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이끄는 가난과 불행의 쌍두마차!

#목로주점 #에밀졸라 #책 #루공마카르총서 #소설

by 묭롶

<줄거리>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를 피해 어린 나이에 연인인 랑티에와 동거를 했고 열네 살에 큰 아들 클로드를 낳고 뒤이어 둘째인 에티엔을 낳은 제르베즈는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속옷까지 전당포에 잡힌 빈털터리 상태로 연인 랑티에에게 버림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불행에 굴복하지 않고 세탁부 일을 하면서 아이들과 생계를 꾸려나가다 함석공인 쿠포의 구애를 받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얘기하며 청혼을 거절했다. 거듭된 쿠포의 청혼에 결혼을 허락한 제르베즈는 그와의 행복한 한때를 보내며 셋째로 딸아이 나나를 낳았지만 나나가 세 살이 되던 해 쿠포는 작업 중 지붕에서 추락해서 생사를 헤매게 되었다.


거듭된 불행에도 제르베즈는 모아둔 돈을 모두 쿠포를 치료하는 데 사용하며 헌신적으로 그를 간호했지만

회복한 쿠포는 기존의 착실한 노동자로 돌아가지 못한 채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했다. 쿠포가 알코올 중독에 빠져들었지만 제르베즈는 자신만의 세탁소를 꾸려나가며 세탁소(제르베즈의 꿈)를 꾸릴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성실한 청년 구제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의 생일날 집으로 찾아온 옛 동거남인 랑티에로 인해 구제는 절망하게 된다. 이후 랑티에와 쿠포로 인해 제르베즈의 경제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게 되고 세탁소가 원한관계에 있던 비르지니에게 넘어가고 딸 나나가 가출해서 거리의 여자가 되자 모든 것에 절망해버린 제르베즈는 자신의 아버지와 남편처럼 알코올 중독이 되어 버렸다. 남편 쿠포는 결국 알코올로 인한 섬망증으로 사망했고 뒤이어 제르베즈는 굶주림과 알코올 중독과 추위로 사망하게 된다.





<외할머니>


나의 외할아버지는 평생을 본인 앞으로 된 전답 한 마지기 없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술과 화투에 빠져 살았다. 생계를 위해 태어난 딸들(이모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식모나 공장으로 보내져 돈을 벌어야 했고 외할머니는 일평생을 남의 전답에서 품팔이로 살아야 했다. 어린 시절 육아에 지친 엄마가 우리를 대책 없이 외갓집에 보냈을 때 나와 여동생은 길어 먹는 우물물 때문에 물갈이를 해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두드러기가 나서 가려움에 밤낮을 훌떡훌떡 뛰어야 했고 외할머니는 그런 우리에게 약도 없어서 본인의 침을 발라주며 안타까워하셨다. 반찬은 김치도 없이 깨소금이 전부였고 외할아버지는 언제나 당고개에 있는 화투방에 머물렀다. 평생을 품팔이로 생계를 꾸려야 했고 생계 때문에 자식을 품에서 키우지 못하고 남의 집 식모살이로 보내야 했던 나의 외할머니는 일흔 조금 넘은 연세에 맛난 거 좋은 옷도 누려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엄마>


바람은 피우지 않았지만 술과 도박으로 평생을 탕진한 외할아버지의 둘째 딸로 태어난 엄마는 서울에 있는 부잣집에 어린 나이에 식모로 보내졌다. 식모살이를 하느라 보통 아가씨들보다 혼기가 늦은 엄마는 공장을 운영해서 먹고 살만 하다는 중매쟁이의 말만 믿고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시집을 와보니 남편은 정말 난폭한 마마보이였고 시어머니는 괴팍한 호랑이였으며 아들만 원하는 통에 딸만 줄줄이 세 명을 낳은 끝에 막둥이로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공장이 부도에 가까워질수록 알코올 중독과 그로 인한 폭력의 수위가 높아가는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다가 서른 중반에 결국 부도를 낸 남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시어머니와 네 명의 자식을 떠안게 되었다.


<나>


그리하여 외가 쪽의 알코올 중독과 친가 쪽의 알코올 중독을 필연적으로 물려받은 나는 아버지가 살아생전 밤마다 패악질을 부릴 때마다 숨죽여 울면서 나는 크면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를 거듭했다고 한다. 하지만 열아홉 살부터 시작한 직장생활과 굴곡 많은 삶 때문이라고 하면 핑계가 되겠지만 나는 술을 좋아하는 중년이 되었다.






