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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편 Nov 30. 2020

다시 내려 올 산을 굳이 오르는 이유

등산은 더 이상 중년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주 내내 몸이 아팠다. 

두통과 소화불량으로 오랜만에 받은 휴가 5일을 고스란히 침대에 누워 보내야 했다. 

두통으로 인해 소화가 되지 않는 건지, 소화가 되지 않아 두통이 생긴 건지 알 수 없게, 

두 증상이 번갈아 가며 나를 괴롭히더니, 휴가 마지막 날에는 허리까지 통증이 생겼다. 


아프다는 나의 소식을 들은 친구는,

내가 그동안 계속 긴장하고 살다가, 휴가를 받고 나니 긴장이 풀린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아픈 거라고 말이다. 


그 말은 꽤나 나의 증상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휴가 때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힘이 없어서 하나도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아픈 만큼 정말 오랜만에 잠을 실컷 잤다.


아마도, 나의 몸이 이제는 좀 쉬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신호를 준 것 같았다. 


몸이 아픈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몸이 아프니, 마음도 같이 아파진다는 것이었다. 


몸이 아프니, 그동안 나의 힘들었던 일들이 계속 떠오르며,

그 일들로 인해, 이렇게 몸이 아픈 거라며....

나 스스로를 자꾸 상처 냈다. 


몸이 거의 나아갈 때쯤, 이렇게 누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아프고 싶지 않았다.


그때, 창 밖으로 밀집한 아파트들 사이로 산이 보였다.

운이 좋게도, 나의 집은 꽤 좋은 산을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있다.

그럼에도, 그 산을 한 번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등산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시 내려올 산을 굳이 오르는 이유가 뭐야?!!


그런데, 그날은 등산이 하고 싶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에는 겁이 없는 편인 나는, 

간단하게 산으로 걸어가는 길만 검색해본 후, 호기롭게 패딩을 입고, 운동화만 신고 산으로 출발했다. 


등산로 입구를 운 좋게 찾고, 타임스탬프 사진도 찍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럴 수가!!

산이 너무나 험하고 높았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 산이 낮다고 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왜 그 산이 낮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숨이 턱까지 차고, 정상은 오를수록 더 멀어 보이고, 심지어 평일 오전이었던 탓에 산에 아무도 없었다.


여기까지만 갈까? 하고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

아래를 보니 어느새 나는 꽤 높이 올라와 있었다.

정상은 아직 멀어 보였지만, 왠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정상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있는 힘을 다해, 발을 옮기고, 정상에 다다르자,

눈부신 햇살과 코 끝이 살짝 시린 찬 바람이 불었다. 


그때의 기분이란!!!!  
이것이 바로 등산의 맛!!!


작아진 발 밑의 세상을 바라보자니,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라온 나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누군가의 말처럼,

몸이 고되면 잡념이 사라진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파른 산을 줄을 잡고 내려올 때는, 오를 때와 달리 그렇게 웃음이 났다. 


그때는 웃음이 나는 이유는 잘 몰랐지만,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정말 오랜만에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낀 것 같다. 


조용한 산을 나 혼자 오르고 있자면

사락사락 낙엽 밟는 소리와 숨소리,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햇살과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시끄럽던 나의 마음이 조용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마음이 깨끗하게 청소되는 기분이 든다.


어른들이 왜 등산을 좋아하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어른이 될수록, 

세상은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더 이상 나만 주인공 일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산은 그 헛헛한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다 별 일 아니라며, 나의 등을 토닥여 준다. 


나는 다시 내려올 산을 굳이 계속 오를 것이다. 

그리고 산으로부터 진한 위로를 선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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