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가족 소개가 필요한 꿈별이에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교감하게 될 사람은 엄마일 거야. 너는 눈도 다 못 뜨고 목청껏 소리 내 울며 네 존재를 알리려고 안간힘 쓰겠지. 너를 낳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는 대단한 존재란다. 만약 엄마가 자연분만을 하게 된다면 꿈별이 인생을 알리는 힘찬 울음소리를 듣게 되겠지. 소리 내 우는 넌 잠시나마 엄마 품에 안길지도 모르고. 안타깝게도 출산을 마친 엄마는 고통스러울 거야. 아빠가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는 유일한 고통이야. 그리고 엄마는 그걸 혼자 견뎌내고 너를 낳겠지. 아픔이 사그라들기도 전에 크게 울며 품에 안겨지는 작은 널 보며 사랑의 감정을 전하려 노력까지 하겠지. 하지만 감히 아빠가 같은 상황에 있다고 상상해보더라도 아픔이 아닌 다른 감정을 가지기 어려울 것 같고, 오래도록 기다려온 너지만 막상 처음 마주하는 순간에는 놀랍고 이상할 것 같아. 그러니 혹시라도 그맘때 엄마로부터 어떤 감정이 전해진다면 꿈별이가 적당히 이해해줘. 출산이란 게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 적어봤단다. 편지 속 몇 문장으로 담아내기엔 역부족이겠지만 말이야.
아빠랑 엄마에게도 엄마 아빠가 있어.
이 편지에서는 아빠의 엄마, 아빠의 아빠를 꿈별이에게 소개해주려 해. 꿈별이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란다.
할머니는 모든 게 사랑으로 연결되는 분이셔. 사랑 표현도 잘하시고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잘 보여주셔. 할머니는 큰 눈을 가졌고 아담한 키를 가졌어. 아담한 몸으로 아빠를 낳으시고 이만큼 자라게 키우셨어. 네 엄마는 아빠가 웃을 때마다 어머님이랑 정말 닮았다고 하는 걸 보면 진짜 꽤 닮았나 봐. 꿈별이가 나중에 아빠한테 말해줘. 그리고 할머니는 요리를 잘하셔. 가족이 건강하게 먹을 수 있도록 식단도 적절히 신경 쓰시고. 밥을 고봉으로 퍼주시는데 이걸 다 먹고 후식으로 과일을 주시거든. 근데 이것도 고봉이야. 꿈별이도 공감하게 될 거야. 나중에 혹시라도 '밥 조금만 더 주세요'라고 부탁하게 된다면 한번 더 강조해야 할 거야. 조금이라고. 왜냐하면 '한번 주면 정 없어'라는 말과 함께 새 밥이 쌓일 거니까. 할머니는 아빠가 태어나기 전부터 12살 정도 될 때까지 하고 계시던 일이 있으신데 그때나 지금이나 하실 수 있는 최대한으로 열심히 아빠를 보살피고 키워주셨어. 아빠는 엄마한테 투정도 많이 하면서 감사한 마음은 또 가득하다? 철이 없지 아직도. 할머니는 지하상가에서 작은 서점을 하셨었어. 정말 작은 서점이었는데 아빠의 유년기 추억은 거의 다 그곳에 있어. 작아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더 가득해. 아 참 이건 네가 꼭 알고 있어야 하는 부분인데, 할머니는 '걱정'이라는 게 참 많은 사람이야.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아마 꿈별이가 태어나고 할머니랑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걱정해서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될 텐데 잘 이해해주길 바란다. 아빠랑 엄마가 걱정하는 대신 할머니가 해주시는 거라고 생각해줘. 할머니는 성당을 다니시는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나가시 지도 않아. 나중에 꿈별이랑 엄마랑 아빠랑 손잡고 성당에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시는데 사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단다. 쉿 우리끼리 비밀이야. 할머니한테는 말하기 없기. 음 또 어떤 걸 소개해줄까. 참! 할머니는 먼지를 박멸시키는 대단한 초능력을 가지고 계셔. 아빠는 분명히 닦고 쓸었는데 얼마 뒤면 먼지가 생기거든. 근데 할머니 주변에는 먼지 하나가 없어. 안심하고 편하게 안기면 된단다. 흐린 날에 우산을 챙겨 나가라고 하시는데 아빠가 안 챙기면 꼭 비가 내리고, 챙기면 비가 안 와. 이건 사실 아빠가 비를 맞는 초능력을 가진 건지 할머니가 비를 정말 예측하시는 건지 모르겠어. 웃음이 많으시고 주변에 사람이 많으시고 잘 챙기시는 할머니를 좋아하게 될 거야.
