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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쓰는 기자 Jan 02. 2021

청둥오리가 뭐라고


퇴근길에 청둥오리를 떼로 만났다. 동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개울가에서다. 어쩌다 금슬 좋은 청둥오리 한 쌍은 본 적 있지만 오리 떼거리를 목격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애네들은 한 가족일까. 왜 여기에 모여 있을까. 조류독감에 걸리진 않았을까. 잡다한 생각을 하며 마스크 뒤에서 실없이 웃었다. 


청둥오리를 보고 있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애어른 할거 없이 이 진귀한 광경을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눈치 없는 꼬마가 꽥꽥 오리 흉내를 내자 어른들은 영화관에서 크게 떠드는 관객에게 하듯 엄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에 손을 갖다 댔다. 오리가 오리발을 휘휘 젓는 소리, 송사리를 잡으려고 고개를 풍덩 처박는 소리, 바위 위를 총총 걷는 소리 만이 혹한의 대기를 채웠다.   


"애네들 집은 어디예요?" 웬 등산복 차림의 아주머니가 정적을 깨고 말을 걸었다. 너라면 당연히 알 것 같다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내가 오리 박사도 아니고 사는 곳을 알리 없지만 모른다고 말하기는 싫었다. 아무 단어나 뇌리에 떠오르는 대로 내뱉었다. "집이 따로 있나요... 먹을 게 있는 곳이 집이겠지요." 말하고 보니 제법 그럴듯하게 들려서 놀랐다. 어쩌면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주머니는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애초에 정답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처럼도 보였다.  


이따금씩 비둘기들이 날아왔지만 그들이 일자리는 없었다. 청둥오리 무리에겐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 같은 것이 있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 같은 것 말이다. 직접 사냥하기보다 땅에 떨어진 부스러기만 먹을 정도로 세속화된 비둘기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청둥오리는 살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청둥오리는 우주와도 같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고 알면 알수록 경이로운 존재다. 그날 청둥오리를 함께 지켜본 사람들도 비슷한 걸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감정은 너무 많이 써서 식상해진 자연의 신비 같은 말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청둥오리 떼가 다른 동네 개울이 아닌 우리 동네 개울로 와줘서 참 고맙다. 송사리에겐 미안하지만 오리들이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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