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그리고 3번의 바람
“언니, 인생 얘기 해줘.”
제주도 정원책방에 도착했을 때, 나만큼이나 아담하고 나보다는 훨씬 앳돼 보이는 ‘시현’이라는 스텝이 있었다. 시현이가 21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10살 터울에서 오는 괴리감이 훅 와닿아 다리가 절로 풀려 주저앉아버렸지만, 나중에 보니 특유의 성향이 성숙하게 느껴져 오히려 배울 점까지도 많은 친구였다. 일하고 있는 내게 다가와 에어프레이기에 튀긴 치킨 너겟을 주고 가거나,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소금크림맛 홈런볼을 주고 가곤 했다. 내게는 먼저 다가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시현이가 스텝으로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현이는 ‘오늘 저녁에 맥주 한 캔 하자’며 우리의 만남이 그저 스텝으로서가 아닌, 추억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물고를 터주기도 했다.
“인생 얘기? 내 인생 별거 없는데…
아닌가. 별거 있나?”
인생 얘기를 하기에는 서른한 살이라는 내 나이가 적게 느껴지면서도, 삶을 돌이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누군가 내 신용카드를 주워서 하루 만에 800만 원을 통 크게 질러 버린 이야기, 6년 만난 남자친구가 나와 만나는 동안 3번이나 바람을 피운 이야기… ‘인생 얘기’라 하니 왜인지 생각나는 건 크게 이 두 가지였다. 누군가에게는 별 일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일들은 하필 최악의 타이밍에 발생했다. 내 인생이 바닥이라고 생각했을 때, 바닥 밑에 하수구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달까.
그중 행복한 기억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한 ‘6년 만난 남자친구가 3번이나 바람피운 이야기’는 바로 내가 제주에 온 이유이기도 했다. 반전이 있다면 ‘바람피운 이야기’가 무려 10년 전 이야기라는 것. 그렇다. 나는 10년 전 과거의 상처로 인해 10년 동안 고생하는 중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세월의 더께가 쌓여 무뎌지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이때의 상처는 아무는 데 많은 시간과 보살핌이 필요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는 시현이에게 맥주 한 캔을 들고 짠하는 시늉을 하며 10년 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그러니 당연 내게는 ‘첫사랑’ 같은 존재였다. (첫사랑의 정의는 주관적이겠지만 내게 ‘첫사랑’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그였다.) 나보다 1살이 많았던 그는 연애 후 진한 스킨십을 시도했지만, 그 나이의 나에겐 포옹과 가벼운 입맞춤 이상의 스킨십이 어색하고 두려웠다. 그는 ‘모두가 이렇게 한다’라는 말과 함께, 도리어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문득 평소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넌 너무 순수해. 넌 너무 아무것도 몰라... ‘ 그의 표정과 친구들의 말이 교묘하게 겹쳐졌다. 내가 너무 세상을 모르나 보다.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볼 새도 없이 스킨십을 무서워하는 ‘내가 이상한 것’이라는 간결한 결론에 너무 쉽게 다다랐다.
그렇구나, 내가 이상한 거야.
그와의 연애는 즐거웠지만 때때로 두려웠다. 그는 나를 어둡고 무서운 곳으로 데려가곤 했다. 컴컴하고, 춥고, 무서웠다. 그를 거부하고 싶어서 종종 억지로 헛구역질을 했다. 그런 연애가 꽤 오래 이어졌다. 모두가 이런 사랑을 한다는데, 왜 나는 무서운 걸까. 그는 내게 스킨십을 하면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나는 왜 이게 싫을까. 어딘가 못난 나를 탓하다 보니 그에게 돌연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게 그는 죄책감에 못 이겨 바람을 피웠고, 그 이유 또한 내게 당당하게 말했다. “너에게 스킨십을 하면 죄책감이 들어서 그랬다 “고 말이다. 내 기억으로 그의 바람은 6년 동안 3번이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나를 처음 사귄 것도 바람을 피워 사귀게 된 것이었기에 몇 번이라 말해야 할지 통 모르겠다. (모르는 게 낫기도 하다. 3번의 바람은 나중에 구체적으로 고발하겠다.)
3번의 바람을 용서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비슷했다. ‘몇 번이나 바람피우는 동안 왜 봐줬냐’라는 반응이다. 사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 역시 그러지 않을 테지만, 그 시기의 나는 사랑이 처음이었기에 으레 대부분의 첫사랑은 그런 아픔을 동반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가 바람을 피우고 나서 당당하게 ‘원래 다들 그래’라고 말했던 순간이 나를 의아함과 안도감 그 어디쯤에 데려다 놨달까.
다들 그런다고?
그놈의 ‘원래’는 자꾸만 내게 비교 대상이 없는 첫사랑의 여정을 혼란스럽게 했다. 나는 줏대도, 의견도 없었다. 그저 나보다 먼저 사랑을 해본 이가 가르쳐주는 대로, ‘원래 그렇다는 것들‘을 묵묵히 따랐다. 맹목적인 행동 뒤편에서 마음이 무참하게 허물어져가는 줄도 모르고, 바람피운 그를 용서하고 다시 또 울면서 그의 손에 끌려가곤 했다. 그를 만나는 게 무서워졌지만 헤어지는 법을 몰랐고, 헤어지면 괜한 소문이 날까 두려웠다. 오만가지 생각이 매일 밤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혼란과 순수의 이름을 빌리며 사랑하는 사이, 내 마음속은 불안으로 점철되었다. 첫 번째 바람은 신뢰를 깨트렸고, 두 번째 바람은 자존감을 무너트렸으며, 세 번째 바람은 불안장애를 안겨줬다. 불안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 내 영양소를 모조리 가져간 모양인지 나중엔 탈모가 생겼고, 몇 년 동안 불안에 쏟은 영양소는 마음속에 큰 가시나무를 키운 듯했다. 조금만 더 자라나면 모든 장기에 생채기를 낼 것만 같은데,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매일 성장했다. 정말 온몸이 아팠다.
과거의 기억들은 아직도 떠올리는 것 자체로 고역이다. 글을 쓰기 위해 직면하는 과거들에 숨이 막히지만, 의심 극복을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