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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Apr 09. 2024

추앙한다는 것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사랑'이란 말이 처음 쓰인 날을 상상해 본다. 당신이 생각난다, 좋은 걸 주고 싶다, 더 알고 싶다, 지켜주겠다, 보고 싶다, 그리고 좋아한다. 이 말로도 터질 것 같은 마음에 차지 않아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었을 순간을. 무수한 말들을 건너 비로소 발견한 이것이 나의 마음이라고 내놓았을 그 단어를 떠올린다. 누군가는 사량(思量), 깊이 생각하며 헤아린다는 말에서 나왔다고도 하지만, 실로 그보다 더 절절한 것일 테다.


   지금도 사랑은 많은 이들에게 절절한 말이다. 심장 소리를 비집고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선언하는 말이기도, 두터이 쌓인 신뢰를 확인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일면식 없는 유명인과 푸바오에 대한 감탄도, 자정에 가까운 시간 대학 거리를 통과하면 들리는 “X발 X나 사랑한다고”도 같은 말을 공유한다. 사랑이란 예쁜 단어가 널리 쓰이는 것이 반갑기도 하지만, 매우 좋아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에 그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사랑이 들어갈 법한 자리에 ‘추앙’이라는 말을 썼다.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돼요.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사랑으론 안돼. 날 추앙해요.


   손에 꼽도록 비일상적인 말, 추앙은 세월에 닳아 뭉툭해진 사랑의 의미를 날카롭게 되살리는듯하다. 좋아 죽겠다는 감정을 넘어 가득 채워주는 일이다. 가만히 느끼는 것을 넘어 일어나해야 하는 일이다. 추앙은 앉아서 술만 마시던 구 씨를 뛰게 하고, 눈동자가 죽어있던 미정을 웃게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은 스스로 나를 채우려 애쓰는 일을 벗어나지 않는다. 음식을 먹고, 잠을 청하고, 돈을 버는 모든 일이 나를 위한 일이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내가 나를 채우는 일이 정말 채우고는 있는 것인지, 의미가 있는 것인지 묻게 된다. 그렇게 태어났기에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나의 두 번째 성경, 사랑의 기술(Art of Loving)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사랑은 강렬한 감정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활동이라고 말한다. 나의 모든 ‘할 수 있음’ 에너지를 바깥으로 꺼내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했으나, 아무래도 추앙이 더 이에 부합한다.


   추앙은 내가 나를 채우는 일을 멈추고 내 앞의 당신을 채우도록 한다. 나를 비우는 일이 손해 같기도, 텅 비어버릴까 겁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을 추앙하며 살아보니, 오히려 그것은 내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내는 일이었다. 내게 주어질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삶의 충만함이고 자유의 발현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사랑보다 추앙이다. 나를 살게 하는 일은 무엇보다 추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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