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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진 Aug 15. 2024

자신 없는 일 앞에서

“자 섬진님이 좋아하는 벤치프레스 해봅시다. 긴장 유지하면서 라인 잡고 천천히 내리고 주먹을 하늘로 뻗듯이. 내릴 때 좀 더 차분하게, 손바닥으로 버티면서 받아준다고 생각하고 거의 가슴에 닿을 만큼 내려봅시다. 아이고, 왜 이렇게 겁을 먹어요(웃음)”


그 순간에는 변명을 못했지만 이제야 몇 가지 변명을 늘어놓자면 이렇다. 먼저, 나는 벤치프레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체 근육이 더 발달한 체형이라 상체 운동 수행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그만큼 흥미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선생님이 자꾸 세뇌를 한다. 그래서 “자! 섬진님이 좋아하는 벤치프레스 시간입니다!”라고 말할 때마다 허탈하게 웃으며 벤치에 눕는다. (하지만 이제는 벤치프레스를 할 때 혼잣말로 되뇐다. “좋아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벤치프레스를 해보자.”라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다음 변명은 나 역시 차분하게 들어 올리고 싶지만 쉽사리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벨이 무겁고 깔릴까 두렵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몸이 많이 긴장하게 된다. 누운 상태에서 바벨을 가슴에 닿을 듯이 찍고 올리라고 말씀해 주셔도 속으로는 ‘여기까지 내렸다가 못 들면 어떡하지?’라는 막연한 걱정에 선생님의 코칭보다 훨씬 소극적으로 동작을 하게 된다. 무게를 한번 들고나면 어김없이 선생님은 “겁먹지 마세요!”라고 응원 세 스푼, 훈계 한 스푼의 황금비율의 피드백을 주시지만 이미 잔뜩 얼어붙어 있는 내게 피드백이 들어올 틈이 없다. 한 세트를 마치고 나서 다시 피드백을 듣는다. “지금 충분히 들 수 있는 무게예요. 그러니깐 너무 겁먹지 마세요. 그리고 좀 깔리면 어때? 제가 바로 보조해 줄 수도 있고 혼자 할 때도 이 정도 무게는 깔려도 밑으로 내려서 비상탈출 하면 돼요. 헬스장에서도 벤치 하다가 깔리면 주변에 도움 요청하세요!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어요. 다 빨리 와서 도와주지. 지금 섬진님 가슴 운동 하고 있는 거예요. 최대한 대흉근을 사용하는 느낌을 가지고 가야 해요.” 구구절절 맞는 말에 연신 고개만 끄덕인다. 찰나의 쉬는 시간을 보내고 또다시 벤치에 눕자 들려오는 말. “자 무게 늘렸어요. 제가 라인 잡을 수 있게 보조할 테니깐 이번에는 좀 더 차분하게 해 봅시다.” 저기요 선생님, 언제 늘리셨죠?


집에 돌아와 씻기 위해 탈의를 하고 거울 앞에 섰다. 괜히 두 손을 모아 가슴에 힘을 주고 포즈를 잡아본다. 이 각도 저 각도로 둘러봐도 어김없이 앙상한 몸매에 괜히 머쓱해진다. 가슴 운동이라고 애를 썼는데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는 외형에 살짝 실망감이 들었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니 개인 운동 때 가슴운동 비중을 늘려보기로 했다. 혼자 할 때도 역시 쉽지 않았다. 선생님의 보조가 없으니 무게를 늘리기보다는 혼자 들 수 있는 범위에서 최대한 자극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운동을 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벤치 프레스를 중심으로 가슴운동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가슴근육에 무게를 싣는 느낌을 가져갈 수 있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느낀 중요한 사고방식은 지레 겁먹지 않고 힘을 유지하는 것이다. 벤치에 누워 조금 부담스러운 무게의 바벨을 뽑고 내릴 때부터 겁을 먹으면 힘이 들어가지 않아 들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하지만 무거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내릴 때에 힘을 유지하면서 가슴으로 받으면 다시 들어 올리는 게 훨씬 수월 해진다. 그래서 요즘은 무게에 너무 연연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혼잣말이 늘었다. 벤치를 할 때마다 “좋아 가벼워! 쉬워! 할 수 있어!”라면서 스스로 다독여본다. 물론 12개가 목표였던 한 세트가 8개로 줄어드는 일은 다반사이지만 가슴근육이 땅땅하게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면 뿌듯함도 그만큼 채워진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 없이 많은 부담스러운 일들도 이렇게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보지 뭐! 쉬워! 할 수 있어!” 해보지 않았다고, 취약한 부분이라고 지레 잔뜩 겁만 먹으면 되려 깔려버리기 쉽다. 부담스럽고 버겁지만 끝까지 힘을 붙들어야 다시 들어 올릴 수도 있다. 더군다나 주변에 나를 도울 동료들도 있다면 생각보다 좀 더 무거운 일도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래, 좀 깔리면 어떠랴. 심각한 부상만 피한다면 숨을 고르고 언제든 다시 덤벼 볼 수 있다. 겁먹지 말되 어느 정도의 긴장을 유지하고 시도해 보자.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업무를 할 시간이다. 먼저 초안부터 짜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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