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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May 25. 2023

웃음

소소인문 온라인 글쓰기

웃음 : 소소인문 온라인 글쓰기 <영화에서 건져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9기



'웃음' 하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아마 중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한 교회 오빠가 나와 같은 학년인 여자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지 재밌는 얘기를 하는데 그 아이는 웃지 않았다. 그 아이의 뚱한 무표정을 보니, 그 공간에 우리 세 명만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앞에 있던 사람이 무안하겠다 싶어서 내가 웃어주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누가 너 웃으래?"라는 말. 진짜 웃겨서 웃었다면 내 기분이 그토록 무안하고 수치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때부터였나 보다. 내게 가장 취약한 감정이 무안함이 된 시작이. 선의가 늘 있는 그대로 닿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 때이기도 하고, 모두가 선의를 받을 자격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나는 잘 웃는다. 다행이다.


​나의 웃음은 당신에게 호감이 있다, 당신에게 동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신을 지지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언어로 정확하게 전달한 메시지도 온전히 보낸 그대로 받는 이에게 전해지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비언어인 웃음인들 제대로 전해질까 싶다.


​웹툰 <가담항설>에서 이갑연이 이런 말을 한다.


암주야.
사람의 마음이란 건 말이야,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진심으로 정성을 쏟는다고 해도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게 아냐.
주는 만큼 돌려받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러지 않으면 애초에 얻을 수가 없는 거니까.
결과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전부를 걸어야 한다는 말이야.
_<가담항설> 이갑연


사람의 마음을 얻기란 이렇게 힘들다. 진심을 다하고 정성을 쏟아도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애초에 얻을 수가 없기에 결과는 상대의 몫, 과정은 나의 몫으로 감당해야 한다.


​지금 내가 중학교 때의 그 시절과 같은 일을 겪는다면 씁쓸한 기분은 느끼겠지만 그게 무안하거나 수치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애초에 그 사람이 누군가의 호의나 선의를 받기에 그릇이 작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웃기지 않는데 굳이 웃으면서 상대의 인정을 받으려고 한 나의 의도도 100% 선의는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에 따라 나의 노력의 가치가 변하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하되 나의 영향력의 원 밖의 것에는 에너지를 두지 않는 게 방법이겠다. ​나는 여전히 웃고, 나의 웃음에 웃음으로 화답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 그럼 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애초에 웃기려던 사람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고 그 여자아이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 앞이라는 이유로 더 부정적인 감정이 흐른 것도 맞다. 그러니 오랫동안 내 미움을 받은 그 사람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이 모든 게 내 마음속에서만 일어난 일이라서 그 누구도 이런 감정의 회오리와 변화는 몰랐겠지만...

https://m.blog.naver.com/dove7522/22306624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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