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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Apr 22. 2024

서른, 새로운 시작에 가장 좋은 나이

아직도 나이 때문에 도전하기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서른'이라는 숫자는 꽤나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는 서른을 '진짜 어른'이 되는 시작점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또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여기기도 한다. 20대였던 나에게도 '30대'라는 말이 주는 책임감은 늘 무거웠다. 왠지 모르게 다 갖춰져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 서른이 되는 그 순간부터 혹은 그 직전부터 '미성숙'이라는 스위치를 당장이라도 꺼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특히나 사회가 정해둔 정답을 따라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 문화에서는, 종종 '정착'에 반하는 행위들이 '미성숙'으로 여겨지곤 한다.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운다든지, 이직을 자주 한다든지,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는다든지 등의 행동들은 그런 '성숙하지 못함'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래서 점점 나이가 들면서 삶의 곳곳에 '이건 아닌데' 싶은 순간이 생겨도 우리는 그 빨간불 신호들을 무시하곤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경로를 이탈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간다. 벗어날 생각을 하는 나를 오히려 책망하면서, 눈 딱 감고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오히려 더 성숙한 방식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만으로 서른이 되던 해, 주변에서는 '정착'을 외치는 동안 나는 '워킹 홀리데이'라는 어쩌면 정착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 편도 티켓 하나로 영국에 왔다. 홧김에 한 결정도, 현실 도피하고 싶어서 한 결정도 아니었다. 치열하고 처절한 고민 후에 내린 결정이었고 그만큼 간절했다.

서른 하나에 영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것은, 내 인생에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정말 완벽한 타이밍에 이루어진 성숙한 선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른에 이런 무모하고 대담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20대에 수많은 경로를 이탈해 본 경험 덕분이었다.



이탈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나'의 진실

나의 첫 이탈은 26살, 4년을 연애하며 미래를 약속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동시에 첫 회사였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나서부터였다. 내가 내린 선택이었지만, 탄탄대로였던 인생이 한순간에 비포장대로가 되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퇴사 후 작게 연 사업이 1년도 안되어서 실패해 빈털터리가 됐다. 그 이후 이직했던 회사들에서도 줄줄이 쓴 맛을 경험해야 했다. 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연애를 하니 늘 그 수준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20대 후반이 되어 서른을 앞두고 나서야, 인생을 그냥 이렇게 흘러가게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정착일까? 30대, 40대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살고 싶을까?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나의 대답은 No였다. 그 당시 3년을 만나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건 아닌데'의 신호에 과감히 정리했다. 내가 꿈꾸던 미래에는 그 사람이 없었다. 그 후로,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되기 전까지는 절대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데 온전히 집중했더니 나에 대해 정말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몰랐던 모습들 까지 말이다. 그간 정해진 정답을 따라가기에 급급해서 방치되고 신경 쓰지 못했던 나의 진실들을, 서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영국행을 선택했다.


20대는 뭐가 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나는 올해 만으로 서른셋이 된 91년생, 소위 말하는 'MZ 세대'이다. 지금처럼 추구할 수 있는 진로가 다양하지 않던 시기에 그저 열심히 살아오신 어른들의 발자취를 따라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고 또 회사에 취직을 해서 열심히 살다가, 때가 되면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적당한 나이에 가족을 꾸려나가는 것이 비로소 성공한 삶이라고 믿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공부만 하던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예상치도 못한 난관에 부딪히기 시작하는 시기는 기껏해야 20대 중후반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20대는 초반 몇 년을 제외하고는 정말 뭐 하나 제대로 정착된 게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로 모두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목표만 향해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주변에서는 얼른 그 나이에 맞는 과제를 수행하라며 늘 채근한다. 나에 대해, 내가 진짜 원하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아무도 경고해주지 않는다. 내가 만약에 그때 만나던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더라면? 두렵다는 이유로 회사를 관두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머물렀다면? 지금처럼 영국으로 온 나는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20대는 늘 여기저기 던져지고, 정신없고 방황하는 것이 당연하다. 20대야 말로 '정착'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계속 거듭하면서 '나'에 대해 공부하고, 그 이후의 삶을 이끌어 나갈 '마음의 근육'을 키워나가는 시기이다.



