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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Feb 28. 2023

네가 행복해서 나는 슬펐어.

내 짙은 불안의 농도

내가 지은 게 모래성이라는 것쯤. 나도 안다. 


단단하고 비옥한 땅에 성을 지어야 한다는 것도, 모래로 성을 지을 거라면 파도가 들이칠 수 없는 높은 곳에 짓기라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안다. 그럼에도 파도와 가까운 모래 위에 모래성을 쌓는 건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약한 모래라도 뭉쳐서 성을 만들면 파도가 들이칠 때 한 번에 무너지지 않고 조금씩 부서지니까. 그러면 마음은 조금 더 버틸 수 있다. 나는 예민하고 쉽게 상처받는 내 마음을 모래성에 담고 살았다.      


자기야, 기계도 그렇게는 안 써.     


뭐 할거냐는 물음에 언제든 할 일이 준비되어있는 내게 그가 했던 말이다. 


나는 천천히 무너지기 위해 모래성을 높이, 높이 쌓았다. 작은 체구와 약한 체력. 정서적으로는 풍족하나 경제적으로 부족한 가정환경. 감정에 예민해서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남한테 쓴소리를 해야 할 때는 며칠을 앓는다. 농담은 진담인 줄 알고, 빈말은 할 수 없어 매사에 진심과 원칙만 추구하는 나는 사회생활에서 실패하기 딱 좋은 존재였다. 


타고난 토양도, 내가 가진 토양도 모래라는 걸 알만큼 눈치는 빨랐다. 그래서 최대한 높이 쌓아서 무너지는데 시간이 걸리게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     

사진출처 - Unsplash의Nik


모래성에 담긴 마음이지만 그 나약한 마음도 하고 싶은 게 있고, 좋아하는 게 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고, 바쁜 일정이 지난 틈새에는 또 다른 자기계발을 끼워 넣었다. 가만히 쉬거나 놀기만 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죄책감을 잊기 위해서. 


인간관계는 오늘 당장 끊어져도 내일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거리와 깊이를 유지했다. 그렇게 해야 마음 다치지 않고 돈을 모으고, 하고 싶은 걸 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20대를 보냈다. 모두 내게 잘 해낼 거라고, 잘 될 거라고, 힘내라고 했다. 누군가는 멋지거나 대단하다는 말을 보냈다. 씁쓸했지만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이런 게 사는 거니까. 원래 힘든 거라고 받아들이면서. 그런 담담한 일상에 그는 쉽게도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내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일찍 자라고 하거나, 그냥 쉬라고 말했다. 안 해도 됐을 일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하나씩, 하나씩 해보라고 했다. 무조건 이번 학기에 졸업해서 빨리 직장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나의 조급함에 그는 느긋하게 말했다. 내가 언제 졸업을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이번 학기에 졸업 못하고, 다음 학기에 해도 괜찮고 천천히 일을 구해도 된다고 했다. 강박적인 게 사람을 힘들게 한다며.   

   

그는 늘 이렇다. 매번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점치고, 달려가는 내게 잠깐 쉬자고 벤치에 앉히는 사람. 계속 달리느라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한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혼자서 해내는 게 편하고, 익숙해진 내게 대단하다는 말 대신 외로웠네. 라고 말했던 유일한 사람. 


그와 함께하면서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버렸다. 이걸 몰랐어야 했다. 흐트러지지도 무너지지도 않기 위해 나의 모래성을 지키면서 애쓰고 있어야 했다. 들이치는 파도에 당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오기만이 내 유일한 무기였는데 그는 그 무기를 내려놓게 만든다. 


느려도 같이 가면 되지. 와 같은 단순함으로 내게 손을 내민다.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면서 나의 엄마는 왜 내가 어릴 때 따뜻하게 키우지 않고 힘들게 했는지가 자꾸 생각나 미치겠다던 동기 선생님의 마음을 내 연인을 보면서 실감한다. 불행한 사람이 행복한 환경에 던져져서 사랑받게 되면 느끼는 사실 한 가지. 내가 불행했었다는 것. 


내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그와 함께 있을 때마다 느끼게 된다. 느긋하고 단순한 일상을 추구하는 그를 볼 때면 안정감을 느끼는 동시에 무너진다.     


그가 행복해서, 나는 슬펐다.       


내가 이루고 싶었던 건 석사 졸업장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게 되니까. 그 나이에 참 생각 없다고 할까봐 누군가에게 말한 적 없지만, 며칠만 상담사로 일하고 남은 날은 그저 글을 쓰고, 산책하면서 배우고 싶은 걸 배우며 소박하게 살고 싶다. 그게 다다. 에게? 싶은 그 정도가 내가 바라는 나의 평생이다. 


엄청난 돈을 벌 생각도, 심리학계에 한 획을 그을 생각도 없다. 그래서 씁쓸했다. 호호찐빵은 언제나 잘하고, 잘 할거잖아. 라는 말과 응원이. 은연중에 내가 다 해줬으면 하는 가족들, 신경 쓸 게 많은 사회생활, 내게 주어진 무수한 책임이 이제 힘에 부친다. 


꿈이면 다 될 것 같았는데 나이가 드는지 소박하고 조용한 일상을 살고 싶다. 이런 평범함을 바란 거였으면 왜 그렇게 짙은 불안의 농도를 가지고 애쓰며 살았을까. 반짝 빛나던 20대가 아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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