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피 말렸던 5월의 런던
드디어, 최종 면접만이 남았다. 200개가 넘는 서류 지원 중에 딱 하나 남은, 나의 유일한 카드였다. 열흘동안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준비했다. 주어진 과제는 10장 이내의 피피티 자료로, 실제 회사 클라이언트의 신제품 론칭 KPI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고안해 내고, 소셜 미디어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창의적인 캠페인을 기획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주어진 과제는 물론이고 마켓 인사이트, 피피티 디자인, 나의 아이디어를 가상으로 시각화시킨 목업(Mockup) 자료 등 조금이라도 플러스 점수가 될 만한 요소들은 다 집어넣었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여서 프레젠테이션을 완성했다. 그리고 마지막 이틀간은 정말 열심히 발표 연습을 했다.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발표 준비는 따로 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영어로 하는 첫 프레젠테이션이기도 했고 실수 없이 완벽해야 했으니까. 내 인생에 이렇게 열심히 몰두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부은 10일이었다.
4월 26일 프레젠테이션 당일, 떨려서 잠도 제대로 못 잔 채로 면접에 참여했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다 보여주고 얼른 끝내자 라는 마음뿐이었다. 총 1시간의 면접이었는데, 40분 정도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머지 20분은 자유롭게 질의응답하는 시간이었다. 하이어링 매니저를 포함한 그동안 면접을 보았던 3명의 사람들이 모두 참석했다.
이젠 정말 합격인 걸까?
결과적으로는 큰 실수 없이 프레젠테이션을 잘 마무리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화기애애했다. 모두가 내 전략에 대해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며 칭찬했고, 포토샵으로 밤이 새도록 완성한 내 목업 자료는 엄청난 플러스가 된 듯했다. 향기 마케팅을 강조한 아이디어였는데 면접관 중에 한 명은 내 프레젠테이션에서 실제로 그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는 피드백까지 주었다. 질문도 대부분 내가 예상한 질문들이었고 평이한 수준이라 대답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입사해서 얼른 함께 일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그들은 웃으면서 곧 피드백을 주겠다고 했다. 면접을 다 끝내고 나도 모르게 꺅! 하고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마무리했고 걱정할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5번의 면접, 마지막 최종 과제까지 무사히 잘 끝마쳤으니,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합격 소식을 듣겠지 싶었다. 런던에서 구직한 지 한 달만의 성과였으니 이 정도면 꽤나 선방했다 싶었다. 런던에서 직장인이 되어 출근하는 상상에 마냥 기뻤다.
그렇게 회사는 잠수를 탔다
그 후로 3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지난 5번의 면접을 진행하는 동안, 하루나 이틀 내로 바로 피드백이 왔었기 때문에 괜히 불안했다. 구글에 검색을 해봤다. 최종 면접 이후 팔로업은 보통 최소 일주일까지는 기다리는 게 국룰이라고 했다. 그래. 내가 성격이 급한 거겠지 싶었다. 일주일까지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때까지도 회사로부터 아무런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 인사팀에 바로 메일을 보냈다. 혹시 결과가 나왔으면 피드백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래도 답장이 없었다. 그렇게 2주 차가 되었다, 나는 점점 미쳐가기 시작했다. 다시 인사팀에 메일을 보냈다. 바쁜 것 알겠는데 면접 본 것에 대해 결과를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이후로 또 다른 5일이 지난 월요일에 답장이 드디어 왔다. 그동안 본인이 휴가를 갔었다며 목요일에 사무실에 돌아가니 그때 캐치업 하자며, 언제 시간이 되는지 메일로 남겨달라고 했다. 정말 속에서 천불이 날 정도로 답답했지만 회신을 보내고 기다렸다. 면접을 본 이후, 거의 매일 타워 브리지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하루종일 기분이 왔다 갔다 하고 정말 답답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마음을 비우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지 싶었다. 어쩔 때는 너무 속상해서 펑펑 운 날도 있었다. 그만큼 간절했다.
약속한 목요일이 왔다. 그는 약속한 시간까지 여전히 아무런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내 인내심은 바닥을 보였다. 하이어링 매니저한테까지 메일을 보냈는데, 아파서 2주간 병가를 냈다는 자동 응답 이메일을 받았다. 이제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5차까지 시간을 내서 면접을 본 사람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면접을 함께 봤던 SVP를 참조를 넣어서 마지막 이메일을 보냈다. 5월 17일, 면접을 본 지 3주째 되던 날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인사팀에서 바로 전화가 왔다. 내 메일을 계속 무시하고 잠수를 탄 인사 팀장이었다. 그동안 본인이 휴가를 다녀와서 정말 바빴다는 둥 구구절절 서론을 길게 늘어놓기 시작하더니, 미안하지만 이 직무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채용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었는지, 내가 못해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둥 의미 없는 위로를 이어나갔다. 사실 이미 체념한 상태여서 결과가 놀랍지는 않았다. 하이어링 매니저가 2주 병가를 냈으니, 당연히 나 대신 뽑힌 사람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최종 면접을 봤을 것이고 최소 2주 전에 최종 결과가 이미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한 달 가까이 잠수를 타고 나서야 알려주다니... 이 회사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참 잔인하게도, 그때 친구와 만나서 브런치를 먹고 있었다. 친구가 무슨 전화냐고 하길래 "아무것도 아냐! 얼른 먹자"라고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겼다. 눈물이 났지만 꾹 참았다.
헌신하다 헌신짝 되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현실이 훅 하고 들어왔다. 당연히 합격하리라 생각한 회사에서 최종 탈락을 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덧 5월 말이었다. 나에게 남은 카드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회사 전형에 집중하느라 아무 데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달의 시간을 그냥 날려버렸다. 아, 헌신하다 제대로 헌신짝이 되었구나.
이제 당연히 합격을 해서 다음 달부터는 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큰 오산이었다. 그동안 친구네 집에 계속 얹혀살았는데, 이제 곧 취직하니 이사를 나가겠지 싶어 집까지 보러 다녔었던 나 자신이 정말 바보 같았다. 이제는 더 이상 친구에게 의존할 수 없었다. 친구에게 그동안 고마웠다 이야기하고 얼른 방을 새로 구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제 독립하게 되면 최소 한 달에 150만 원은 월세로 빠져나간다. 통장 잔고를 들여다봤다. 계산을 해보니 여름이 다 가기 전까지 취업을 못하면 진짜로 빈털터리가 된다.
당장 나가서 알바라도 구해야 하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그동안 준비하던 회사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엄마, 나 돈 다 떨어지면 진짜 어떡하지?'라는 나의 하소연에 엄마는 '그럼 한국에 돌아와야지 뭐'라고 했다.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진 말이었을 텐데 그게 뭐라고 어찌나 서운하던지, 엄마에게 말을 그렇게 밖에 못하냐며 버럭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속상해서 하염없이 울었다.
어떻게 마음먹고 나온 영국인데, 이대로 한국에 돌아갈 수 없었다. 아니,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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