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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Mar 24. 2024

99번의 환생.

15화. 연적(戀敵)의 등장.

동방삭은 오늘도 자신을 찾아올 수련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처럼 땀에 푹 젖은 모습으로 그녀를 볼 수는 없었기에 그는 정원이 내다보이는 안방에서 창 밖만 바라봤다.  출발했다고 문자가 온 지 한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오지 않는 그녀에게서 다시 문자가 오진 않았을까 싶은 그는 손에 쥔 스마트폰을 봤다가 창밖을 봤다가 안절부절이었다.  드디어 쇼핑백을 든 그녀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오기 무섭게 그는 다급히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어썼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거실로 들어온 그녀는 주방에

쇼핑백을 내려놓고는 욕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닫힌 안방문에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여전히 목소리에 힘이 없는 동방삭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오자 문을 열고 들어온 수련은 이번에도 침대 곁에 다가와 누워있는 그의 이마에 손을 얹고 체온은 체크했다.  


"어제보단 혈색이 나아 보이네요."


그녀의 말에 동방삭은 아차 싶었다.  그녀를 기다리는데 조급해서 입술에 파운데이션을 바르는 걸 깜빡했던 것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간 그녀는 어제처럼 쟁반에 물과 죽을 차려와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


"미안해요.  오늘은 오래 못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자신이 꾀병 중이란 사실도 잊은 동방삭이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그녀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왜요?"


"[동방삭의 여인]이 연재 2회 만에 조회수 3위 안에 들었다고 축하 겸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해서

 편집장님과 저녁약속이 잡혔어요.

  다 동방삭씨 덕분인데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죽이랑 약 꼭 먹어요.  그리고 내일 다시 연락할게요."


그 말을 하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수련을 동방삭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것을 창문으로 바라본 그는 이내 급히 외출복으로 갈아입고는 그녀가 계약한

웹툰 회사인 짱툰 사무실로 향했다.  




동방삭이 짱툰 사무실 앞에서 몰래 숨어 정문을 지켜보고 있을 때 수련이 먼저 정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뒤를 따라 나오는 남자의 얼굴을 본 동방삭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버렸다.  


'저 눈 빛...........'


수련을 뒤 따라 나오는 남자의 안경 너머로 비치는 차가운 눈빛을 그는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그가 무리한 출정을 명령했을 때 자신을 바라보던 연개휼 장군의 그 눈빛을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모든 계획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시선에 동방삭은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수련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연개휼은 서나라 국경에 도달하기 전 동방삭과 미리 약속된 서나라 군대의 매복에 겹겹이 포위되었고 그는

자신의 병사들을 단 한 명이라도 더 탈출시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했다.  나중에 수습된 그의 시신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상태였고 시신을 인도받은 수련부인이 손으로 감겨주고서야 눈이 감겼다는 사실을 전령으로부터 전해받은 동방삭이 서둘러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그녀가 이미 죽음을 맞은 뒤였다.   


그 이후로 열 번이 넘는 그녀의 환생을 동방삭이 뒤쫓았건만 그의 과오에 벌이라도 내리듯 그녀는 언제나

다시 태어난 연개휼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아... 이번만큼은 절대 만나지 않기를 바랐건만.......

 이건 하늘이 나에게 내린 저주야.'




"수련아.  너 오늘도 나가?   시간 괜찮으면 나랑 샤크 연습실 가주면 안 될까?"


옷을 차려입고 방문을 열고 나오는 수련을 본 장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주말이면 거의 대부분 소재 수집 한다며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으로 자신을 끌고 다니기 바쁘던

동생이 웬일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그녀였다.


-"미안.  나 오늘 편집장 하고 유료 연재 관련 논의를 하기로 해서."


"야.  무슨 논의를 주말에 하냐?"


-"언니. 언니.  그런데 있잖아. 참 신기하지. 그전까진 인간미 일도 없던 사람이

  만나서 얘길 해보니. 참 괜찮아.  왜.  시크한 뇌섹남.  딱 그거라니까."


"그래?  난 또 지난번에 만난 그 남자가 너 좋아하는 줄 알았지.

 시선이 너만 따라다녔잖아."


-"무슨 소리야.  그 사람은 일 때문에 도와준 분이지.  그런 거 아냐.

  언니.  나 그럼 나간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발을 신고 사라지는 동생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장미는 그제야 동생이 입고 나간 원피스가 오늘 자신이 입으려고 미리 준비해 놓은 옷임을 발견했다.  


'어머.  그러고 보니까 저놈의 지지매, 뭔 일로 치마를 다 입었네?

  와 씨.  저거 내 거잖아.  망할. 난 뭐 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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