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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Mar 24. 2024

99번의 환생.

12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다음 분기에 전시 예정인 동물 민속화 도록 작업을 하느라 야근을 한 장미가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열 시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의 눈에 안방 문틈으로 새어져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신발을 벗고 거실 탁자에 가방을 내려놓은 그녀가 안방문을 열었을 때 통화 중이었던 수련이 그녀를 보고는 전화를 끊었다.


-"왔어?  늦었네?  저녁은?"


"구내식당에서 대충 먹었어.  넌 어때?  누구랑 통화 중이었어?"


-"응.  나 이번에 들어가는 작품 시나리오를 도와주시는 분하고 얘기 중이었어."


"안 풀린다고 걱정하더니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풀린 거야?

  난 또 너한테 소스 하나 주려고 했지."


-"뭔데?  뭔데 그래.  쓸만한 건가 들어보자."


언제나 소재에 목말라하는 수련은 눈을 빛내며 장미의 옷자락을 쥐고 흔들며 그녀를 재촉했다.


"요즘 내가 다음 시즌 도록 작업 중이잖아.  그런데 이상하지.

  나 도록 속에 나오는 동물들이 왠지 친근해.  자꾸 뭔가가 보이기도 하고.

  이런 건 글감이 안되나?"


-"피.. 난 또 뭐라고 무슨 대단한 거라도 있는 줄 알았네.

  언니 너 말대로라면 네가 전생에 짐승이었나 보지."




꽃님이는 환생을 거듭할수록 개미->하루살이->두꺼비->뱀->토끼 등의 순으로 더 윗 단계의 고등 생명체로 태어나게 되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그녀로서는 초식동물의 경우는 괜찮았지만 육식동물로 환생을 하는 경우에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곰이었을 때는 환생한 적 없는 생명체인 물고기라도 잡아먹을 수 있었지만 호랑이로 태어난 그녀는 자신 전생이었던 토끼, 사슴 등의 생명체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차마 해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육식을 거부하는 호랑이는 무리에서 축출당했고 그녀는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해진 채 생존을 고민해야 했다.  그나마 마을에서 일이 있어 산 중턱에 있는 성황당에 제사상을 차려 놓는 날이면 밤을 틈타 산중턱으로 내려온 호랑이는 제사음식으로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삼 년 연속된 흉작으로 식량이 귀해지자 사람들은 성황당에 제사를 올리지 않은지 한참이 되었고 배가 고픈 호랑이는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꼭대기에서 하릴없이 아래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호랑이가 양 옆으로 찰싹 달라붙은 뱃가죽을 부여 쥐고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 저 아래쪽에서 고개로 올라오는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고개를 올라온 아낙네는 고개 꼭대기에 도착하자 소쿠리를 내려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나마 건진 수수로 떡을 만들어 팔면 식량과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이를 어쩌면 좋아."


아낙이 내려놓은 소쿠리에 담긴 수수떡 냄새를 맡은 호랑이가 그녀 앞에 찰싹 달라붙은 뱃가죽을 바닥에 끌며 나타났다.


-"에그머니나."


호랑이를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은 아낙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한참 동안 숨도 못 쉬고 주저앉아 있던 아낙네는 조심스레 눈을 떠서 주위를 살폈다. 그녀의 눈에 소쿠리에

담긴 수수떡을 먹는 호랑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호랑이가 떡을 먹는 동안 조심스레 뒷걸음질치다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걸음을 내달려 그 자리를 벗어났다.  


간신히 수수떡으로 허기를 면한 호랑이는 인근 냇가에서 물을 마시고는 마을에 사는 김부자가 치매에 걸리기 전 큰 호두나무 밑에 묻어두고 잊어버린 궤짝에서 엽전 한 꿰미를 물어다 소쿠리 위에 떡값으로 얹어놓았다.


그리고 다음날 밤 앉아서 굶어 죽을 수는 없었기에 이번에는 집에서 물려내려 오던 족자를 식량과 바꾸려고 마을로 내려왔다 허탕을 치고 고개를 넘어오던 아낙네는 고개 꼭대기에 놓여 있는 자신의 소쿠리를 발견했다.

소쿠리 위에 놓인 엽전 꿰미를 본 아낙네는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집으로 돌아간 아낙은 마을에 내려가 엽전으로 곡식과 수수를 사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 늦은 저녁에

소쿠리를 이고 길을 나서는 그녀를 보고 아들인 해님이 물었다.


-"엄니.. 늦었는디 워디 가유?"


"응..  엄니. 떡 팔러 간다."




떨어지는 샤워기의 물줄기 속에서 오늘 민속화를 볼 때 어렴풋이 보였던 이미지가 다시 떠오른 장미는 그림 속 호랑이가 친숙해서 이상했다.  어떻게 이걸 잘 풀면 동생이 웹툰을 그릴 때 도움이 될 것도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흔들고는 샤워기의 수전을 잠갔다.  


'그나저나 팬 카페에 정작 밴드 멤버들 정보가 없으니.... 창피하지만 어쩌겠어 포차 사장 아니 샤크 보컬부터

 다시 만나봐야겠어.'


포차 사장을 만날 생각을 하자 밝은 빛 아래서 보았던 태석의 옆얼굴이 그리고 버스킹 때 노래를 하던 그의 얼굴이 떠올라 그녀는 왠지 얼굴이 붉어졌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본 순간부터  그녀는

그를 볼 때면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이 너무 늦은 나이에 가수를 좋아해서 생긴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춘기 소녀의 동경과 같은 것일 뿐이라고 단정 지었다.  어찌 되었든 내일 자신은 팬 카페 회장이자 회원의 자격으로 밴드 보컬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장미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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