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정말 사랑하는 걸까?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비슷한 시기에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나와 친구의 삶은 꽤나 많이 닮아있었다.
평소에도 나와 참 비슷하다고 느끼는 친구이기에,
굳이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대화 속에서 친구의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스스로의 자존감에 대하여 이야기 하게 되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나의 회사도 친구의 회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방식은 다르지만, 급여의 삭감을 받게 되었다.
처음 급여 삭감을 당했을 때는 참 당황스러웠다.
워낙 회사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듣고 있었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고통을 분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급여에 영향을 미치니,
회사의 위태로움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나와 나의 가족의 생계도 위협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자존감이 하락하지는 않았었다.
일회성의 삭감이었고, 그래도 다시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기분이 좋지 않았을 뿐, 나의 존재가치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경우는 좀 달랐던 것 같다.
급여의 삭감이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인 것이었고,
그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았다.
직장인에게 급여는 바로 생존의 문제이다.
생존이 위협받는다면, 우리 모두 작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친구의 말이 나의 머리를, 가슴을 탁 치게 만들었다.
그 친구는 진심을 담아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내가 너무 좋은데, 이런 외부의 영향으로 내가 작아지는 것이 힘들다고....
그래서 스스로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나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이다.
내가 너무 좋다는 그 말이,
친구랑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이 났다.
과연 나는 그렇게 진심을 담아 내가 너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말한 적이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가 너무 좋다고 느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있을지라도, 타인에게 진심으로 내가 너무 좋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자, 갑자기 내가 안쓰러워졌다.
나조차 내가 너무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타인이 나를 좋아해 주기를 왜 그렇게 바랬던 걸까?
나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데, 타인이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결핍을 타인의 애정으로 채우고자 노력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늘 허기졌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내가 먼저 나를 좋아해 주자라는 결론이 났다.
내가 나를 살펴봐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타인이 주는 상처들을 막아주며,
앞으로는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삶을 살자고 말이다.
그러고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충분히 멋진 사람이니,
지금의 위기는 슬기롭게 잘 이겨낼 것이라고 말이다.
최근에 본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기쁜 일이 있을 때는 가장 많이 기뻐해 주고,
내게 슬픈 일이 생기거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도 나를 버리지 않을 진정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바로 나 자신이다.
앞으로 평생 헤어지지 않을 친구, 그게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나의 평생친구인 나에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다보면, 타인에게 애정을 바라는 사람이 아닌, 타인에게 애정을 넘치도록 베풀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