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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Apr 01. 2024

영국 아마존과 면접을 보다

외국인이라고 주눅 들 필요 없는 이유

어느덧 7월이 되었고 런던은 완연한 여름이었다. 가장 우선순위 회사의 3차 프레젠테이션 면접을 치른 이후에도 매일 새로운 곳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면접 기회가 꾸준히 찾아왔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거절 메일을 받았고, 면접을 보게 되더라도 그다음 단계까지 못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크게 동요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새로운 전략이 먹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는 왠지 모르게 다시 자신감이 붙었다. 이렇게 계속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후려치기'에서 살아남기

3월부터 시작한 취업 준비, 백수라는 타이틀이 점점 불안해지는 시점에 쓰라린 탈락의 고배를 계속 마시다 보면 몇 번이고 타협의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너무 눈이 높은 것은 아닐까?', '희망 연봉을 조금 낮춰서 써볼까?', '나 같은 외국인을 누가 뽑아주겠어' 같은 바로 내 가치를 스스로 후려치게 되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점점 길어지는 취준 기간 동안 나는 내 안의 '후려치기'라는 악마와 늘 싸워야 했고 그럴 때마다 마음을 더 단단히 먹어야 했다. 취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은 이미 한국에서 배워서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내 연차보다 너무 낮은 직급이거나 내가 미리 정했던 연봉 기준에 못 미치는 곳은 인터뷰 요청이 오더라도 과감하게 거절했다.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체한다는 말을 늘 떠올렸다. 첫 시작이니만큼 급하더라도 신중해야 했다. 무엇보다 나는 영국에 정착할 것이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멀리 봐야 했다. 이왕이면 워킹 홀리데이 비자 만료 후에도 비자를 기꺼이 지원해 줄 수 있는 큰 글로벌 기업에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그래서 메타, 구글, 아마존 같은 굵직굵직한 글로벌 테크 기업들에도 공고가 나는 대로 지원했다.


나는 한국에서 그 누구보다 치열한 20대를 보냈다. 그만큼 다양한 상황에서 많은 경험을 한 것은 나의 가장 큰 경쟁력이자 자산이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런던에 있는 그 누구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를 뽑는 회사는 운이 정말 좋은 회사일 것이고, 놓치는 회사는 오히려 손해일 것이라는 말을 늘 주문처럼 외우면서 스스로를 응원했다. 이 자신감은 우여곡절 속에도 꾸준히 성장해 온 과거의 내가 준 선물이었다. 힘든 순간에도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는 힘.



Amazon wants to interview you

그러던 어느 날 아마존으로부터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처음에는 발신자 이름만 보고 순간적으로 '내가 아마존에서 주문을 했던가?'라며 메일을 열었다. 그런데 주문 메일이 아니라 나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메일이었다. 그제야 정신 차리고 메일 제목을 보니 'Amazon wants to interview you!'라고 쓰여 있었다. 세상에! 아마존에 서류 합격을 했다. 직무는 아마존 내에 패션 어카운트를 관리하는 매니저 직급이었다. 테크펌답게 인터뷰 일정도 미리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예약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합격을 한 것도 아닌데 인터뷰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아 방방 뛰었다. 그동안 수백 개의 지원서를 넣고 수많은 거절 통보를 받았는데, 그게 내가 절대 어딘가 부족하거나 못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드디어 증명해 낸 기분이었다. 아마존이 아무 생각 없이 나를 인터뷰 대상자로 뽑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마존에서 온 합격 이메일


외국인이 뭐 어때서?

여기서 최종 합격까지 했다면 '영국 워홀러, 아마존에 입사하다'라는 제목의 드라마 같은 취업 성공 스토리였겠지만, 사실 아마존 면접에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아마존 인터뷰는 꽤 까다로웠다. 미리 사전에 나눠준 자료가 있었는데 아마존 내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리더십 법칙 (Leadership Principles)', 그리고 'STAR 인터뷰 테크닉'을 숙지하라는 내용이었다. STAR 테크닉은 1. 상황(Situation) 2. 업무(Task) 3. 행동(Action) 4. Result(결과)의 법칙에 맞추어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을 뜻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육하원칙'같은 이야기 서술 방식이었다. 자유로운 면접 방식에 익숙하다가 사전 자료가 주어지다 보니 다른 면접에 비해 준비하는 데 시간을 꽤 많이 투자했는데, 그러다 보니 당일에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막상 대답을 하지 못한 순간이 꽤 있었다. 뭐... 아쉽긴 했지만 탈락한 게 슬프지는 않았다. 아마존에서 면접을 보게 된 이후로 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동안 타협하지 않고 눈을 높여서 지원을 계속했었는데, 이젠 당당하게 그래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느낌이랄까? 그 이후에 다른 회사 면접을 볼 때도 '아마존에서도 관심 있어했는데 뭘!'이라는 마음으로 임했더니 부담이 훨씬 덜했다. 비록 1차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아마존 서류 합격은 정말 나의 길고 긴 취준생활의 터닝 포인트이자 한줄기 빛 같은 일이었다. 이곳에서 단순히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국적과 상관없이 나의 경험과 능력만 보고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곳이 어딘가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또다시 최종 면접

