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한 번의 YES가 찾아올 때까지
영국처럼 이민자들이 많은 나라에 살면서 알게 된 것은 이 세상에는 동기부여를 주는 대단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운이 좋게도 런던에 있는 나의 친구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모국을 떠나 타지에서 바닥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삶을 찾으러 온 사람들. 현지인들보다 몇 배의 노력으로 악착같이 힘든 이방인 생활을 견디고 비로소 정착을 하게 된 사람들.
그 친구들은 구직 준비로 불안해하는 나를 늘 괜찮다며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모두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었다. 수십 번의 거절을 경험해도 괜찮다고, 딱 한 번의 기회면 충분하다고. 그들도 수많은 거절을 겪은 끝에 기적적으로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99%의 성공률이 아니라 99번의 NO를 받아도 결정적인 한 번의 YES였다.
Fake it till you make it
사라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런던으로 온 지 10년이 훌쩍 넘은 친구다. 22살에 런던에 혼자 와서 자잘한 알바부터 시작해 백화점 판매직원을 하다가 지금은 큰 테크 기업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는 '런던의 멋진 친구' 중에 한 명이다. 그 친구는 내가 자신이 처음 런던에 왔을 때 모습 같다며 늘 나의 힘듦에 공감해 주었고, 그래서 그런지 나를 친언니처럼 챙겨주었다.
나는 한국에서 7년의 직장생활을 이미 했고 영국에서는 전혀 다른 일을 하려다 보니 신입도 경력자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연차로만 따지면 여기서는 시니어 매니저나 디렉터를 해야 할 경력인데 커리어를 바꾸려는 나에게는 영국에서 바로 리더 직급을 맡기엔 자신감도 없었고 그렇다고 쌩판 신입으로 시작하기에는 경력도, 아는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력서를 넣을때 애매한 순간들이 많았다. 하루는 사라가 나에게 잘 맞는 것 같다며 프로젝트 매니저 공고를 하나 보내줬는데 5년 차 이상의 시니어급 연차였고 2-3명의 팀원들을 리딩하는 직급이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나는 프로젝트 매니징이라는 것을 해보지도 않았고 이제 영국에 막 왔는데 매니저가 되어 팀을 리딩해야 한다니... 이건 나에게 너무 Too much 인 것 같아'라고 했다. 그랬더니 사라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Hey, you should fake it till you make it"
한글로 직역하자면 '될 때까지 그런 척 해라', 혹은 '척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는 뜻인데, 아직 그 목표를 이룰 능력이 없다고 느끼는 상황에서도 결국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을 때 쓰는 말이다. 사라는 내가 팀을 리딩해 본 경험이 없어도 경험해 본 것처럼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고, 이미 7년이나 경력이 있으니 그것을 토대로 직무의 특성에 맞게 어떻게든 잘 풀어내면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부풀려서 거짓말이라도 하라는 뜻인가 싶었다. 그러다 나중에 뽀록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런데 이곳 문화에서는 그런 식으로 자신이 가진 능력치를 최대한 부풀려서 말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겸손이 미덕인 문화권에서 온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처음엔 영 마음이 껄끄러웠지만 한 번 노력해 보기로 했다. 막말로 내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 일일이 팩트 체크를 하는 회사는 없을 테니.
그렇게 매 순간 Fake it 하다
그 조언 이후로 일단 내 경력이 조금 모자라다고 생각되거나 불가능해 보여도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운이 좋아 인터뷰까지 가게 되면 최대한 내가 그들이 찾는 '그 사람'이 된 것 마냥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아마존도 그 시도 중에 하나였다. 신기하게도 그러다 보니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Fake it till you make it'은 어쩌면 단순히 '그런 척을 하라'는 뜻보다는, 불가능해 보여도 언젠가는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용기를 가지라는 뜻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은 'Fake it' 하는 것일지 몰라도 나중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결국 그 빈 공간을 모두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나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마지막 대면 면접
8월 4일, 마지막 5차 대면 면접을 보는 날. 면접 시간 10분 전쯤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니 정말 멋진 사무실이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상상만 하던 '외국 테크펌'의 모습 자체였다. 컬러풀한 인테리어, 자유로운 분위기, 크게 흘러나오는 음악,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 면접 보기 직전이라 너무 떨린 와중에도 찰칵찰칵 사진을 찍으며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냈다. 더욱더 여기에 입사하고 싶어졌다.
