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D.P.> 시즌 1, 2 스포일러 포함
“안준호는 폐급이다.”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D.P.>의 영상 클립에는, 특히 주인공 안준호(정해인 역)가 나오면 일종의 밈(meme)처럼 으레 달리는 댓글이다.
‘폐급’이란 말은 원래 군대에서 보급품의 상태를 분류하는 말로, 심하게 낡고 더러워 폐기해야 하는 상태일 때 붙는 판정이다. 반대로 좋은 보급품은 A급, 또는 특급 등으로 불린다. 군대는 사람과 물품이 크게 구분되지 않는 곳이기에, 병사에게도 이런 등급 분류가 공공연하게 사용된다. 일을 잘하고 싹싹한 병사는 A급(또는 특급), 어리숙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는 폐급으로 불린다.
D.P.에서 안준호는 뛰어난 신체 능력과 추리력으로 탈영병 체포라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한다. 기본적으로 침착한 성격에 부당한 일에는 타협하지 않고 분노하기도 하며, 사정이 딱한 탈영병에게는 공감도 곧잘 한다. 보통의 이야기라면 충분히 선망의 대상이 될 법한 설정이다.
그러나 군대라는 특수한 사회에서 안준호는 ‘폐급’으로 불리게 되었다. 온라인상에서 안준호를 폐급이라 놀리는 일도 반은 농담이지만, 특히 군필 사이에서 드물지 않게 진지한 평가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등병임에도 성격 좋은 한호열 상병의 장난에 “씨발-”하며 대드는 장면이나, 착하기만 하던 조석봉 일병이 후임을 구타할 때 “뭐 하시는 겁니까” 하며 제지하는 장면 등이 그 근거가 된다. 이런 장면들에서는 나 또한 군필인지라 이건 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안준호의 ‘반항’ 들이 군대가 아닌 바깥세상에서 벌어진 일이라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인가 하면 또 그렇지 않다. 평소에 잘해주던 선배라도 선을 넘는 장난을 친다면 충분히 거부할 수 있으며, 눈앞에 부조리가 벌어진다면 개입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인식이 군의 계급, 그것도 겨우 몇 달의 시차밖에 가지지 않은 병사 간의 계급으로 인해 바뀌게 된다. 군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정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폐급이 된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는 것이 A급이고, 부조리와 폭력, 야만을 목격해도 침묵하는 것이 특급이다.
안준호는 국군으로서 폐급이 맞다. 그러나 그보다 넓은 세상에서 좋은 사람이다. 나는 세상에서 누군가 반드시 총을 쥐어야 한다면, 썩고 곪아가며 감추기에 급급한 이들보다 안준호와 같은 좋은 사람에게 주고 싶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을 보면 현실은 아직 심연에 있는 것 같다. 총을 쥔 이들의 행태는 드라마를 뛰어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