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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Mar 24. 2024

99번의 환생.

16화. 밴드 샤크의 지난 이야기.

동생 수련이 자신이 전날부터 미리 준비해 놓은 원피스를 입고 사라진 뒤 뭘 입고 갈지를 놓고 한참을 고민하던 장미는 흰 티에 데님 원피스를 겹쳐 입고 태석이 문자로 보내준 주소를 찾아서 길을 나섰다.  

밴드 샤크의 연습실은 용산에 있는 미군 주둔기지 인근에 있었다.  연습실은 원래 미군 기지 내 테니스 동호회에서 창고로 쓰던 곳이었지만 미군기지 축소로 인한 회원의 감소로 사용하지 않게 된 창고를 샤크가 기존 물품을 보관해 주는 조건으로 싼 임대료로 빌려 쓰게 되었다.  장미는 연습실에 들리는 길에 커피숍에 들러 아이스커피와 빵 종류를 포장해 들고 한쪽 어깨에는 카메라 가방을 멘 상태여서 연습실 앞에 도착했을 때는 땀범벅이 되었다.  나름 멤버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이미 태석과 민수에게는 오징어 사건으로 못 볼 꼴을 보이고 말았지만) 심어주고 싶었던 장미는 길 찾기 어플로 검색한 주소에 도착했음을 확인한 뒤 인근 화단에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카메라 가방에 들어 있던 거울을 꺼내어 들고 땀을 닦았다.


한시름 숨을 돌린 그녀가 고개를 들어 바라본 연습실은 그야말로 자그만 창고였다.  안에서 들려오는 악기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냥 버려진 낡은 창고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밴드 샤크에 사로잡힌

장미는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가 창고의 문을 열었을 때 맨 처음 그녀를 반긴 것은 샤크의 멤버들이 아닌 오래된 곰팡이 냄새였다.  TV 광고에 나오는 공기 중에 유해세균과 곰팡이가 득실득실거리는 바로 그 장면을 연상시키는 곰팡내가 그녀의 콧구멍을 관통해서 재채기를 유도했다.  드럼을 치다가 뒤늦게 어깨엔 카메라 가방을 메고 두 손에는 커피와 빵을 들고서 연신 재채기를 해대는 그녀를 발견한 민수가 드럼 스틱을 손에 든 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환영합니다.  우리 연습실에 여자가 온건 처음이네요."


손에 들고 있던 드럼스틱을 허리춤에 끼우고 그녀의 손에서 물건을 건네받은 민수가 그녀를 반겼다.  

스탠드 마이크를 손에 쥐고 있던 태석은 말은 안 했지만 그녀가 반가운 표정이었고 각각 스트랩이 달린 일렉기타와 베이스기타를 어깨에 메고 있던 현준과 기태는 그녀가 신기한 눈빛이었다.

그녀는 카메라 가방에서 티슈를 꺼내어 재채기를 수습한 뒤에야 자신에게 인사하는 멤버들과 연습실 안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연습실은 '열악함'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제대로 된 방음시설

없이 멤버들이 달걀판을 겹쳐 두텁게 이어 붙인 사면의 벽은 시멘트 벽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곰팡이가 가득했고 역시 방음이 되지 않아 문을 열지 못한 채 연습을 하다 보니 연습실 내부는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심각해진 것으로 보였다.  상황을 파악한 장미는 스마트폰으로 가장 최단거리에 있는 전자제품 직영점을 검색했다.   

샤크 멤버들이 연습실 출입문을 활짝 열고 그녀가 사 온 음식을 먹는 동안 장미는 태석에게 잠시 다녀 올곳이 있다고 말한 뒤 미리 검색해 둔 전자제품 직영점을 찾아갔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장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일전자라고 레터링이 된 화물트럭을 타고 연습실에 다시 나타났다.  화물차 조수석에서 장미가 내리자 운전석에 타고 있던 제일전자 직원이 화물칸에 실려 있던 아파트

지하주차장용 제습기를 이동용 카트에 실은 뒤 연습실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곧바로 설치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샤크 멤버들은 홀린 듯이 지켜보았고 이번에도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민수만 입을 열었다.


-"팬 카페를 하나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이건 팬 카페가 아니라 거의 소속사가 생긴 것 같은데....."


장미가 만들어놓은 상황이 부담스러웠던 태석은 그제야 그녀에게 다가가 만류했다.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아니에요.  전기세는 걱정 마세요.  제가 이미 다 검색해 봤고 이거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도

  있는 건데 에너지 등급도 일 등급이고 전기료도 얼마 안 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큰 금액을 저희한테 쓰신다는 게... 부담스러워서요."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한 번도 못해본 덕질을 한 번 해보겠다는데요.

