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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진 Oct 15. 2024

탁구와 실패의 맛

 탁구는 정말 재밌다. 그리고 정말 어렵다. 고등학생 때 허름한 교회에 찾아가던 정말 큰 이유는 탁구를 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제대로 된 자세나 경기를 운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친구, 선후배와 왁자지껄 우당탕 치던 탁구가 어찌나 재밌던지. 운동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었음에도 탁구에서는 승률이 괜찮은 편이었던지라 스스로 탁구를 어느 정도 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년 전 집 근처에 탁구장이 생겼을 때 언젠가는 방문해서 탁구를 배워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마음만 먹었다. 생각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만드는 일이 당시에 아주 버거워 방문하지는 못했다. 결국 퇴사를 하고 일을 쉬게 돼서야 슬그머니 탁구장에 찾아가게 되었다. 


첫 레슨부터 '내가 탁구는 어느 정도 치지!'라는 마음이 와장창 무너졌다. 시작하자마자 선생님께서 새로운 탁구채(셰이크핸드 그립)를 주시며 요즘은 아무도 포핸드 그립으로 시작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렇게 엉거주춤 탁구채를 움켜쥐고 서니 20분 타이머의 '삑' 소리와 함께 볼 박스에 쌓인 수많은 탁구공이 내 앞에 던져졌다. 포핸드 스윙이라 하기 민망할 정도로 내 몸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작고 하찮은 탁구공 하나가 손 한 뼘도 되지 않는 낮은 네트를 넘어가는 일이 어찌나 어려운지. 몸을 많이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진땀이 줄줄 흘렀다. 확실히 재미로만 치던 때와 달리 정말 세밀하게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은 운동이었다. 그래도 몇 달을 꾸준히 배우며 차츰 자세도 익숙해지고 포핸드, 백핸드, 커트를 조금씩 익히며 공격기술인 포핸드 드라이브를 배우기 시작했다.


포핸드 드라이브를 배우며 또 한 번 좌절을 경험했다. 특히 레슨이 아닌 게임을 하면서 더욱 그랬다. 코치님의 공은 드라이브를 치라고 대놓고 주시는 공이었지만 실전은 달랐다. 내가 주로 게임을 하는 상대는 안정적인 커트로 수비에 집중했고 드라이브를 치기 좋은 코스로 공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기회만 생기면 드라이브를 시도했다. 문제는 그 드라이브가 번번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실패는 곧바로 실점을 낳고 실점이 쌓이니 패배가 되었다. ‘이걸 뭐 하러 배웠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계란에 바위 치는 심경으로 꾸준히 시도했다. 그러니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승률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5:5는 아니고 6:4였는데 내가 4였다. 그래도 ‘늘긴 느는구나’하며, 장기적으로 보면 드라이브라는 무기를 장착한 결국 더 많이 이길 날이 오지 않을까 스스로 위로해보기도 했다.


삶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찾아온다. 레슨을 받으며 족히 수백 개의 공을 치다 보면 그냥 넘어가는 공이 있고 네트에 걸리는 공이 있다. 그런데 네트에 걸리는 공에 일일이 신경 쓰다 보면 바로 다음 공을 제대로 칠 수 없다. 지나간 공에 신경 쓰기보다는 다가오는 공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탁구공이 마치 매 순간 다가오는 ‘지금'처럼 느껴졌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실수는 할 수 있지만, 그 실수에 너무 연연하면 오히려 중요한 기회를 놓치기 쉬운 것이다. 중요한 건 실패하는 만큼 경험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씩 알맞은 방법을 찾는 것이다. 성공이란 결국 수많은 실패를 통해 쌓이는 기술인 꼴이다.


공이 네트에 걸리는 것이 두려워 탁구대 앞에 서지 않으면, 넘어가는 공도 득점도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기를 당할 일도 없고 사고가 날 일도 없고 실패나 미움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성장할 기회도 없고 새로운 즐거움도 경험하지 못하며 사랑받을 기회도 사라진다. 드라이브를 한 번 제대로 성공시키기 위해 수백수천수만의 실패를 경험해야 하는 것처럼 일도 계속해서 시도하고 넘어져야 몇 가지 즐거움과 작은 성공과 성장하는 행복이 뒤섞인 삶의 맛을 볼 수 있다. 실패하지 않으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삶의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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