할아버지는 많은 부분에서 재미를 추구하시는 분이셔. 낙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시는 범위도 꽤나 넓으셔. 마음을 표현할 때 말보다는 행동과 표정으로 하시는 분이고 가끔은 부끄러워하시면서도 말로 표현하기도 하셔. 무엇보다 대화가 잘 통해. 마치 친구랑 대화하는 느낌이 든달까. 대화를 잘 이끄시고 생각도 여러 측면에서 하려 노력하시는 센스 있는 분이야. 개인적으로 아빠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음 닮고 싶은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엄마 눈에 아빠는 할머니 판박이인가 봐. 꿈별이도 나중에 아빠 닮고 싶어 하려나... 그래 지금 떠오른 생각이 있다면 조용히 가슴속에 묻어둬. 다시 할아버지를 소개해보자. 할아버지는 정말 정말 오랫동안 같은 회사를 다니고 계셔. 아빠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때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깨달았단다. 가정을 위해서 사랑과 행동으로 최선을 다해 주시는 할머니가 있다면, 그런 할머니를 이해하고 응원해주시는 할아버지가 계셔. 그리고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감각이 좋으셔서 개그를 하신단 말이지. 근데 이게 그렇게 배꼽 빠지게 웃긴 개그가 아니라 아재 개그라고 하는... 나중에 들어봐. 분위기가 싹 환기되긴 환기돼. 또 운전을 참 잘하시고 내비게이션 없이도 길을 잘 찾으셔. 그래서 아빠 어릴 때 명절이라 이동을 해도 많이 안 막혀서 갔었던 기억이 나. 술을 못 하셔서 친구를 만나러 나가시거나 늦게 들어오신 적도 거의 없어. 심지어 아빠도 할아버지랑 단 둘이 술 마셔본 적이 없다. 할머니가 어디 가야 한다고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면 기꺼이 움직이시는 분이야. 아빠는 지금도 엄마가 운전 부탁하면 달갑지가 않...그리고 스포츠를 아주 좋아하시는데 축구는 직접 하시는 걸 좋아하시고 다른 경기는 집에서 관전하는 걸 좋아하신단다. 환갑이 지나셨는데도 여전히 축구 경기를 뛰시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해. 표현이나 애교가 있는 분이 아닌데 왠지 꿈별이가 할아버지의 잠자고 있던 면들을 끄집어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장난기 많고 자상한 할아버지를 보고 꺄르르 웃게 될 거야.
어떤 것 같아? 가족 소개를 빼고선 아빠도 엄마도 설명할 수가 없어.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너에게 가족이라는 이유로 속박하거나 의무감을 주려는 의도는 없어. 그저 아빠는 이런 가족 속에서 이렇게 자랐다는 사실을 네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뿐. 다음 편지에서는 엄마의 가족에 대해서 아빠가 아는 선에서 이야기해볼까 해. 엄마의 가족은 수가 더 많고 아빠의 가족과 특징이 너무나도 서로 달라. 그래서 또 신기하고 재미있을 거야. 그럼 다음 편지를 기다려주면 되겠고, 오늘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며 편지를 덮어보자. 언젠가 꿈별이도 자신을 소개해주기로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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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1월 01일/ 27주 1일 7개월 / 가족을 빼고선 설명할 수 없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