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묭롶 Mar 24. 2024

99번의 환생.

14화. 밴드 샤크.

장미는 동생 수련의 도움으로 팬 카페에 올릴 자료조사를 위한 태석과의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시간을 내어달라는 그녀의 말에 태석은 점심시간에 하드락포차로 와달라고 말했고 그녀는 사무실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하철 한 코스 거리에 있는 포차로 그를 찾아갔다.  



-"국수 좋아하시죠?"


포차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를 본 태석이 그녀에게 말했다.  포차를 올 때면 메인 안주가 무엇이건 간에 국수를 꼭 시키는 그녀를 눈여겨본 태석은 점심시간에 맞춰 비빔국수를 준비해 놓았다.  원래 주방에서 요리는 민수 담당이었지만 국수는 태석이 더 잘 만들어서 민수는 저녁장사를 위한 식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물과 컵을 그녀에게 가져다준 태석이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비빔국수에 참기름을 듬뿍 뿌리고 볶은 통깨도 뿌린 뒤 그룻에 국수를 담고 그 위에 절반으로 자른 삶은 계란을 올려놓았다.  

보기만 해도 맛깔나게 보이는 국수는 참기름 향이 솔솔 나서 그녀는 자신 앞에 놓인 국수를 보자마자 침을

꿀꺽 삼켰다.  


국수를 단숨에 한 그릇 뚝딱 흡입하는 동안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말없이 국수 먹방 중인 그녀를 보는 태석은 당황스러웠지만 한 그릇을 다 비운 그녀가 그룻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할 듯 숙인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가 돼서야 말을 할 수 있었다.


-"한 그릇 더 드릴까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또 그렇게 국수 한 그릇을 더 먹고 나서야 그녀의 머릿속에 '아차'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국수 먹으러 온 게 아닌데.  창피해서 어쩌지.  왜 매번 여기만 오면 이러는 걸까.'


장미는 순간적으로 밀려든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졌다.  태석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그녀를 보고 국수가 매웠나 싶은 생각에 그녀에게 물을 따라서 건넸다.


-"저희 팬 카페를 만드셨다고요?"


물을 마시던 장미는 그의 말에 사레가 들려서 콜록거렸다.  다급히 티슈를 뽑아 입을 가리고 한참을 콜록거린 뒤에야 그녀는 입을 열 수 있었다.


"제가 그동안 하드락포차 올 때마다 틀어져있는 곡이 좋아서 여길 자주 왔었는데 그 곡을 직접 부른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이렇게 음악성이 좋은 밴드가 팬 카페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하나 만드는 중인데 밴드 멤버들 정보도 없고 자료가 너무 없어서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린 그녀가 태석에게 본격적으로 밴드 샤크에 대해 물으며 해당 내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어머... 어쩜 저랑 생일이 같을 수가 있죠.  나이까지는 같을 수 있어도 생일까지 같다니 너무 신기해요."


태석도 그녀의 말을 듣고 놀랐다.  


'생일이 같다니...'


"그런데 오 년 전 경연프로그램에서 준우승까지 한 밴드가 왜 그 이후로 활동을 못하게 된 건가요?"


그녀의 질문에 태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참을 어두운 표정으로 말이 없던 그가 그녀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건 긴 얘기가 될 것 같아서 오늘 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토요일에 저희 밴드가 합주를 하니 그때 멤버들도 만나서 다시 얘기하시죠."


그의 말에 그녀는 조금 무안해졌다.  팬 카페를 위한 자료조사를 위해 만나자고 먼저 얘기한 건 자신인데 국수만 두 그릇을 먹었다는 사실이 민망해진 그녀는 사무실로 복귀를 위해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토요일에 뵐게요."


그녀가 그의 배웅을 받으며 포차 문을 나섰을 때 그녀의 스마트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고 폰 화면에 뜬 '혈육'이라는 글자를 본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응.. 왜?"


