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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Feb 26. 2024

움츠러든 영어 자존감 극복하기

영어로 말을 하려고만 하면 벙어리가 되는 이유

나는 영어는 곧잘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학생 때도 영어 공부나 점수로 스트레스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영어를 포함한 새로운 언어 배우기를 늘 좋아했다. 나에게 외국어 공부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나에게 유일한 취약점이 있었는데, 바로 영어로 말을 하기만 시작하면 얼어붙는다는 것이었다.


그놈의 완벽주의

나는 사실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바로 '완벽주의' 성향 덕에 애초에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을 하지 않게 되는 아주 못된 버릇 때문이다. 나는 내가 완벽주의자라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이걸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지만 (글도 썼다.) 사실 그 '완벽'이라는 욕심을 놓기가 쉽지 않았다.

영어도 마찬가지였다. 완벽하게 말해야 한다는 부담감,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나도 내 머릿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어쩔 때는 제 실력 발휘를 못하는 날도 있었다. 예를 들면, 사업부에서 영어를 제일 잘한다고 해서 미국 본사와의 미팅에 불려 갔는데, 머리가 하얘지는 바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해서 정적이 흘렀던 적도 있었고, 이직할 때 정말 간단한 영어 인터뷰 질문이었는데도 한번 버벅거린 이후로 멘붕이 와서 결국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 했었던 적도 있었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을 차게 될 정도로 나에겐 꽤 큰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사실 토종 한국인이 원어민 수준으로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는데,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그놈의 완벽주의가 이따금씩 고개를 내밀었다.


난 네 공부 비법을 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어

이제 영국에 왔으니 완벽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접어두고 일단 영어를 써야 했다. 무엇보다 여기서 취직을 하려면 영어로 인터뷰를 어떻게든 해내야 했고, 나중에 취직을 하게 되더라도 이젠 영어로 일을 해야만 할 운명이었다. 이젠 더 이상 완벽주의라는 그늘로 피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그 흔한 전화 영어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었는데, 런던에 온 이상 강제로라도 말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 영어를 전문으로 하는 곳에서 화상 스피킹 수업이 있다고 해서 신청을 했다. 이게 뭐라고 괜히 떨렸다. 마음을 굳게 먹고 그냥 친구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마음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나의 지금 상황을 이야기했다. 영국이 너무 좋아서 영국에 왔고, 이제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영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머리가 하얘지곤 한다고. 그래서 스피킹 실력을 좀 향상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지금까지 본인이 만났던 학생들 중에 내가 영어를 제일 잘하고, 이미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이 높아서 본인이 가르칠 게 별로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내가 지금의 수준까지 오게 된 공부 비법을 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다는 말도 했다. 마지막 수업에서 그녀는, 이미 나의 영어 실력은 자기가 봤을 때 흠잡을 데가 없으니 자신감을 갖고 런던 생활 잘 해내갔으면 좋겠다며 응원해 주었다. 문득 생각해 보니 그간 수업에서는 말을 하던 도중에 한 번도 막히거나 머리가 하얘진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늘 그게 고민이었는데 말이다.


늘 평가 대상이었던 영어

한국에서 영어로 말하기에 자신이 없었던 순간들을 떠올려 봤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의 영어는 늘 평가 대상이었다. 학교 시험, 대입 수능, 대학을 가서도 내 영어에는 항상 점수가 매겨졌었다. 취업을 위해서도 토익, 오픽 등 영어 점수가 꼭 있어야 했다. 이왕이면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영어 스피킹에 대한 평가 기준은 더 엄격했다. 특히 주변 사람들로부터 말이다. "너 영어 잘한다며? 한번 들어보자"라는 식의 태도에 오히려 주눅이 들어서 영어로 말을 하기도 전에 내가 틀렸는지 아닌지에 과하게 집착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영어 말하기는 늘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하는 상황에서는 실수가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과 나의 완벽주의 성향이 더해져서 '영어로 말하기 = 두려움'이라는 공식이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듯했다.

굉장히 공감이 갔던 유튜브 / '일간 소울영어' 채널 - 영어 말하기가 두려운 이유 (feat. 영어 평가질 극복하기)


영어 "자존감" 극복 프로젝트

큰 깨달음을 얻고 나니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방법이 보였다. '영어는 자신감'이라는 말을 흔히들 하는데, 나에게는 움츠러든 '자존감' 극복이 우선이었다. 적어도 영국에서는 내 영어 실력을 나노 단위로 평가받지 않을 테니, 우선 실제로 영어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서 영어로 말하는 데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일 오후에는 이력서를 쓰거나 서류를 넣고 주말에는 보통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쉬었는데,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런던에 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그 시작은 웃기게도 '데이트 앱'이었다. 언어를 늘리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연애라고 했던가. 데이트도 하고 영어 말하기 연습도 할 수 있었으니 나에겐 일석이조였다. 같이 살던 친구에게 우스갯소리로 '나 영어 스피킹 연습 하고 올게' 라며 집을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오프라인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사람들과 말하는 데 익숙해지니 말이 술술 나왔다. 지금 남자친구와의 첫 데이트에서도 내가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니 여기서 몇 년은 산 사람 같다며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날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이유가 내가 내 가치관이나 생각을 뚜렷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내 영어 실력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진 것은 내 태도였다. 한국에서처럼 문법이나 정확도, 발음에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틀리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영어로 나를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앞으로 인터뷰가 잡히더라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준비만 잘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엔 리크루터 전화 한 통도 심장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하면서 받았던 내가, 지금은 수많은 글로벌 클라이언트들과 미팅을 하고, 그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전략을 의논하고 협상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미친 듯이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해서 실력이 늘었을까? 그랬다면 정말 좋은 영어 공부 콘텐츠가 되었겠지만 아쉽게도 아니다. '지금 내 영어는 완벽할까'에 대한 대답도 '당연히 한참 멀었다.'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매일 언어의 한계에 부딪힌다.


어떤 날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영어를 죽어라 공부해서 실력을 키우면 자신감이 더 생기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자신감과 자존감은 기다린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오직 내 마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런던에 살다 보니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자신감 하나로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더 풍부한 삶을 살기도 하는 반면, 오히려 나처럼 완벽주의에 갇힌 사람들은 본인이 세운 벽 뒤에 숨어서 스스로 자존감을 깎아내려 소중한 기회들을 놓치기도 한다. 지금도 완벽주의에서 벗어나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여기서 산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회사에서, 클라이언트 앞에서 실수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자책을 할 때도 있다. 달라진 점은 더 이상 내 자존감을 깎아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어는 내 모국어가 아니니 실수하고 틀리는 것은 당연하니까! 유치하지만, 가끔 자책을 할 때마다 나는 이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훌훌 털어내곤 한다.


"너넨 내가 영어 하는 것만큼 한국어 못하잖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 구글 UX 디자인팀 리드로 계시는 김은주 님의 링크드인 글. 많은 공감이 되었던 글이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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