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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래빗 May 26. 2023

카페인을 끊었다.

나의 퇴사일기, D+114

대학생 때부터 난 커피를 달고 살았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시험기간이 될 때면 자판기에서 항상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과 비타민 음료를 같이 뽑아 마시며 각성했다. 친구들과 만날 때는 별일 없으면 카페에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항상 커피 메뉴를 골라 마셨다.


커피는 때로는 쓰게, 때로는 달게 내 취향에 맞게 골라먹을 수 있어 좋았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당 충전을 했고, 다소 묵직한 음식을 먹을 때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입이 개운해지곤 했다. 식후에는 아메리카노를 꼭 마셔줘야 뭔가 제대로 식사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내 커피에 대한 사랑, 아니 집착(?)은 직장을 다니며 더욱 심해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몽롱한 머리로 출근하면 가자마자 쏟아지는 업무에 커피가 아니면 정신을 차리고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떨 때는 커피 안에 있는 카페인이 주는 각성효과가 내 머리를 똑똑하게 하는 마술 같기도 했다. 그리고 커피의 향긋하면서 고소한 냄새와 맛도 커피를 사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카페인에 중독되는 동안 내가 간과한 것들이 있었다. 카페인은 중독된다는 점과 편두통 환자에게 카페인이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편두통을 앓았다. 한 번 편두통이 시작되면 일반적인 진통제로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항상 편두통 약을 병원에서 처방받아 비상약처럼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


한 번 편두통이 생기면 업무는 물론 일상생활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통증에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 힘들뿐더러 잠을 자도 머리 통증이 나아지지 않는다. 일상뿐만 아니라 잠자는 시간마저 고통이다. 편두통 환자들은 뇌가 예민한 경우가 많은데, 카페인은 이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들은 편두통 환자들에게 카페인을 마시지 말라고 권한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도 커피를 끊지 못했었다. 끊으려고 해 봤지만 카페인의 금단현상인 두통을 항상 겪었다. 이러나저러나 아플 거면 좋아하는 거 마시고 아프자고 바보같이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올해 퇴사하면서 내 건강을 다시 찾아보자는 다짐을 했다. 그중 하나가 편두통 횟수 감소였고, 이를 위해 커피를 끊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끊는 과정이 아주 순탄하지는 않았다. 역시나 커피를 끊고 나니 앞머리가 띵하니 두통이 찾아왔다. 또 머릿속은 안개가 낀 것처럼 몽롱했다. 하지만 이번엔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커피를 끊은 지 2주가 지났다. 구름이 걷힌 하늘처럼 머리가 오히려 맑아졌다. 카페인 때문에 머리가 띵해져 오는 것도 없고, 편두통이 있어도 강도가 예전보단 적다. 물론 편두통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커피를 끊고 나니 물을 더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하루에 맹물 1잔 마실까 말까였지만, 지금은 그전보다 확실히 많이 마신다. 왠지 모르겠지만 식욕도 줄어든 것 같다. 뭐랄까, 헛배고픔이 없어진 느낌이랄까.


커피는 효능과 부작용이 그 어떤 식품보다 극명하게 갈리는 것 같다. 어느 한쪽이 정답은 아니다. 단지 나에게는 커피가 좀 맞지 않았을 뿐. 커피에 대한 내 몸의 반응에 귀 기울이고, 부정적이라면 줄이거나 끊고 괜찮다면 적당량을 마시는 것이 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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