30대가 새로운 시작에 가장 좋은 이유

내가 생각하는 30대는, 그런 20대의 '우당탕탕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나를 가장 잘 알게 되는 시기이자, 비로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어른이 되어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주체적인 삶'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다. 남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지금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과연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인지 아니면 내가 아닌 어떠한 것들에 의해 강요된 삶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나는 늘 영국을 좋아했고 영국에서 살고 싶었는데 '현실적 이유'라는 핑계로 늘 선택을 미루고 두려워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에 대한, 그리고 내가 하는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 가장 컸다. 그 확신은 20대 때 여러 경험들을 하면서 천천히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에서 이것도 했는데, 영국에서 설마 굶어 죽겠어?'라는 같은 생각, 내가 뭘 하더라도 결국엔 잘 이겨낼 것이라는 믿음.


아무 고민,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아간다는 말은 어쩌면 새로운 성장이나 배움이 없다는 말과 유사하다. 운동을 할 때, 힘들더라도 계속 무거운 무게를 들면서 근육을 찢어야 그 자리가 치유되면서 새로운 근육이 생겨나는 원리와 똑같다. 뻔하디 뻔한 말이지만, 나의 안전지대(Comfort Zone)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20대가 무탈하지 않았던 덕에 30대의 내가 새로운 시작에 무작정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이다. 내 인생을 단순히 밋밋한 수평 그래프로 만들 것인지, 다이내믹하더라도 결국엔 상승 곡선을 그리는 그래프로 만들 것인지는 순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정말 나이 때문에 고민인가요?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20대든, 30대든, 40대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확실히 알지 않고서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생의 큰 결정에는 작든 크든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결정이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이유로부터 비롯되었다면, 내가 겪는 희생에 대해 평생 남 탓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만약에 내가 나이를 핑계로 영국에 오는 것을 포기했더라면 아마 괜히 부모님이나, 더 나아가서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핑계로 들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어렸을 때 유학을 보내줬더라면',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사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말들 말이다. 연애나 결혼도 비슷하다. 내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기 시작하면, 상대방에게 끌려다니면서 결국엔 나를 잃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그 선택을 막는 것이 정말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나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확신이 없는 것인지를 고민하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 책은 나의 영국 정착에 대한 이야기지만, 꼭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야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나는 나에 대해 공부하면서 한국 보다는 영국에서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고, 그게 마침 예상대로 딱 드러 맞았을 뿐이다. 한국이든 영국이든 그 어디에서든, 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내 삶을 주체적으로 바꾸어나가고 이끌어나가는 삶, 그 누구의 이유가 아닌 나의 이유로 사는 삶, 어떤 상황에 있건, 모두가 나만의 삶을 사는 삶을 살길 바란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글귀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모든 변화는 공간에서 시작한다.

사는 곳이 바뀌면, 만나는 사람이 바뀌고, 만나는 사람이 바뀌면,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다. 다시 변화는 이어져서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면, 생각하는 수준이 바뀌고, 생각하는 수준이 바뀌면, 당신의 운명이 바뀐다. 당신이 자주 머무는 공간이 곧 당신의 운명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은 이유는, 살아가는 곳을 옮기는 것이 보통의 의지로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분명한 확신이 들어야 당장의 희생을 각오하며, 공간의 이동을 결심할 수 있는데, 이동해서 얻을 결과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좀처럼 지금 사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절대 오지 않는다. 바로 이 부분에 운명을 바꾸는 핵심이 있다. 확신은 떠나기 전에 갖는 게 아니라, 떠난 후에야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떠날 때는 두렵기만 했는데, 떠나고 나니 왜 좋은지 알겠네!"

수많은 사람이 지금도 떠나면 알게 되는 그 가치를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아까운 세월만 보내고 있다.

마치 확신을 가슴에 품은 것처럼 단단한 의지로 미련 없이 떠나라. 그럼 어느새 당신을 찾아온 확신이 당신이 진실로 원하는 곳으로 친절하게 안내할 것이다.


'원래 어른이 이렇게 힘든 건가요' - 김종원 지음

나의 작은 경험으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자신의 '새로운 공간'에 도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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