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인문 온라인 글쓰기
웃음 : 소소인문 온라인 글쓰기 <영화에서 건져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9기
'웃음' 하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아마 중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한 교회 오빠가 나와 같은 학년인 여자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지 재밌는 얘기를 하는데 그 아이는 웃지 않았다. 그 아이의 뚱한 무표정을 보니, 그 공간에 우리 세 명만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앞에 있던 사람이 무안하겠다 싶어서 내가 웃어주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누가 너 웃으래?"라는 말. 진짜 웃겨서 웃었다면 내 기분이 그토록 무안하고 수치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때부터였나 보다. 내게 가장 취약한 감정이 무안함이 된 시작이. 선의가 늘 있는 그대로 닿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 때이기도 하고, 모두가 선의를 받을 자격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나는 잘 웃는다. 다행이다.
나의 웃음은 당신에게 호감이 있다, 당신에게 동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신을 지지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언어로 정확하게 전달한 메시지도 온전히 보낸 그대로 받는 이에게 전해지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비언어인 웃음인들 제대로 전해질까 싶다.
웹툰 <가담항설>에서 이갑연이 이런 말을 한다.
암주야.
사람의 마음이란 건 말이야,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진심으로 정성을 쏟는다고 해도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게 아냐.
주는 만큼 돌려받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러지 않으면 애초에 얻을 수가 없는 거니까.
결과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전부를 걸어야 한다는 말이야.
_<가담항설> 이갑연
사람의 마음을 얻기란 이렇게 힘들다. 진심을 다하고 정성을 쏟아도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애초에 얻을 수가 없기에 결과는 상대의 몫, 과정은 나의 몫으로 감당해야 한다.
지금 내가 중학교 때의 그 시절과 같은 일을 겪는다면 씁쓸한 기분은 느끼겠지만 그게 무안하거나 수치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애초에 그 사람이 누군가의 호의나 선의를 받기에 그릇이 작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웃기지 않는데 굳이 웃으면서 상대의 인정을 받으려고 한 나의 의도도 100% 선의는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에 따라 나의 노력의 가치가 변하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하되 나의 영향력의 원 밖의 것에는 에너지를 두지 않는 게 방법이겠다. 나는 여전히 웃고, 나의 웃음에 웃음으로 화답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 그럼 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애초에 웃기려던 사람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고 그 여자아이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 앞이라는 이유로 더 부정적인 감정이 흐른 것도 맞다. 그러니 오랫동안 내 미움을 받은 그 사람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이 모든 게 내 마음속에서만 일어난 일이라서 그 누구도 이런 감정의 회오리와 변화는 몰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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