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너비보다 살짝 넓게 서고 바벨 걸치고. 자, 일어나면서 천천히 들고 뒤로… 옳지. 허리 펴고 거울 보시고 고관절 접으면서 내려갑니다. 하나~, 발끝 바깥쪽으로 무릎은 안쪽으로 말리지 않게. 그렇지. 둘~”
하체 운동을 하는 날은 집으로 돌아가는 언덕이 무섭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올랐던 경사와 계단이 고난의 언덕이 되기 때문이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아파 엉거주춤하게 걸어가는 꼴이 우스워 행여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괜히 서둘러본다. 건너야 하는 신호등이 애매한 거리에서 깜빡거리기라도 하면 한숨을 푹 내쉬고 다음을 기약한다. 비틀비틀 걸으며 “집에 가는 길이 이렇게 멀었나.”라며 혼잣말을 되뇐다. 매번 이렇게 후들거리면서도 하체 운동을 해야 하나 싶다. 그렇지만 여기저기 물어봐도 하체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쌓이고 쌓였다. 몸 전체 근육 중 약 70%의 비중이 하체에 위치해 있으며 전체적인 근육 성장을 위한 기본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며 급격하게 퇴화하는 관절이나 혈압에 관한 질병에도 탁월한 예방효과가 되어준다는 연구 결과가 충분했다. 그런데도 하체 운동을 하고 돌아가며 비틀거리는 모습은 여전히 볼품없었다. 비틀비틀 걷다 마주친 상가 유리에 비친 내 걸음을 보니 유난히 늦었던 어느 퇴근길이 생각났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매일 같이 야근을 하던 때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야근하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비틀거리는 행인을 마주쳤는데 술에 잔뜩 취해 셔츠 위 넥타이는 헝클어져 있었고 서류 가방을 잡은 손은 행사장 인형처럼 펄럭거렸다.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최대한 먼 거리를 유지하며 길을 지났다. “제 몸 못 가눌 정도로 왜 저렇게 술을 퍼마시나….” 혀를 끌끌 차며 길가에 나가 택시를 잡아타 집에 돌아왔다. 왜 이렇게 늦게 퇴근했냐는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안부를 못 들은 체하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몸을 다시 일으켜 씻고 잘 준비해야 할 텐데 이미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잠이라도 개운하게 자야 조금이라도 나은 컨디션으로 출근할 수 있는 노릇이기에 간신히 몸을 일으켜 샤워를 했다. 자려고 눕고 보니 5시간 정도 잘 수 있는 시간이 나왔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벌써 출근길 빽빽한 군중 속에 몸을 꿰맞출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침에 30분을 더 자고 택시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닝콜을 30분 뒤로 늦추자 5시간 30분의 수면시간이 확보됐다. 약간의 위안을 뒤로한 채 바로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택시를 타고 출근하는 중 갑자기 명치 쪽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몸을 웅크려 명치를 움켜잡아도 고통이 도무지 가시질 않았다. 너무 아픈 나머지 순전히 고통 때문에 눈물이 뚝뚝 흘렀다. 바로 병원에 갈법한데 그때는 바보같이 회사에 가서 상황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회사에 도착해 상사를 찾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증상을 말하자 당황하며 근처 병원을 차로 데려다주셔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위경련이었다. 진경제를 맞고 수액을 맞으며 잠시 쉬었고 회사에서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쉬라는 연락을 받았다. 밝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려니 어색했다. 돌아가는 길 차창에 고개를 기대고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 문득 전날 보았던 골목이 보였다. 이내 전날 술 취해 비틀거리는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 아저씨도 무척 버거웠구나 싶었다. 일이 고됨을 차마 해결할 길이 없어 뭐라도 붙잡을 게 필요했나 보다 싶었다.
일이라는 게 힘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일임은 틀림없다. 그 이후로도 힘에 겨워 몇 번을 비틀거리고서야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네 고단한 삶이 보다 조금 더 깊이 와닿았다. 각자의 사연 속에서 애쓰며 비틀거리는 수많은 어른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가여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하체 운동을 하며 힘겹게 집으로 향하는 길도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는 모습 속에서 더욱 건강하고 강한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일도 마찬가지다. 힘든 순간 속에서 성장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비록 그 순간은 고통스럽고 지칠지라도 성장의 과정이 우리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과정이라 믿는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의 비틀거림에 좀 더 측은한 시선을 더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