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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망 Oct 18. 2023

덤을 많이 주는 체육관

체력을 구입하시면 맷집과 배짱을 함께 드려요

이틀 연속 운동을 하는 용기


체육관에 이틀 연속으로 가는 것은 내 순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운동을 시작한 지 어느덧 두 달이 넘었는데도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순간은 늘 죽을 것 같고, 끝내고 나오는 순간은 후련하며, 다음날은 아릿한 근육통이 어제의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새삼 체육관을 등록하기 전 주 6회 운동을 매일 할 것이라고 패기를 부렸던 지난날의 내 모습과 그것을 말려준 코치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감사합니다 코치님. 다년간의 경험으로 인한 코치님의 데이터가 나를 구했다.


어제 분명히 운동했지만, 주 3회 일정을 소화하려면 오늘도 출석을 해야 한다. 이불에 파묻힌 상태에서 몸을 한 번 꿈틀거려 보았다. 역시 어제 했던 *로잉머신의 영향으로 다리와 팔이 욱신거린다. 이제는 고통에 꽤 익숙해져서 이 정도 통증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지만, 언젠가 보았던 '근육은 휴식할 때 성장한다'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이 머릿속을 붕붕 떠다닌다. 물론 그 명언 앞에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아주 격렬한 운동 후에'라는 문장이 붙는다는 걸 알지만, 그 전제 또한 어제 분명히 달성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은 분명 나였지만, 그 뒤에 '그러나 운동 초보자들은 성장이 빠르기 때문에 조금 욕심을 부려도 좋다'라는 문장이 있었던 것까지 기억하고야 만다. 하 가끔은 기억력이 너무 좋은 것도 문제다 정말. 


한참 운동하러 갈지 말지 고민하다가 절충안으로 저녁에 체육관에 가보기로 했다. 항상 오전에 체육관에 다녀왔었는데, 저녁 시간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여태 오전 시간을 놓치면, 그날은 운동을 쉬었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이런이런, 나 농땡이 많이 피우고 있었구나. 저녁 시간까지 체육관을 운영하는 것을 몰랐다고 하기에는 너무 양심에 찔려서, 처음으로 이틀 연속 운동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덤을 많이 주는 체육관


저녁 시간이라고는 해도 아직 이른 시간이라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이미 체육관에는 사람들의 기합과 비명(?) 소리로 가득했다. 열기가 후끈한 체육관을 밖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얼른 몸을 예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저런 뜨거운 것을 보면 피해 가기 바빴는데, 이제는 후끈한 열기를 마주하게 되면 뒤돌아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소매를 걷어붙이고 전투태세에 임하게 된다. 어디 한번 덤벼봐라 할 수 있는 맷집과 배짱이 생겼다고나 할까. 체력을 키워보려고 다니기 시작한 체육관인데, 덤으로 이것저것 많이도 챙겨준다. 이러니 힘들어도 미워할 수가 없다.


'오늘도 한 번 신나게 깨져보자'라는 마음으로 신발을 벗고 체육관에 들어와 몸을 풀고 있는데, 여지없이 코치님이 다가오셔서 한마디 하셨다. "오늘 몸 제대로 푸셔야 해요." 예전이라면 겁먹었겠지만, 이제는 저런 말을 들어도 "네네~" 하고 받아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무튼, 나도 이제 어느 정도 경력(?)이 좀 쌓였는데 두 달 전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 취급하면 곤란하다.


...아, 오늘 코치님이 건넨 인사는 과거의 내가 아니라 현재의 나에게 말한 것이 맞구나. 코치님이 매일 건네는 짧은 인사가 모두에게 동일한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개인에게 정성 들여 건넨 맞춤 인사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평소보다 훨씬 힘들었던 하체 위주의 운동 코스를 끝내고 드러누워서 체육관 천장을 바라보며 앞으로는 코치님이 어떤 인사를 건네든 오롯이 나를 향한 인사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


순간을 사는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고 이렇게 바닥에 드러누워 뒹굴 수 있는 곳이 체육관 말고 또 있을까? 오늘의 운동은 끝났지만 바로 옷을 갈아입을 힘이 없어 누워서 쉬고 있으니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다양한 성향들이 보인다. 운동 한 세트를 끝낸 뒤 벌러덩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 쉬지 않고 한 호흡으로 운동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 슬쩍슬쩍 요령을 피우는 사람, 이를 악물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 등. 무리에 들어가 함께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면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학창 시절 짧은 머리에 똑같은 교복을 입고 수십 명이 앉아 있는데도 "내 눈에는 다 보인다"라며 조는 사람들을 칼같이 호명하시던 담임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나는 선생님이 나를 싫어하시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아, 내 이름이 많이 불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무리에서 빠져나와 상황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으면,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것을 해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하나의 운동을 끝내고, 곧바로 다음 운동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분명히 힘들 텐데, 얼굴 찡그리는 걸 봤는데, 쉬지도 않고 다음 운동기구 앞에 서는 그 모습이 자못 존경스럽다. 나의 경우는 운동이 하나 끝나면 일단 어디든 기대거나 걸터앉는다. 그리고 다음 운동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며 머리를 굴린다. '아 진짜 힘들겠지?' '이번에는 팔운동이네 팔 빠지겠다' '안 쉬고 한 세트를 끝낼 수 있으려나' 등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걱정하며 쉬는 시간을 가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걱정과 불안들이 나를 더욱 겁먹고 지치게 하는 것 같다.


하나의 운동을 끝내고 바로 다음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미련이 없다. 그저 그 순간 1초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들은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에 미련을 갖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자꾸 눈이 가는 것 같다. 어딘가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매력이 있으니까.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보고 있으면 부러움과 동시에 상실감이 들 때가 있다. 여태 그런 사람을 마주하면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며 피해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방향을 틀어 피해 가는 대신 내가 바라는 그 모습을 똑바로 마주하며 눈에 가득 담았다. 체육관이 내게 체력과 함께 덤으로 준 맷집과 배짱이라면 왠지 한 번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었던 등을 떼어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 한구석에서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들과 같은 온도로 체온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로잉머신 : 조정 선수들이 배를 탈 수 없을 때 실내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구로, 심폐기능과 전신 근육 단련에 도움을 주며 칼로리 소모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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