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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Mar 24. 2024

99번의 환생.

13화. 한자리에 모인 인연들.

-"백작가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네.  오늘 편집장님하고 미팅이 있어서요."


짱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수련을 본 앞 쪽 책상에 앉아 있던 직원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무실 안을 걸어가는 그녀를 본 다른 직원들도 인사를 했고 그녀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답하고는 편집장실로 들어갔다.  짱툰은 웹툰 연재 어플들 중에서 가장 늦게 등록된  업체였지만 작품내용의 신선함과 그림체의 퀄리티가 높다는 평을 받으면서 웹툰회사들 중에서 수익성이 가장 높았다.  짱툰의 높은 수익성은 작품 선택에 까다롭고 신중한 편집장 때문이란 이야기가 업계에 파다했다.  여타 회사에서 그를 스카우트하려는 제의가 있었지만 편집장의 아버지가 짱툰의 대표인걸 알고는 포기했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이미 지난번 연재기획안에 반려를 했던 편집장이었기에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그녀의 마음은 무겁고 불안했다.


-"들어오세요."


그녀가 노크를 하자 안에서 편집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의 눈에 자신을 바라보는 편집장의 차가운 눈빛이 먼저 들어와서 그녀는 순간 움찔했다.  그 어느 것에도 겁먹지 않는 그녀지만 자신의 작품에 달리는 악플과 연재기획안을 검토하는 편집장의 눈길은 정말 무서웠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편집장은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려 뽑아 들고 그녀에게 건넨 뒤 자신도 자리에 앉았다.

타블릿 가방에서 연재기획안을 꺼낸 그녀가 파일을 편집장에게 조심스럽게 건네자 그는 그녀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파일을 받아 검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파일을 받는 순간부터 수련은 앞에 놓인 커피를 마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초조함에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편집장에게서 떼지 못했다.  

첫 장을 넘긴 편집장은 두 번째, 세 번째 장으로 넘기면서 점점 더 파일에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는 표정이 심각해졌다.  수련은 그런 그의 모습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마침내 파일을 다 읽은 그가 탁자 위에 파일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수련을 쳐다보았다.  수련은 거의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의 심정으로 주눅이 들어 그를 마주 보았다.


-"제가 그동안 작가님을 잘못 판단하고 있었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번에도 또 반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이번 건은 정말 괜찮았는데 왜 그럴까 싶은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스토리라인도 이렇게 잘 뽑으시면서 그동안 왜 그러셨어요?

  저는 작가님은 작화 외에는 작법은 안된다고 판단했잖아요."


 "그럼 괜찮다는 말씀이세요?"


-"괜찮다 뿐인가요.  바로 연재 들어가시죠.  연재 계약서 초안 만들어서 곧바로 메일 보내드릴게요."




편집장실에서 나온 수련은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동방삭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방삭은 전화를 기다리던 사람처럼 신호가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지금 시간 돼요?  나와요.  제가 술 살게요."


-"어떻게 통과된 건가요?"


"한 방에 통과했어요.  그렇잖아도 언니가 창피하다고 같이 가자고 부탁도 했으니 용산에 있는

  하드락포차에서 보자고요."




그렇게 전생의 인연들과 연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죽지 못하는 한 남자가 하드락포차에 모였다.  먼저 도착한 수련이 자리를 잡았고 곧이어 문을 열고 들어오려던 동방삭은 수련이 반가워서 급히 발을 내딛다가

출입문 턱에 구두 앞쪽이 걸려 앞쪽으로 왈칵 넘어졌다.  그 순간 수련은 앞으로 급히 내달아 넘어지는 동방삭의 몸을 받아냈다.  합기도 공인 4단인 수련의 빛과 같은 반응속도 덕분에 동방삭은 바닥과의 정면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그를 부축한 수련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가 그를 처음 만났던 날 그의 얼굴의 가면을 깨뜨린 이후로 동방삭은 그녀만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그동안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매번 그녀를 잃어야 했던 그는 그녀의 따뜻한 배려에 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에구.  그럴 수도 있죠.  뭘 그런 거 가지고.. 앉아요.  네.. 제가 소맥 시원하게 말아드릴게요."


동방삭은 감동받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처럼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던 수련은 소주 조금에 맥주를 섞은 뒤 잔을 동방삭 앞에 놓아주고 자신도 잔을 채워 그에게 건배를 권했다.  기분 좋게 한잔을 그대로 들이킨 수련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게 다 동방삭씨 덕분이에요.  아.. 정말 이건 내가 봐도 이야기가 찐이더라고요.

  연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죽지 못하는 한 남자의 순애보... 캬...

  너무 가슴 아프잖아요.  특히 이 리얼리티가 아주.. 그냥.

  저 오늘 편집장한테 제대로 인정받았잖아요.  저 너무 좋아요."


그런 그녀를 보며 동방삭은 속으로 그녀에게 하지 못하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사실적일 수밖에 없죠.  그게 다 내 얘기고 당신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수련이 다시 잔을 채울 때 그녀의 언니인 장미가 포차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 장미를 보는 동방삭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결국 전생의 할머니가 현생의 동생이 된 거네.  

독수리로 환생사진관을 찾아온 뒤로 인간으로는 처음 보는군.'


동방삭은 자신의 손으로 99번을 환생시킨 장미를 보고는 일어서서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동방삭이라고 합니다."


그의 인사를 받은 장미는 동생에게 그가 누구인지 눈으로 물었다.


-"언닌 처음 보지.  여기는 내 스토리라인 도와주시는 분이셔.

  왜.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잖아."


"아.. 그분이 이분이셨구나.  반가워요.  제 동생 일 도와주신다니 정말 감사하네요."


그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주방에서 수련이 주문한 안주를 든 태석이 그들의 테이블 위로 안주를 내려놓았다.  동방삭은 이번에는 태석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환생을 99번 해서라도 동생을 만나겠다고 하더니 결국 만났구나.'


그렇게 얽히고설킨 인연들은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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