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동산 업계에선 재건축·재개발이 최대어다. 온라인 부동산 뉴스 코너는 온통 재건축·재개발 기사로 도배가 돼있다. 단순 독자라면 관심 가는 것 몇 개만 읽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는 부린이 기자라서 발생 이슈를 모두 챙겨 봐야 한다. 같은 내용이어도 논조와 강조점, 세부 내용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식을 쌓아가야 그나마 기사 비슷한 거라도 찌끄릴 수 있다.
오전에만 총 3번을 본다. 아침 7시에 한 번, 9시 정보 보고를 마치고 또 한 번, 11시(국토부 보도자료 엠바고가 보통 이 시간이다.)에 한번 더, 이렇게 3차례에 걸쳐 남의 기사를 읽는 것이 나만의 업무 루틴이다. 이때쯤이면 슬슬 지겨워지면서 뇌가 파업에 들어간다. 밖에 나가 찬바람을 쐬든 투샷 아메리카노를 단번에 들이키든, 아무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멍하니 있든, 뭐든 해서 지친 뇌를 달래줘야 한다.
너무 힘들 때는 남의 것을 그대로 베껴 쓰고 싶은 깊은 유혹에 휩싸인다. 공부 잘하는 친구의 답안지를 슬쩍 본 학생의 심정이랄까. 그걸 내가 푼 것인 양 써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직업윤리를 따지기 전에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항변하는 건달처럼 아는 건 없어도 남의 것을 베껴 쓰고 싶지는 않다.
더구나 공부 잘하는 애라고 항상 정답만 쓰는 것도 아니다. 딱 하나를 베꼈는데 그게 펙트가 아니었거나 오탈자에 비문이 섞인 기사였다면 대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남들은 재건축·재개발이란 어려운 이슈를 어떻게 다루는지 참고만 한다. 답안지가 아닌 참고서를 훑는다는 기분으로 남의 기사를 본다.
사실 정의만 놓고 보면 재개발·재건축은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재건축은 건물 하나를, 재개발은 동네 전체를 새롭게 하는 사업이다. 허허벌판에 건물을 올리는 문제라면 간단하겠지만 재건축·재개발은 다르다. 누군가 살던 곳을 부셔서 새 건물을 올린다. 거기 사는 세입자, 살진 않지만 지분이 있는 토지주·건물주, 영업장이 있는 소상공인 등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개발 지역 인근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지역이 재건축되면 층고가 올라가고 집값도 오른다. 그만큼 사람도 많이 몰리고 주차난도 심해진다. 아무것도 안 한 옆동네도 마찬가지로 집값도 덩달아 오르거나 붐빌 수 있다. 옆에 있던 건물들이 죄다 높아지면서 햇볕을 가려 어둠 속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이를 전문용어로 '일조권'이 제한된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내가 당사자가 아니어도 재개발· 재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느 지역이 개발된다고 하면 부러워하기도 하고 쌍욕을 하기도 한다.
헬스클럽 광고에서도 재건축의 인기를 실감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와 부동산 대책을 예고하던 날,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이켜고 화장실을 가는데 <당신의 몸을, 재건축하라!>는 배너를 보았다. 처음에는 헛것을 본 줄 알았다. 재건축 기사를 질리도록 읽다 보니 이제는 모든 글자가 재건축으로 보이는구나 싶었다. 당구에 푹 빠진 사람은 천장이 당구대로 보이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한다. 재건축의 늪에 빠진 나는 모든 글자가 재건축으로 보이고...
그런데 다시 보니 진짜다. 처음에는 몸과 재건축이 서로 연결이 안 돼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곱씹어 볼수록 적확한 비유 같다. 오래 써서 낡은 집은 검버섯 핀 노인의 얼굴처럼 외관이 볼품 없어진다. 괄약근이 풀린 듯 물이 줄줄 새고 뼈마디 같은 골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건물이든 사람이든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손을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집은 건축업자(builder)에게 몸은 트레이너(bodybuilder)에게 의뢰한다. 둘 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겠지만, 보상은 엄청나다. 헌 집이 새집이 되면 가격이 껑충 뛰고 후줄근했던 몸에 탄력이 생기면 이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질 것이다. 낡은 집에 살면서 재건축은 꿈도 못꾸는 처지라면 자기 몸이라도 재건축하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