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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Nov 28. 2021

발리섬 할매들한테 제대로 당하다


인도네시아 발리에 출장 갔다가 일요일이라 일정이 없어 아침에 혼자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지요. 유명한 발리의 '구따비치'였습니다.

바닷가까지는 숙소에서 걸어서 한 20분 거리였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길거리는 차와 스쿠터만 가득할 뿐 좀처럼 사람은 보이지 않더라고요. 숙소를 나올 때 그쳤던 비가 모래사장을 걷고 있는데 또 내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는 겁니다. 무작정 가게로 뛰어들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신전 비슷한 형태의 조그만 건물(원두막 크기 정도)에 할매들이 7,8명 비를 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옳다구나 싶어 무작정 뛰어들어갔지요. 

마사지도 해주고 조그만 기념품 같은 것을 파는 할매들이더라고요. 

할매들은 반색을 하며 마사지 마사지를 외치며 벌떼같이 달려들더라고요.  마사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어떤 할매는 옆에 바짝 붙어 서서 팔과 목덜미를 주무르기까지 하더라고요. 소나기는 계속 쏟아지고 있어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이런저런 대꾸를 하자니까 한 할매가 내 손톱을 유심히 살피더니 손톱을 깎으라는 겁니다. 짧지 않은 여행에 손톱이 꽤 길게 자라 있었거든요. 그냥 비를 피하며 가만히 서있기만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얼마냐고 물었지요. 2백이라는 겁니다. 아주 싼값이라 생각되어 손톱을 깎아달라고 했지요. 신이 난 그 할매가 손톱을 자르기 시작하자, 다른 한 할매는 옆에 붙어 서서 손톱을 다듬고 또 다른 할매 한 사람은 뭔가를 손톱에 바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 건 바르지 말라고 했지만 그러든 말든 이쁘다며 바르는 걸 멈추지 않더라고요. 손톱깎기를 끝낸 할매는 길게 자란 내 흰 눈썹을 가리키더니 자르라고 하는 겁니다. 까짓 몇 푼 더 되겠나 싶어 잘라달라고 했지요.

손톱을 자르는 옆에서 끊임없이 마사지, 마사지를 외치며 마사지를 채근하는 할매가 또 한 사람 있었는데요. 그 할매는 묻지도 않는데 처음에는 20만 루피아를 부르다가 반응이 없자 10만, 5만, 마침내는 2만 5천까지 값을 내리더라고요.

황당한 상황은 그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손톱과 눈썹 자르기가 끝난 것 같아 2만 루피아를 건넸지요. 처음 할매가 2백이라고 한 걸 난 2천으로 들었고 그래서 할매가 말했다고 생각한 가격보다 10배나 많이 준다고  것이지요. 그래 봐야 2천 원이 안 되는 돈인데 할매들에게 선심이나 쓰자 싶었던 것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손톱을 잘라준 할매가 뭐라고 뭐라고 외치며 돈을 도로 돌려주는 겁니다. 너무 많이 줘서 그러나 싶어 나머진 팁이라고 했지요. 그게 아니고 30만 루피아를 달라는 겁니다. 원래 손톱깎기와 손톱 다듬기는 20만루피아지만 눈썹까지 잘라줬으니 30만 루피아(2만 4천 원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처음에 2백 루피아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항의를 했지만 막무가내 30만 루피아라는 겁니다. 여기 사람들은 가격을 말할 때 뒷자리 천은 빼고 말하는 버릇이 있는 걸 내가 깜빡했던 거지요. 할매는 뒷자리 천은 빼고 2백이라고 말했는데 난 그걸 2천이라고 들었고 손톱 깎는데 그 정도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손톱을 깎아달라고 했던 것이지요. 말이 제대로 통하지도 않는데 실랑이를 계속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상황에 이른 거지요. 너무 비싸니 값을 깎자고 해 봤지만 그게 어디 통하겠어요? 이미 잡은 봉인데 놓칠 리가 없지요. 절대 안 된다고 거듭거듭 돈을 내놓으라고 막무가내로 채근을 계속하더라고요. 그냥 고스란히 30만 루피아를 뜯기고 말았지요. 외국에 나가면 화폐 단위가 다르기 때문인지 얼마 되지 않는 돈도 엄청 커 보이잖아요? 3만 원이 아니라 30만 원을 뜯긴

기분이더라니까요. 이 지역 일용직 노동자들의 하루 일당이 10만 루피아 정도라고 하니 3일 치 일당을 5분도 안 돼서 두 눈 뻔히 뜨고 그냥 할매들한테 뜯긴 거지요.

그 와중에도 마사지 할매는 끊임없이 마사지, 마사지를 집요하게 외쳐대고 있었고요.

그 할매들도 미안했던지 어디선가 비닐 비옷을 구해와서는 입혀까지 주면서 선심 쓰듯이 공짜라고 입고 가라고 하더군요. 그때까지 소나기는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거든요. ㅎㅎ 할매라고 우습게 봤다가 아침부터 한 방 제대로 맞았네요.

근데 코털 깎자는 소리는 않더라고요. 오랫동안 코털을 깎지 못해 코털이 아주 흉측하게 코 밖으로 자라있었 거든요. 코털마저 깎았다면 아마 50만 루피아는 그냥 뺏기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할매들한테 당해서 그런지 그렇게 기분이 많이 나쁘지는 않더라고요. 좀 애교스럽다고 할까 뭐 그런 기분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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