-"언니.  나 저녁에 늦을 것 같아."


"왜?"


-"엊그제 봤던 내 스토리라인 도와주시는 분이 아프데.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있데서 한 번 들려봐야

  할 것 같아."


"어.. 그래.  알았어.  너무 늦진 말고.  그럼 집에서 보자."


'보기에도 병약미가 쩔더니 아픈가 보네.  나도 그렇고 수련이도 그런 건 또 그냥 못 지나치니.. 휴..'


고개를 흔든 그녀는 사무실로의 귀사를 서둘렀다.




오랫동안 수련의 환생을 쫓아다닌 동방삭은 처음에는 유약한 자신이 강해진다면 그녀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친 그는 자존감이 강한 그녀에게 강한 모습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그녀는 언제나 약자를 보호하는 편을 택했기에 그는 그녀에게 기꺼이 약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그나마 이번 생에는그녀가 연개휼에게 또다시 마음을 빼앗기기 전에 그녀를 만났기에 그는 어떻게든 이 마지막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었다.  다음화 연재를 위해 그녀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힘이 없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자신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수련은 곧바로 자신을 찾아오겠다고 답했다.   그녀와의 전화를 끊은 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은은한 향의 미스트를 뿌린 동방삭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워낙에 핏기가 없는 얼굴에 살집이 없는 몸이라 입술에 손가락으로 파운데이션만 살짝 찍어 발라놓으니 영락없는 병자였다.  그는 침대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 그녀를 기다렸다.  


통화를 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수련은 문자로 전달받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른 뒤 집 안으로 들어왔다.


"동방삭씨. 어디 계세요?"


그녀는 거실 곳곳과 주방을 살폈지만 그는 없었고 많이 아파서 그가 실신한 건 아닌가 싶은 그녀가 다급하게 안방 문을 열었을 때 침대 위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에게 다급히 다가온 그녀가

손을 들어 그의 이마 위에 얹어 열을 먼저 체크했다.  그녀의 손길을 느낀 동방삭은 그제야 힘겹게 눈을 뜨는 척했다.  


"어머.  어디가 아픈 거예요?  병원 가야죠."


-"감기인 것 같아요.  병원까진 안 가고 좀 쉬면 나을 거예요."


"세상에 이 땀 좀 봐요.  옷이 푹 젖었잖아요."


그녀의 말에 동방삭은 속으로 조금 찔렸다.  멀쩡한 몸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자니 땀이 날 수밖에 없는데 그녀는 열이 나서 그렇다고 생각해서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물도 없고 도대체 뭘 먹고 산거예요."


주방을 둘러보고 온 그녀가 포장해 온 죽과 물을 쟁반에 받쳐 들고 침대에 누운 그에게 다가왔다.

베개를 여러 개 겹쳐서 그의 등을 받쳐 준 그녀가 침대 옆 협탁에 쟁반을 내려놓고는 물컵을 그에게 건넸다.

컵을 받으려는 그의 손이 떨리는 걸 본 그녀는 그의 곁에 앉아서 그의 입에 물컵을 대주었다.  

그녀가 떠주는 물과 죽을 먹는 동방삭은 지금이 영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그의 옷장에서 마른 옷가지를 꺼내어 놓고 그에게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한 뒤 약을 사러 나갔다.  돌아온 그녀는 그에게 약까지 먹인 뒤에야 마음을 놓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약 먹었으니까 일찍 자요.  내일 또 죽 사서 올게요."


뒤돌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를 보는 동방삭은 그 오랜 시간 동안 고통받았던 자신의 삶을 오늘 하루에

보상을 받은 것만 같았다.  그가 내미는 손길을 언제나 밀어내기만 했던 그녀의 손이 자신을 먹이고 닦아주고 어루만졌다는 사실이 꿈만 같아서 그는 이 꿈이 계속될 수만 있다면 정말이라도 당장 아프고만 싶었다.

이전 13화 99번의 환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