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찾아간 곳
"할머니 나 할머니한테 가도 돼?
이러다간 정말 죽겠다 싶어, 왠지 혼자 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은 생각에 떠올린 얼굴은 '할머니'였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
어린 시절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 나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자랐다. 때문에 부모님만큼이나 나에게 남다른 존재였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혼자서 푹 쉬면 괜찮을 거라는 남자 친구(현재는 ex)의 한 마디에 눈물이 터졌다.
'혼자 있고 싶지 않아...'
그때까지만 해도 외로움이라는 것을 사무치게 느껴본 적 없는 내가 외로움에 절절하게 무너진 순간이었다.
불쑥불쑥 터지는 작은 외로움의 순간들은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오랜 시간 모른 척 해왔던
작은 외로움들이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 쏟아내렸을때.. 내 인생 처음으로 외로움이라는 것이 꽤나 밀도 높고 묵직한 것임을... 그것은 내가 홀로 극복할 수 없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바빠서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비추는 남자 친구에게 와달라고 할 수 도 없었던 나는 (사실 별로 얼굴을 보고 싶지 않기도 했던 것 같다) 그저 TV를 켜고 쉼 없이 무한 반복되는 드라마를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외로움은 회사일로 고되고 지쳤을 때 온전히 위로받지도 못한 채,
'내가 더 힘들어, 내가 더 바빠'라고 칭얼거리며 내 말들은 집어삼켜버렸던 전 남자 친구에게서부터 파생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치여 위로받고 싶었을 때도, 오피스텔 계단에서 굴러 걸을 수 없어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도 나는 그의 일에 밀려 늘 4순위 5순위.. 혹은 10순위였을지도.. 그런 그에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너무 고된 회사 생활과 피곤함은 내 옆의 사람이 나에게 맞는 사람인지, 나를 갉아먹는 사람인지도 판단할 수 없게 만들었으리라.
그렇게 아무렇게나 짐을 싸서 떠난 할머니 집. 나의 고향.
두유 하나를 억지로 마시고 KTX를 타고 떠난 대구는 그대로였다.
나는 서울로 떠나서 그렇게 많은 입사와 퇴사,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변하고 또 변했는데.
왜 대구는 이리도 변함이 없을까... 괜히 서러워졌다. 온갖 것들이 나를 서럽게 했다.
툭치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할머니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밥 무라. 밥을 묵어야 힘을 쓰지. 사람 죽는다
속으로 생각했다.. '밥 못 먹은 지가 오래돼서...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하튼 할머니가 차려주신 정성이 있어 식탁에 앉아 밥을 한 숟갈 떠먹기 시작했는데..
어랏! 할머니 밥은 먹힌다!
서울에선 밥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고, 밥을 입에 쑤셔 넣어도 이유 없는 포만감으로 힘들었는데..
밥이 쑥쑥 들어간다. 그때의 놀라움이란!
90이 된 우리 할머니... 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많이도 노쇠해지셨는데... 서른도 훌쩍 넘어 어른+어른인 나는... 아직도 할머니한테 의지하고 있구나..
할머니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마음속에서만 맴도는 그 말을 할머니에게 내뱉을 수 조차 없었다.
말 한마디 꺼내려고 입이 열리면, 목소리보다 눈물이 먼저 터져 나오던 시간이었으니까.
할머니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울고 싶어지면 방에 들어가서, 할머니가 보지 않을 때만 잠시 잠깐
울고, 세수를 하고 할머니에겐 웃어 보였다.
하지만 할머니도 아셨겠지. 아셨으면서 모르는 척해주셨으리라.
1분도 조용히 계실 수 없는 수다쟁이 우리 할머니가 그토록 말없이 있어주신 것은 처음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나는 할머니 집에서 섭식장애를 이겨낼 수 있었는데..
내가 모르던 나의 병증은 할머니를 모시고 간 병원에서 발견되었다.
한 겨울이라, 독감 예방 주사 홍보가 한참인 그때. 할머니는 독감 예방 주사 한 방 맞으라며
나에게 푸쉬푸쉬를 하셨고, 주사를 맞기 위해 체크한 나의 혈압 결과로... 모두 올 스톱!
혈압 결과는 '저혈압이 너무 심해 쓰러지기 일보 직전'!!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얼마나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그날 이후, 할머니를 비롯한 엄마 아버지의 '잘 먹이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소고기, 장어, 홍삼... 홍삼은 하루에 3개씩 먹었던 것 같고 홍삼뿌리부터...
열을 올리고 혈압을 올리기 위한 그 어떤 것도 군소리 없이 받아먹었다.
잘 먹고 건강을 회복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내 건강이 부서질 정도로 내가 혹사당했다고 생각하니 점점... 화가 나더라.
화는 슬픔이 되고 슬픔은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되더라.
피해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 허탈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있어서.
내 옆에 할머니가 있어줘서 견딜 수 있었던 우울하고 외로웠던... 참 느리고도 빨리 지나갔던
회색의 나날들...
고마워요 할머니.
내 마음의 고향.
그 시기 이후, 나는 내 핸드폰에 할머니를 그렇게 저장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