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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Apr 15. 2024

한국 직장인에서 영국 직장인으로

영국에 온 지 2년, 그 후 이야기

나는 런던으로 출근한다. 12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런던의 직장인이 된 지 1년 8개월이 되었고, 영국에 온 지도 벌써 3년 차가 되었다. 나의 삶은 그동안 정말 많이 달라졌다. 어쩔 땐 한국에서의 삶이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빠르게 런던 생활에 익숙해졌다. 한국에서 지낸 지난 세월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종종 어떻게 지내냐고 묻곤 하는데 사실 이 말 하나면 충분히 설명이 된다. 나는 한국을 떠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이보다 더 잘 지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지낸다. 가끔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도 그저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금방 훌훌 털어내게 된다. 누군가는 '아직 2년밖에 안 되었으니 당연히 좋을 때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오래 짝사랑을 해서 그런지 지금은 그 사랑이 이루어진 것만으로 벅차고 행복하다.


내가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지만 결국은 조금 더 행복하게, 잘 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의 삶에 크고 작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내가 기대한 바가 이루어졌는지, 바라던 만큼 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준 몇 가지를 꼽아보려 한다.


자유로운 직장인

직장에서 더 이상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지 않게 되었다. '예의', '태도'라는 이유로 눈치를 봐야 했던 모든 일들 말이다. 우리 회사는 주 3회 사무실 출근, 주 2회 재택근무를 하는데 요일은 본인이 알아서 선택하면 된다. 하루에 주어진 일만 끝나면 상사가 있건 말건 자유롭게 퇴근할 수 있다. 그리고 휴가는 1년에 26일이 주어지는데 상사에게 미리 얘기만 하면 2주든 3주든 마음대로 쉴 수 있다. 그렇게 허가를 받아서 며칠은 재택근무를 하는 조건으로 한국에 한 달 정도 다녀온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가장 길게 휴가를 다녀온 것이 주말을 껴서 길어봤자 10일 내외였는데, 여기서는 알아서 바쁜 기간만 피하면 본인이 계획한 대로 자유롭게 쉴 수 있다. 그렇게 올해만 벌써 4번의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아프면 한국에서처럼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나을 때까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다. 회식은 1년에 2번 꼴로 자주 하지도 않지만, 불참한다고 해서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에게도 저녁이 생겼다. 퇴근해서 운동을 하고 집에 가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남자친구와 저녁을 요리하고 영화를 볼 시간이 생겼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은 훨씬 더 여유롭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근로자로서의 권리인데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잊힌 (어쩌면 일부에게만 주어진) 것들이다.


뭐니 뭐니 해도, 그렇게 사랑하는 타워 브리지를 보면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런던 브리지 역에서 내려서 회사로 20분 정도 걷는데, 강 건너편에 타워 브리지가 바로 보인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날에도 퇴근길에 그 타워 브리지만 보면 '아! 그래도 난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런던에 있다는 것을 늘 상기시켜 주는 나에게는 행운의 다리이다.

퇴근길에 찍은 타워 브리지... 이거 보면 하루의 노곤함이 사르르 녹는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어떤 정해진 정답이 없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남의 의견이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게는 외모의 기준 (예를 들면 55, 66 2가지 사이즈에 몸을 욱여넣는 미의 기준)부터 인생의 큰 선택이라 여겨지는 것(예를 들면 무조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들까지, 이곳에서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자체로 존중받는다. 그렇게 자연스레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매일 몸무게를 재며 살이 조금이라도 찌면 다이어트를 선언했던 내가, 영국에 오고 나서부터는 그냥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운동하고 싶은 대로 운동했더니 한국에서 보다 훨씬 더 건강한 몸과 멘털을 유지하고 있다.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심도 정말 많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시x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매일 쇼핑을 하고 비싼 곳에 가서 밥을 먹고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합리화로 명품을 사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남들에게 '나 이만큼 잘 먹고 잘 산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정말 어리석은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예시를 들자면 끝도 없지만, 결론은 남이 뭐라고 하는 것에 신경 쓰고 휘둘리기보다는 내가 정말 뭘 원하는지,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성찰, 즉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영국에 와서 이렇게 꾸준히 글도 쓰게 되었고 나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예전에는 물질적으로 채웠던 그 허한 공간을 좀 더 아름답게 일구어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데 힘을 쏟고 싶다. 내 삶을 견고하게 지탱해 줄 수 있는 힘.



