 동생을 매점에서 쉬라 하고 다른 상가 건너갈 때 만나자고 했다. 동생도 언제까지 나와 같이 다닐 수는 없기에 각자 알아서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 역시 처음에 그랬듯이 동생도 스스로 고르고 사야 하는 본인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은 같이 가더라도 일 할 때는 각자 해야 일도 빨리 배울 것이다 싶어서 잠깐 동생을 버렸다. 그랬더니 혼자서 울었다고 한다.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여동생을 혼자 다녀라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동생이 계속 신경 쓰이고 있었다.     


"그러게, 이 장사라는 것이 쉬운 일이냐고."

"나는 정말 생계형 일이지만 니는 심심해서 시작한 일이잖아. 니하고 내하고 같나? 나는 정말 바쁘고 힘들다."    

가게 크기부터 동생 가게보다 두배 정도 되기에 물건을 하는 양이 많아서 바빴다. 순간순간 동생이 귀찮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상가에 들어서면서부터

"니는 니대로 다녀라. 나는 나대로 돌아보고 한 시간 뒤에 다시 입구에서 만나자."    

이런 식으로 헤어지기도 했다. 시무룩해진 동생은 마지못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지만 잠시 돌다 보면 바로 내 앞에 동생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다시 동행을 하게 되었다. 동생의 귀찮음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물건 해오고 나면 그다음 날부터는 수시로 전화가 오는 것이다.     


"언니야, 너거는 어떻노?"

"뭐가 어때?"

"우리는 아무도 가격도 안 물어본다. 이거 안 나가모 우짜꼬?아무래도 이거는 잘 못 해왔는 갑다. 괜히 샀네."


동생은 밤새 골라 온 옷의 반응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없으니 불안한 듯했다.     

'돌아버리겠네. 나는 바빠 죽겠는데..'

이런 이야기를 일일이 들어주기에 너무 바빴다. 하지만 손님이 없어서 전화한 동생에게 바쁘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중요한 전화인가 싶어서 받으면 역시나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결국 짜증 부리며 전화를 끊게 된다. 이런 과정을 한동안 무한 반복하고 난 후 언제부터인가 동생은 물어보는 일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래,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거야.’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동생은 가끔 그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보면 나에게 서운했던 것과 내가 동생에게 섧게 했던 것만 기억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도 초창기에 혼자 서울 갔던 날 결국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낯선 곳에서 혼자 밤을 새우며 일을 하다가 지치고, 낯선 사람들 속에서 마음도 힘들고 눈에 들어오는 옷도 없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가서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결국 화장실 문을 잠그고 소리 없이 울었던 기억.

초보 사장님 시절 여동생과 내가 그랬듯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 같다. 나이만 먹었지, 마음은 여렸고 옷가게는 초보인 사장님이었으니까.     


photo by sugar 거제도 수국


처음에는 동생과 서울을 같이 다니면서 티격태격 다투기도 했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다. 동생이 나에게 많이 의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같이 다닐 때 혼자가 아닌 둘이어서 좋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여동생은 많은 의지가 되었던 것 같다.  동생에게는 내가 하나 있는 언니라고 나에게서 '내편'임을 느끼고 싶을지도 모른다. 초창기에 내가 힘들었던 시절에 동생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던 것이 나 또한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몇 년의 세월을 보내고 여유가 생기면서 우리는 여행 가듯이 기차를 타고 서울을 같이 다녔다. 

이제는 체력이 안되고 힘들어서 동생과 나는 기차 타고 서울 가본 지도 꽤 되었다. 둘이 늘 함께 가던 서울여행은 오랜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좋은 날 여행 가듯이 여동생과 서울을 다녀오고 싶다. 나에게도 동생만큼 편한 동행은 없을 거라는 생각은 지금도 한다. 어릴 때부터 멀리 떨어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여동생. 결혼 후에는 한 집에서 아래층과 위층에서 거의 10년을 함께 살았던 여동생. 그리고 옷가게를 따라 시작해서 거의 7년 이상 하고 있는 여동생. 이제는 집에만 있으면 병이 더 생길 나이라서 작은 가게지만 매일 외출하듯이 다닌다. 요즘 갱년기로 고생하는 여동생과 돌아가신 엄마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매일 혼자 집에만 계셨던 엄마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갱년기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고..


"그나마 우리가 큰돈을 버는 일은 아니어도 자신의 일을 가지고 갈 곳이 있어서 다행이야"


이런 결론을 내리면서 갱년기도 잘 견뎌보자고 말한다. 어쨌든 이것도 지나갈 것이니까.



#글쓰는옷가게사장님 #여동생 #가족 #자매 #생활에세이 #달달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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