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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Mar 24. 2024

99번의 환생.

11화. 회원이 단 한명 뿐인 팬카페.

'띠띠띠~띠리릭'


장미는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쏜살같이 현관 앞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온

동생 수련은 문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옴마야. 언니 너 뭐냐?"


"왜 이제와.  나 물어볼 거 있어."


신발을 벗는 수련의 팔목을 잡아끄는 언니의 독촉에 그녀는 신발을 털어내듯 벗고는 거실로 끌려들어 갔다.

동생을 소파에 던지듯 앉힌 장미는 얼굴을 동생에게 들이밀고는 눈을 빛냈다.


"팬 카페는 어떻게 만드는 거야?  넌 팬 클럽 활동 해봐서 알잖아."


-"아니. 갑자기 웬 봉창?  웬 팬카페?"


"나 지금 완전 진지하거든.  아까 버스킹 했던 밴드 있지.  나 그거 팬 카페 만들려고."


이 언니가 대체 왜 이러나 싶은 표정으로 장미를 쳐다본 수련이 말했다.


-"그게 그리 쉽게 되는 게 아냐.  일단 자료가 있어야지.  사진이랑 영상 이런 거..."


"그래?  하긴 박물관 도록 만들 때도 자료가 필요하니까 학술지 만드는 것처럼 만들면 되나?"


-"미친.  왜?  밴드 관련 논문 쓰게?  아휴.. 참 갈길이 멀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욕실로 들어가는 수련을 보는 장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팬 카페 사진, 팬 카페 동영상'을 제목으로 검색을 하자 수없이 많은 수의 팬 카페가 표시되었다.  그녀는

팬 카페에 공개된 사진과 동영상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장미가 팬 카페 관련 자료를 검색하고 있는 동안 욕실에서 샤워를 마친 수련이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녀의 스마트폰 알림음이 울렸다.  


[잘 들어가셨죠.  오늘 감사했습니다.-동방삭]


'무슨 이름이 이렇게 희한한지.  골목에서 두들겨 맞기 좋은 이름이야.

 그렇잖아도 잘 들어갔나 걱정됐는데 살아는 있네.

 그나저나 소재도 못 건지고 다음 주 연재를 어떡하지.'


문자를 확인한 뒤 작업용 책상에 앉은 수련은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쓸만한 건 죄다 써먹은 터라 소재가 궁한 그녀는 한참을 끙끙 앓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물을 마시려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문자 알림음이 또 울렸다.


[아참.  제가 신세를 꼭 갚아야 하는 성격이라서요.  밥 한 번 살게요.  언제가 괜찮으세요?"-동방삭]


'아휴. 자기 몸도 건사 못하는 사람이 신세 갚는 건 또 급한가 보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작업 진도도 못 나갈 것 같고 자료 조사도 할 겸 한 번 더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내일 저녁 어떠세요?  저는 홍대가 좋은데요.-수련]


그녀가 문자를 보내자마자 그로부터 좋다는 회신 문자가 들어왔다.  




락밴드 샤크는 평일에는 멤버들 모두 생업을 감당하느라 토요일에 모여서 합주를 하고 일요일에는 버스킹을 했다.  보컬인 태석과 드러머인 민수는 하드락포차에서 기타리스트인 현준과 기태는 택배 새벽배송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힘들었지만 무대에 다시 서는 날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날도 대학로에서 버스킹을 마친 뒤 악기를 챙기던 민수가 태석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형. 저 여자 또 왔네."


"어?  누구?"


민수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본 태석의 눈에 하드락포차 단골손님인 장미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공연 내내 그녀가 자신들을 스마트폰으로 찍었던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태석의 시선을

느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서 걸어가는 모습을 태석은 한참을 쳐다보았다.


장미는 공연이 끝난 뒤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왔다.  작업용 노트북에 오늘 찍은 동영상과 사진을 옮겨 담은

그녀가 안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동생을 거실로 불렀다.


"수련아... 수련아... 이것 좀 봐줘."


-"아.. 진짜. 나 바빠. 지금 한참 진도 나가는데."


동생을 기다리다 조바심이 난 장미는 노트북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동생의 얼굴 앞에 디밀었다.  

그녀의 행동에 어쩔 수 없이 언니를 쳐다본 동생 수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뭔데?"


"네 말대로 영상이랑 사진 모아 왔는데 어떤지 좀 봐줘."


수련이 보기에 그녀가 찍어온 사진과 영상은 정말 가관이었다.


-"하... 진짜..  발로 찍어도 이것보단 낫겠다.

  내가 웹툰 작가고 언니 너는 박물관 연구원이잖아.

  보이는 것들에는 폼 그니까 양식이 존재해.  응?

 구도나 배치 말이야.  

 그런데 봐봐.  사진은 죄다 초점 날아갔고 동영상은 어라. 춤을 추네.

 이걸 어떻게 보냐고."


 동생의 핀잔에 어깨가 축 처진 장미는 거실로 나와서 다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자동초점 카메라.  동영상 지원 가능'


 '어떻게 입시 공부랑 논문 심사 때보다 더 힘들지.'


 장미는 평소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쓸 때처럼 지치지도 않고 끈질기게 덕질의 세계를 공부해 나갔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난 뒤 그녀는 회원이 자신 한 명뿐인 팬카페 '샤크사랑'을 개설할 수 있었다.

팬카페의 회장이자 유일한 회원인 그녀의 닉네임은 '아기상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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