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망 Oct 04. 2023

10일차 같은 5일차

가까운 미래를 기대하게 되는 주문

편하다는 것은 나아갈 때가 되었다는 신호


어느덧 수업을 네 번이나 수행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운동을 시작한 첫 주는 이틀밖에 출석하지 못했다. 처음 한계를 넘어본 경험의 대가는 집에서 가만히 누워있기만 해도 온몸이 쑤셔서 곡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나오게끔 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은 무척 불편했지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으니 어쩌면 나에게 꼭 필요한 통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뼈마디가 쑤신다는 느낌을 서른이 채 되기도 전에 이해하게 된 나는 며칠을 끙끙 앓았지만, 이번 주는 다행히 몸이 조금은 단단해졌는지 움직일만해서 반드시 주 3회를 채우겠다고 작심하며 토요일에 체육관으로 향했다.


토요일은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짧은 시간만 운영하기 때문에, 오픈 시간에 맞추어 체육관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체육관에 들어와 몸을 풀고 있으니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토요일이라 여유롭게 운동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정된 시간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을 보고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싶었다. 아니면 내가 그동안 너무 편하게 살았던 걸까?


지난 경험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내 몸이 오랫동안 편한 상태에 머물러 고통에 익숙하지 않으면 다시 나아갈 때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운동을 안 해서 몸이 쑤시지 않거나, 고민이 없어서 머리가 아프지 않다면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휴식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동안은 변화와 발전이 조금 늦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꿈과 목표가 있다면 충분히 쉰 다음에 다시 앞으로 나아가면서 고통과 함께 성장할 준비를 해야 했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무언가를 잃어야 하는 법. 당연한 세상의 이치다. 일단 육체적인 고통은 이 정도면 차고 넘치는 것 같기는 하다.


우리는 서로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괜히 엄살 피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체육관의 운동은 상당히 힘든 편이다. '스트레칭-준비운동-체력훈련(*WOD1)-타격훈련-체력훈련(WOD2)-마무리'로 격렬하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운동을 최소한의 휴식 시간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고통을 이 악물고 버티다 보면 결국 항상 조져지는 건 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직 경험이 부족해 페이스 조절이 안 되는 나는 그저 정신을 놓지 않고 버티는 데 의의를 두곤 한다.


첫 수업에서 완벽하게 패배해 버렸던 나는, 이제 겨우 이를 악물고 버티면 죽기 직전에 끝나는 운동 세트 사이에 헉헉거리면서 쉬고 있으면 이제 막 체육관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나도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서는 두어 번의 지옥문을 더 봐야 하지만, 지금 체육관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안쓰럽다. 집에 갈 시간이 얼마 안 남은 병장이 이제 막 입대하는 신병을 보는 듯한 측은함이 몰려온다고나 할까. 물론 그들은 고작 이 정도의 운동을 하면서 바닥에 엎어져서 헉헉거리고 있는 나를 보고 측은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가까운 미래를 기대하게 되는 주문


고통스럽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끝은 있는 법이니, 결국 오늘의 운동도 끝이 났다. 운동이 끝난 뒤 역시나 바로 서지 못하고 구석에 주저앉아 있다가 일어나는데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다. 몸이 상처받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서 성장이 일어난다는 당연한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예전에는 그저 통증과 고통이 싫었는데 이제는 성장을 위해서 내가 감내해야 하는 대가라는 생각이 드니 뿌듯하다. 아마도 내가 이제는 정말 변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인정하기는 싫어도 고통 뒤에 성장이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은 맞는 말인 것 같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너무 아파서 힘을 쭉 빼고 터덜터덜 탈의실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코치님이 다가오셔서 말을 건넸다. "벌써 우리 10번 정도 봤죠?" "아뇨 저 오늘 5일 차, 인데요" "와, 올 때마다 너무 열심히 하시니까 오래 본 것 같네요"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고생했다 어깨를 툭툭 두드리시고는 쿨하게 가버리시는 코치님. 젠장, 최근에 킥복싱을 더 열심히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서 내 정신이 이상해졌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큰일 났다. 이렇게 심신이 약해져 있을 때 현재 내가 들을 수 있는 최선의 칭찬이 날아오면 힘을 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루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전부였던 지난 한 달이었다. 흘러가는 하루를 붙잡을 생각이 없었기에 미래의 내 모습을 기대할 수 없었다. 저 멀리 반드시 마주하게 될 나의 모습은 분명 초라할 것 같았기에 몇 년 뒤의 내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가까운 미래에 운동 10일차가 된 나의 모습을 그려보며 싱긋 웃었다. 조금 더 단단해진 몸으로 운동이 끝난 후에 지금보다 안정된 호흡으로 멀쩡하게 서서 코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 한 방에 무너지지 않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