하이어링 매니저가 나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그동안 화상으로만 만나다가 실제로 보니 느낌이 묘했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묻던 그녀는 나를 미팅룸으로 안내했고 그곳에는 다른 팀 디렉터도 있었다. 내가 긴장한 것이 느껴졌는지 그들은 최대한 나를 편하게 해 주려고했다. 사실 면접이라고 했지만 그냥 간단한 커피챗에 가까웠다. 내가 어디에 사는지, 회사까진 얼마나 걸렸는지, 재택과 오피스 근무를 섞어서 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당연히 좋죠....) 등 가벼운 질문들을 물어봤다. 그리고 클라이언트를 대면하는 업무가 괜찮은지, 적성에 맞는지 물어봤다. 나는 쭉 브랜드에 소속되어 일했기 때문에 사실 클라이언트를 상대한 경험 없었지만, 'Fake it till you make it' 정신을 떠올리며 한국에서도 언제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해왔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오히려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 수많은 거래처들을 만나왔으니 뭐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다 갑자기 누가 노크를 하더니 맥주 카트를 밀면서 나타났다. 회사에서 술이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풍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하이어링 매니저는 웃으면서 매주 목요일 오후에 회사에서 이렇게 맥주나 와인을 직원들에게 나누어 준다며 원하는 것을 마음껏 고르라고 했다. 순간 이것도 하나의 테스트인가 싶어서 최대한 도수가 낮은 병맥주를 골랐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은 의심이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다. 술을 마시며 면접을 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래도 술 덕분인지 꽤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면접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면접이 다 끝나고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끝나고 술병을 거기다 두고 나왔어야 했는데 사무실 밖에 들고 나와버렸다. (우리 매니저는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하며 나를 놀린다.) 대낮에 런던 시내에서 빈 맥주병을 들고 다니는 내 모습이 바보 같고 황당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이제 진짜 다 끝났다. 직접 오피스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 더 간절하게 합격하고 싶었다. 한편으론 어깨가 정말 가벼웠다. 그동안 정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찾아온 한 번의 YES
다음날 8월 5일 금요일, 지금 남자친구와 데이트가 있던 날이었다. 저녁 6시쯤에 런던 브리지 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런던의 여름 날씨를 한껏 즐기며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인사 팀장의 전화였다.
내가 최종으로 합격을 했고 지금 미국 본사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결재가 나는 대로 나에게 오퍼 레터를 보낼 것이라고 했다. 손, 목소리,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내가 잘못 이해한 거면 어쩌나 싶어서 계속 물어봤다. 인사 팀장도 본사의 결재가 나지 않은 상황이라 100% 확답을 주진 않았고 미국과의 시차 때문에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건데 그래도 소식을 얼른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 '합격'이 맞는 거겠지?', '아니야 그래도 진짜 오퍼 레터를 받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야' 라며 나도 모르게 방어 기제가 불쑥 나왔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얼마 안 가서, 한 15분 정도 지나 다시 전화가 왔다. 본사의 승인까지 났으니 공식 오퍼 레터를 보낼 것이라며 메일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출근일은 언제가 괜찮겠냐고 물어봤다. 세상에.... 나 이제 진짜 진짜 진짜 합격했다!!!!!! 인사팀장은 회사 쪽에서도 나를 맞이할 준비가 필요하니 출근일은 2주 정도 뒤가 어떠냐고 했고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침 조가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I've got an offer!!!!'라고 소리치며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 얼떨떨해하더니 누구보다도 함께 기뻐해주었다. 그리고는 이건 공식적으로 축하해야 할 일이라며 나를 근처 펍으로 데려가 샴페인을 주문했다. 어쩌면 나에게 제일 중요한 소식을 가족보다도 먼저 알게 된 사람이라니. 역시 인연은 인연이구나 싶었다.
그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동생에게 화상 통화로 소식을 전했다. 합격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동생은 갑자기 목놓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마 함께 여행하며 내가 마음 고생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겠지. "야 울긴 왜 우냐"고 웃으면서 동생이 우는 것을 보니 나도 눈물이 왈칵 났다. 역시 내 마음을 100% 알아주는 사람은 내 동생뿐이구나... 그동안 6개월 동안 고생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소식을 들은 부모님도 정말 기뻐하셨다. 큰 딸이 드디어 영국에서 직장을 구했다는 소식에 기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믿기지 않으신 듯했다.
링크드인 지원 현황을 보니 442개라는 숫자가 보였다. 링크드인을 포함해 그동안 441번 이상의 NO를 받았고 결국 마지막으로 1번의 YES를 받은 것이다. 친구들의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수많은 실패를 경험해도 괜찮다고, 마지막 1번이면 된다는 그 말.
모두의 만류를 뒤로하고 나 하나만 믿고 무모하게 선택한 영국행. 6개월 동안 어둠 속 터널에서 방황하다가 마침내 출구를 찾아냈고, 나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으니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이겨내자는 나와의 약속도 또 한 번 지켜냈다.
그렇게 영국에서 살겠다던 내 꿈은 현실이 되었고, 상상만 하던 런던에서의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서른 하나에 기적처럼 찾아온 인생의 새로운 챕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