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대중의 흐름에 편승할 수 없는
나는 반골
by slow snail Oct 22. 2024
얼마 전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상의 수혜자가 같은 민족이어서 자랑스럽다.
그런데, 딱 거기 까지다.
그리하다 하여 평소 서가 책장에 꽂혀 있던 한강 작가님의 읽지 않던 소설을 다시 꺼내 들 만큼의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나는 그러했으나 대중은 달랐다.
수상 발표가 난 저녁부터 한강 작가의 책을 구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도서관의 한강 작가의 책은 제목과 내용을 불문하고 '한강'이라고 쓰이기만 하면 모두 예약이 최대까지 붙었고, 인터넷 서점의 재고량은 마이너스 2만 권을 훌쩍 상회했다. sns는 한강의 미담을 담은 짧은 짤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다음날부터의 움직임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중고물품 거래 앱에서는 책장에 꽂힌 채 몇 년은 바랜 듯한 작가의 책이 4-5만 원에 거래가 되고 있었다. 작가의 책이 학교 청소년이 읽기에 부적절하다 했다는 어느 지역을 맹공격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수많은 무리는 와글거리며 그러한 짓을 한 지역에 대해 감히 노벨 문학상을 탄 작가의 책을 그리했다며 편승하고 있었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먼저 어떤 내용의 책이며 어떤 문장들이 들어있기에 그러한 조처를 내렸는지부터가 궁금해야 하는 게 논리적이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의 책을 딱 1권 읽었다. 읽었을 때 나와 맞지 않았고, 그 후로 더 이상 읽지 않았다. 어떤 책을 읽었을 때 끌리거나 특별한 감동을 주거나 취향이 비슷한 책이면 전작 읽기로 가기도 하고 그와 반대일 경우에는 더 이상 읽지 않는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었을 때 다른 감동과 느낌으로 오기도 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은 상을 수여한 단체가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나 가치에 그 책이 맞아 선정되었을 것이다. 수상작이라 하여 모든 대중이 읽어야 하고 찬사를 보내야 하는 건 아니다. 우우 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편승하여 읽고 수상작을 읽었다는 것으로 끝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세계 석학들이 모여 선정한 작품에 그야말로 감히 입을 댄다는 사실이 가소롭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이들이라면 생각해야 한다.
'역시, 이래서 선정된 작품이구나!'라든가
그럼에도 '이런 점은 좀 아쉬워'라는 내 의견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의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가 되어 기쁘고 자랑스럽다.
축하와 자랑스러움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쉬이 끓다 식어버리는 대중의 움직임이 나는 불편하다. 언젠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그랬다. 그랬던 기억이 난다. 지금 <무소유>는 조용히 서가에 꽂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