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이나 퇴사에 대한 고민이 생긴 친구들이 종종 내게 연락을 해온다. 잘 지내냐는 짧은 안부 인사와 함께 본론으로 들어가 쉬면서 주로 뭘 하는지, 무엇을 따로 준비하고 있는지 등에 관하여 묻는다. 한창 일해야 할 때에 오랜 기간 태평하게 놀고 있는 나를 보면서 '도대체 쟤는 어떻게 저렇게 맘 편히 쉬는 걸까?'에 대해 궁금해하는 눈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어라도 참고 거리를 찾는 과정의 일부인듯하다. 개인의 상황이라는 것이 모두 다른 처지이기 때문에 내 대답이 영 석연치 않을 줄 알지만 성심성의껏 내 삶을 나눠본다.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뭐 특별한 건 없네?'와 같은 반응이다. 상황을 반전시킬 대단한 사건으로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이 아닌 누구나 알법해 특별한 것 없는 일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자신하건대 이런 사소하고 단출한 일상이 나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고 단단하게 만들어 성장시키고 있다. 퇴사 후에도 나의 일상을 건강하게 붙들어주는 활동을 몇 가지 소개해 보려 한다.
퇴사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운동이다. 바로 시작한 운동은 수영과 헬스인데 운동이 내게 준 유익이 지대하다. 먼저는 하루를 여는 루틴이 되어 일상의 규칙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월수금 오전 9시 수영 강습반을 등록하니 늦어도 8시에는 일어나야 수영복을 챙겨 집 앞까지 오는 셔틀버스를 탈 수 있었다. 화목 오전 9시에는 PT를 받아야 했기에 마찬가지로 8시에 일어나 씻고 간단한 끼니를 한 후 운동복을 챙겨 후 PT 샵에 갔다. 그렇게 퇴사하고도 평일 아침 9시에 꾸준한 일정이 잡히니 일과의 시작이 늦잠으로 늦어지는 일이 없었고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운동을 통해 성장의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힘겹던 자세나 무게도 지도에 따라 반복하고 숙달되어 가면서 익숙해졌고, 점점 잘 수행할수록 성취의 즐거움이 커졌다. 그렇게 꾸준히 운동의 비중을 늘려가다 보니 재밌게도 되레 일에 대한 건강한 방향성이 생겼다. 근육이 성장하고 기술을 습득하고 게임에서 승리하는 원리가 비단 운동뿐 아니라 일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바로 공부다. 자격증 습득이나 스펙을 쌓기 위한 공부가 아닌 나를 더 잘 알기 위한, 좀 더 나답게 살기 위한 공부를 했다. 특별한 교육과정이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책을 읽고,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글로 써 내려갔다. 매일 운동을 하듯 꾸준히 읽고 쓰기를 이어갔고 퇴사 후 몇 달 되지 않아 짧은 에세이를 독립 출판으로 발행할 수 있었다. 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뚜렷한 목적을 가진 독서를 지향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저자의 마음을 글로써 탐닉하는 즐거움이 이미 충분히 삶의 충만함을 더해주었다. 다만 정보의 방향성이 편향되는 것을 막고자 되도록 다양한 종류의 서적을 읽었다. 경영 경제 서적을 읽었으면 다음에는 소설을 읽고, 그다음에는 평론가의 에세이를 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 한 책을 반드시 다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여러 책을 동시에 보는 병렬적 독서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들도 여러 권 생겼다. 다만 독서라는 행위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습관이 충분히 일상에 정착되었다. 독서는 내게 세상의 광활함에 대한 겸손과 타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공감을 배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수단이다. 또한 글쓰기를 통해 암묵지적인 생각들을 형식지화 할 수 있도록 훈련할 수 있었고 그렇게 쓰인 글들은 내 행위의 기반이 되어주었다. 예를 들어 균형 잡힌 삶에 대한 워크숍을 준비하거나 관심이 있는 커뮤니티 등록을 위해 지원을 할 때도 모두 글을 쓰는 일을 시작으로 활동이 시작될 수 있었다.
퇴사하고 무엇을 했냐? 그 기간을 함축하여 표현하자면 몸과 마음을 돌보는 훈련을 했다 하겠다. 잘 운동하고 잘 먹고 잘 자면서 몸을 챙겼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마음을 챙겼다. 몸과 마음을 성실하게 꾸준히 돌보다 보니 삶의 의욕이 충만해졌고 더욱 나답게 세상을 살아 나갈 다짐이 생겼다. 세상에서 빗겨나가 도태되었다는 좌절감보다 앞으로 이어질 내 세상을 풍요롭게 가꿔나가자는 결심이 자랐다. 단출하고,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단단한 일상을 통해 얻은 다정함이 풍성하게 피어났다. 그 덕분에 앞으로는 지금 내 눈에 밟히는 그 사람을 위해, 내 손에 닿는 그 사람을 위해, 내 마음에 머무는 한 사람을 온전히 섬길 수 있는 사랑을 나누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