< 다시, [목로주점 ]>


에밀 졸라가 루공마카르 총서를 통해 개인의 유전적 형질에 환경적 요인이 더해져서 발생하는 시대적 감성을 소설로 옮기겠다는 계획의 첫걸음으로 써낸 [목로주점]을 읽으며 나는 소설 속 인물 제르베즈가 우리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나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82년생 김지영]이 아니더라도 [목로주점]이 쓰인 1870년대를 살던 제르베즈도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의 암무도 1920년 이후의 대한민국을 살았던 나의 외할머니도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나도 마찬가지로 여성의 삶은 시대를 떠나 유독 여성에게 가혹했다.







{ 그들이 가져다준 독주를 한 모금 마신 제르베즈는


얼굴을 찡그렸다.


~두 번째 잔을 마시자 제르베즈는 그녀를


괴롭히던 배고픔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아!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건 개의치 않았다.


사는 게 언제 그녀에게 이만큼의 즐거움이라도 선사해준 적이 있던가. }


[목로주점2] p 189





‘어디 이렇게까지 해도 네가 버티나 보자’라는 식의 [목로주점] 속 제르베즈를 시기하는 그들의 이웃처럼 운명은 넘어졌다가 일어나서 걸어보려는 제르베즈의 발목을 거듭 걸어 진창 속에 연거푸 처박았고 결국 그녀는 진창 속에서 더 이상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죽었다.






{ 그러자 죽어가는 소녀의 앙상한 몸이 드러났다.


오! 신이시여! 이토록 가혹한 운명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제르베즈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길가의 돌마저 눈물 흘리게 만들


비참함 그 자체였다. } [목로주점2] p277






왜 이렇게 운명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한 것인지 읽는 내내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팠다. 알코올 중독인 비자르가 자신의 아내를 때려죽인 후 여덟 살 밖에 안된 딸아이를 채찍질로 끝내 때려죽이고 만 것처럼 가난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의욕을 잃기 힘든 사람들에게 운명은 불행을 덤으로 얹어주었고 가난과 불행이라는 쌍두마차를 끄는 운명은 그들을 죽음으로 질주하게 만들었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이 신문에 연재되었을 때 부르주아들은 노동자들의 삶을 너무 과장해서 표현한 작품이라고 공격했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을 가감 없이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그나마 이명박근혜를 탈출한 대한민국을 사는 지금 [목로주점]을 읽은 나에게 이 책은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는 고사하고 중산층이 될 수 없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와 같다.






{ 이제 제르베즈는 모든 게 엉망이 될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먼지가 구멍을 틀어막고 벨벳처럼 사방에 깔리기를 기다리면서

점차 나른한 나태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 점차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은

몸과 마음을 몽롱하게 만드는 관능적 쾌락마저 안겨주었다. } [목로주점2] p88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불행은 찾아온다. 하지만 그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여력이 부자에게는 있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치트키’가 없다. 예를 들어 한 달에 300백만 원을 벌어서 4인 가족이 먹고사는 가정에 보험을 들지 않은 부모 중 한 명이 큰 병에 걸려 중환자실에 입원을 해서 하루에 간병비만 현금으로 16만 원씩 든다고 가정을 해볼 때(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이 가정은 십중팔구 와해된다. 일차적으로 경제적으로 와해되고 뒤이어 가족이 와해된다. 그리고 와해가 된 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목로주점]에서 쿠포가 지붕에서 추락을 당하는 일 없이 그전처럼 성실하게 함석공으로 살고 제르베즈는 세탁소를 운영했다면 이 가정에 소설과 같은 참혹한 죽음이라는 결말이 찾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그녀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식은땀이 났고,

자신이 마치 공중으로 던져졌다가 떨어지면서

포석의 튀어나온 모양에 따라 앞뒤가 결정되는

1수짜리 동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목로주점1] p82






언제든 둘 중 한 명이 직장을 잃으면 지금의 삶에서 곧바로 바닥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지만 보험 하나도 들지 못한 채 홀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생계까지 감당해야 하는 나로서는 소설 속 제르베즈의 일이 남일 같지가 않다.






{ “열심히 일하면서 배불리 빵을 먹고,

몸을 누일 수 있는 방 한 칸을 장만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자신의 침대에서 죽는 삶 말이에요……”} [목로주점1] p73~74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나라가 전 세계적 민영화의 물결 속에서도 지금의 대한민국이 국가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나가는 성실한 가장을 둔 국가라는 점이다. 만약 소설 속 랑티에(2mb에 가까운) 같은 작자가 국가의 가장이 된다면 그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현재의 안정 속에서 나는 앞으로의 불행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목로주점]을 읽고 고민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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