아마존에서 탈락 통보를 받고 3일 뒤, 다행히 3차 프레젠테이션 면접을 봤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내 프레젠테이션이 굉장히 디테일했고 발표도 좋았고 과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는 피드백과 함께 (*영국 회사는 합격 불합격을 떠나서 보통은 인터뷰 피드백을 이렇게 주는 편이다.) 드디어 마지막 단계로 가게 될 것이라는 이메일이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또 최종 면접까지 왔다. 마지막 면접은 45분의 면접으로 팀원들과 보는 'Culture Fit' 단계라고 했다. 이전 단계에서 실무 능력에 대한 검증은 끝났으니 이제 입사하게 된다면 동료가 될 사람들과 캐주얼하게 대화하며 내가 이 회사의 '문화'와 잘 맞을 지에 대해 체크하는 면접이었다. 한국에서의 최종 면접은 사실은 형식상 절차에 가까웠다면, 영국에서의 최종 면접은 절대 합격이 보장되지 않는 단계라는 것을 예전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후회 없이 임하되 크게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컬처 핏 면접은 그냥 부담 없이 '나'라는 사람을 솔직하게 보여주면 되는 단계여서 대단한 준비과정이 필요하진 않았다. 내 또래 여자 2명과 함께 면접을 봤는데 면접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정말 친구와 수다를 떠는 느낌으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어떻게 영국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취미를 즐기는지, 내가 오히려 회사에 대한 질문을 역으로 하기도 하면서 셋이서 하하 호호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이 팀에 조인하게 된다면 회사 동료를 넘어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의 사람들이었다.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두 사람은 자신 있게 입을 모아 'People(사람들)'이라고 했다. 컬처 핏 면접은 면접자에게도 지원하는 회사의 분위기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데, 이 회사는 정말 느낌이 좋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그 자리에서

7월 26일에 최종 면접을 봤으니 이제 결과를 기다릴 일만 남았다. 이 회사와 6월에 전형을 시작했는데 벌써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나 8월이 되었다. 영국에 와서 취직 준비를 시작한 지도 5개월이 흘렀다. 여름이 가기 전 취업을 해야 한다는 나 자신과 약속한 데드라인도 다가오고 있었다. 최종 면접의 느낌이 좋았으니 이제 최종 합격할 일만 남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여기까지 와서 또 최종 탈락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8월 1일, 인사팀에서 메일이 왔다. 이메일을 열기 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합격일까? 불합격일까? 종교도 없는 내가 이 메일을 클릭하기 전에 하느님, 부처님을 포함한 모든 신, 그리고 조상님들을 소환하며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We have had so many candidates apply for this position and have reached the point where we have two candidates (including you) that we really like, but only one position. We would therefore like to meet you in person, this Thursday for a coffee chat to help us make our decision.

이 직무에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지원했고 드디어 당신을 포함한 두 명의 지원자로 좁혀냈지만, 부득이하게도 이 직무에 자리는 단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번주 목요일에 당신과 직접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메일을 읽으면서 당황스러웠다. 합격도 불합격도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2명이 최종 후보자로 남았고, 1명만 뽑아야 하는 자리에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으니 결국 추가로 직접 만나 5차 면접을 보겠다는 이메일이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었다.


정말 손만 뻗으면 닿을 그 자리까지 두 번이나 왔다. 한 번은 좌절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손을 더 뻗어서 이 기회를 간절히 잡고 싶었다. 아니 잡아야 했다. 정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상황에 한편으론 힘이 쭉 빠졌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Look forward to having another chat with you (당신과 또 다른 대화를 하길 기대하겠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내고 마지막 면접에서 어떻게 나를 잘 어필할지 고민했다. 그동안 이직 면접을 보면서 첫인상에서 실패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면접관들을 실제로 만나게 되면 오히려 더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8월 4일 목요일,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프로페셔널 한 모습으로 집을 나섰다. 사무실 근처에 도착하니 으리으리한 오피스 빌딩들이 즐비해 있었다. 합격하면 나도 이제 여기로 출근을 하게 되겠지? 평소엔 믿지도 않던,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R=VD'의 공식을 이번만큼은 간절하게 믿으면서, 곧 런던 시내로 출근을 하게 될 나의 모습을 계속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이제 진짜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면접이 당락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막상 부담도 되고 많이 긴장이 되어서, 로비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까지 심호흡을 크게, 여러 번 해야 했다.


"그래도 진짜 마지막이다. 조금만 더 힘내자. 이제 정말 거의 다 왔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냥 마지막까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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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3intheafternoon/59

매주 월요일 연재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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