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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Dec 07. 2023

삶과 죽음


새벽, 부엌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가 가지고 놀던 풍선과 아침나절에 까놓고 냉장고에 넣어둔다는 것을 깜빡 잊은 양파를 만난다.



요리에 쓰기 위해 까놓은 양파는

짧은 시간 상상하기 어려운

삶의 의지로 뿌리를 내놓았다.


노란 바탕에 웃는 얼굴로 기쁨을 전하던 팽팽한 풍선은

어느 곳에 구멍이 났는지,

울퉁불퉁 풍선 주름을 지어가며 사그라들고 있었다.


삶을 향한 투지와

죽음을 향해가는 바스라짐.


풍선이 밤사이 늙어버렸다.

탱글탱클 통통 거리며 한껏 웃음 짓던 얼굴이

자잘한 주름에 울퉁불퉁 탱탱함을 잃은 모습으로 부엌 바닥을 뒹군다.


어제 아침에 25년 지기 친구와 대화를 주고받다,

개인적인 작은 경사를 자랑하자 좋은 소식에 기분이 좋다고 했다.


밤사이 지인의 부고를 받고

아침, 시험기간에 극도로 예민한 딸아이의 신경질에 치솟는 짜증을 감당하며 사는게 참 묘하다고 했었다.


삶과 죽음이 늘 한 공간에 머무는데...

영원히 삶에 몰표를 던지는 듯한 삶을 살고 있다.


새벽 부엌을 나뒹구는 바람 빠진 풍선과

어디든 물 있는 곳에 꽂아 주어야 할 듯싶은 양파는

삶과 죽음의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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