인생의 파트너를 만나다

20대의 숱한 연애들에서 받은 고통을 누군가 가엾게 여겨주었는지, 나의 '이상형 체크 리스트'에 모두 부합하는 사람을 30대가 되어 드디어 영국에서 만났다. 예전 연애들에서는 좋다가도 항상 어딘가 맞지 않아 삐걱거렸고, 늘 피 튀기게 싸우고 또 불같이 사랑하고, 그러다 불안해하기도 하면서 늘 롤러코스터 같은 연애를 해왔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평온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안정된 연애를 하고 있다. 남자친구가 영국인인 덕분에 이곳의 현지 문화에 빨리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무엇보다 내가 외국인으로서 겪는 어려움들을 먼저 알아차리고 서포트해주고, 나의 문화를 늘 이해하려 하고 배우려고 노력한다. 젠더 감수성이 나보다도 더 뛰어나서 대화를 하다가 내가 많이 배우기도 한다. 그의 가족들도 정말 그를 닮았다. 전화로 늘 나의 안부를 물으시고 좋은 일이 있으면 꼭 잊지 않고 손수 쓴 카드와 선물을 챙겨주신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 음식 레시피 북을 사셨다며 언젠가 나에게 요리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아마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자상한 그의 성격에는 가족들의 영향이 큰 듯하다.


지금 남자친구와의 미담은 밤을 새야 할 정도로 방대하지만,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신뢰하고 사랑하는 이유를 꼽자면 이 사람은 정말 나를 동등한 '인생 파트너'라는 느낌을 들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전의 연애에서는 묘하게 내가 희생한다는 느낌이 종종 들곤 했다. '그래도 여자니까'라는 말로 나에게 기대하는 특정한 성 역할이라든지, 사회의 구조적인 성차별을 '우리나라가 원래 이런 걸 어떡해' 라며 그냥 눈 감고 넘어간다든지 하는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결혼을 해서 가족을 꾸린다는 생각과는 많이 멀어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고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내가 겪는 부당함에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같이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게 본인의 가장 큰 두려움이라는 사람, 나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동반자, 파트너로 대하는 모습에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앞으로 그와 함께 꾸려갈 미래가 정말 기대된다.  *영국 남자가 다 그런 것은 절대 절대 아닙니다. 어딜 가든 '사람 바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받는 꽃들 덕분에 꽃이 좋아졌다.


제육볶음 먹고 싶다는 말에 레시피 찾아서 척척 요리해 주는 자상한 사람





당연히 매일이 장밋빛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얻지 못했던 자유를 얻음과 동시에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생긴 제약들도 분명히 있다. 불편하고 느린 행정처리, 답이 없는 의료 시스템, 말도 안 되는 물가 등 삶에서 오는 여러 가지 불편함 덕에 한국을 그리워하게 되는 일도 종종 있지만, 특히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절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제 나는 이곳에서 평생 이방인으로 살아야 한다. 백인의 비율이 82%인 나라에서 나는 10%도 안 되는 그룹에 속해있다.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을 극복하기도 힘든데 동시에 소수 인종이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나에게는 여자, 동양인이라는 2개의 유리 천장이 있는 셈이다. 길에서 가끔 겪는 인종차별이나 희롱은 무시하면 되지만 나의 커리어, 나의 가족,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괜스레 무섭고 앞이 캄캄해진다. 앞으로의 나의 영국 생활은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과 성찰을 하면서 조금씩 그 간극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국에서 행복하다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한국에서의 나보다 영국에서의 내가 훨씬 더 아름답고 성숙하다는 것. 한국에서의 나는 늘 어딘가 불안전했었는데 영국에 오고 나서부터는 점점 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고 '나 다움'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이 느낌은 그동안 나의 삶의 어떤 순간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컴포트 존(Comfort Zone)에서 한 번쯤은 벗어나기를 바란다. 용기를 내어 첫 발을 내디딘 그 순간부터, 모든 과정에서 성장하는 내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세상에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자, 앞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엄청난 힘이 된다.




https://brunch.co.kr/@3intheafternoon/62

매주 월요일 연재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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