  제가 좋아서 그래요.  제발 받아주세요."


그녀와 태석이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현준과 기태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뒤에서 안절부절이었고 그저

이 상황이 좋은 민수는 그냥 가만있으라며 태석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주고 있었다.  


마침내 태석이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 앉고 나머지 멤버들도 그의 주변에 자리 잡고 앉았을 때 장미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밴드 샤크 팬 카페인 샤크사랑의 회장이자 회원인

  아기상어 장미입니다."


그녀가 멤버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자 민수는 일어서서 크게 환호했고 현준과 기태는 수줍지만 반가움을 표시하는 박수를 그리고 태석도 소심하게 박수로 그녀를 반겼다.  


-"그럼 제가 멤버 소개를 먼저 할게요.  저는 밴드 샤크의 보컬인 고태석이고 이쪽은 드러머 민수, 그리고 일렉에 현준이 베이스는 기태 이렇게 네 명이 샤크의 멤버입니다."


장미는 태석이 멤버를 한 명씩 소개할 때마다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멤버들 소개가 끝난 뒤 그녀는 태석에게 지난번에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물었고 그녀의 질문에 멤버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5년 전 밴드 샤크는 인디밴드에서 선두주자로 분류되었다.  높은 음악성으로 팬층도 두터웠던 그들은 소속사는 없었지만 멤버들 간의 끈끈한 결속력을 힘으로 정기공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당시 정규방송에서 가수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자 종편방송사 중 한 곳에서 락밴드 경연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경연을 계기로 더 높은 도약을 바랐던 샤크 멤버들의 바람과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밴드 샤크는 경연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높은 음악성과 흡인력 깊은 보컬을 앞세운 그들은 파죽지세로 4연승까지 내달렸다.  하지만 당시 자신들이 키우고 있는 B+B(BOY PLUS BOY)를 경연프로그램에서 우승하는 시나리오로 락투유의 제작에 참여했던 빅엔터는 밴드 샤크가 B+B의 우승에 장애물이 되겠다고 판단이 되자 기존의 점수산정 방식을 준결승부터

애초에 현장투표 70%였던 점수산정 방식을 시청자 문자투표 70%로 뒤집음으로써 B+B에게 최종 우승을 선사했다.  결승전에서 밴드 샤크가 준우승 상패를 받을 때 멤버들이 서로를 감싸 안고 울어버리자 방송을 진행하던 진행자는 준우승에 감격해서 눈물이 나는 것 같다고 상황을 마무리했지만 그날 멤버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속사도 없고 주변에 힘 있는 지인도 없는 밴드 샤크에게 모두들 참으라고 조언했지만 태석은 그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현장에서 반응이 뜨거웠던 자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사전 조직된 대형 팬덤을 동원한 문자투표 조작으로 우승을 빼앗은 빅엔터를 용서할 수 없었던 태석은 빅엔터 대표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국내 엔터테인먼트를 장악한 빅엔터에 항의한 대가는 혹독했다.  언제나 일 년 내내 페스티벌의 헤로인을 도맡았던 밴드 샤크는 그날 이후로 공연계에 발을 디딜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자력으로 상황을

해결해 보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시간은 하릴없이 흘러갔고 밴드 샤크는 사람들에게 잊혀져갔다.




태석의 입을 빌어 밴드 샤크의 지난 5년간의 시간을 듣는 장미의 눈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현준과 기태는 이미 뒤돌아서 울고 있었고 민수마저 말이 없었다.  장미가 갑자기 앉아있던 태석의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포기하려 하지 말고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지도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도록 해요.  저도 도울게요."


그녀의 말에 이번에도 민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팬 카페 말고 저희 소속사 사장님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것도 괜찮네요.  겸업할게요.  모두 동의하시면요."


그녀가 입을 열기가 무섭게 현준과 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사장님 그런데 형 손은 언제까지 잡고 계실 건가요?"


그녀의 말에 홀린 듯이 앉아있느라 그녀가 그때까지도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태석도 새롭게 열린 자신의 소명에 도취된 장미도 민수의 말을 듣고서야 깜짝 놀라서 손을 놓고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형, 난 오늘 보았어.  형과 누나가 손을 맞잡는 순간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 샤크에게로 모여드는 것을..."


하지만 민수의 말과 다르게 우주의 기운이 아니라 온몸의 피가 얼굴로 모인 태석과 장미는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했고 그 모습을 보는 현준과 기태는 난감해하는 형의 모습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빙긋이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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