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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나지행 Nov 16. 2019

#11. 오버 스테이 7개월 만에 목표를 달성하다

이제 한국에 돌아갈 수 있어!

감사함을 알게 되니 힘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부킷 빈탕(우리나라의 이태원과 유사한 곳)에 저녁 미팅을 하러 간 날이다.

우연히 우리나라의 지하철 같은 MRT 앞을 지나갔다.

한 가족들이 구걸을 하고 있다. 아기 엄마가 갓난아기를 젖을 먹이고 있었고 그 옆에 줄줄이 어린애들이 앉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때 내겐 현금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손이 갔다.

우리나라 돈으로 5000원 정도를 꺼냈다.

아이 젖을 먹이고 있는 엄마에게 쥐어주며 어디선가 들은 건 있어서 이렇게 말했다.

“Jesus give you.”

     

그 돈을 받은 아기 엄마의 행동에 나는 순간 멈칫했고... 그다음은 온몸에 닭살이 돋기 시작한다.

아이 엄마는 지폐에 입을 맞추며 내게 말했다.

“god bless you.”

몇 년 전 갓 블레스유에 대해 내가 아이돌 그룹을 만들 때 그 친구들에게 한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너희가 데뷔하고 큰 무대에 서면 이렇게 꼭 얘기해줬으면 하는 게 내 꿈이야...

god bless you.”


그 얘기를... 몇 년이 흐른 후 우연히 길을 가다 아이 젖을 먹이던... 거리를 헤매고 있는 가족에게 듣게 되었다.

온몸에 전율이 온다... 길에서 구걸을 하던 아이 엄마가 나 대신 나를 축복해주는데.. 

이 쾌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이후로 재미가 들려 버렸다. 주말이 되면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나가서 

정말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힘든 이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선한 행동을 하려는 게 아니라 작은 돈이지만 그들을 도울 때, 그들이 나를 축복하는 기쁨이 더 컸다.


여느 날처럼 주말의 루틴을 진행하러 부킷 빈탕의 야외 레스토랑에 앉아있는데 할머니 한분이 오신다.

"배고파요.. 돈 좀 주세요." 

그러면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친구에게 귓속말로 묻는다. "저분 진짜야 가짜야?" 

현지인 친구가 '진짜야'라고 얘기해주면 나는 무조건 돈을 주는 식이다.


할머니께 "빵 사드세요." 하며 돈을 드렸다. 정말 그 할머니는 슈퍼에서 빵을 사서 손에 쥐고는 내게 말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나는 다시 내 친구에게 호들갑이다. 

"들었지? 들었지? 또 신의 축복이 나한테 있으래. 나 너무 좋아~도대체 하루에 몇 명이 나를 축복하는 거니? 너무 행복하다~~"


안다. 나도 변태인 거... 하하하 그런데 어째 신의 축복이 정말 있을 것처럼 기분이 너무 좋다고!!


새로운 로컬 파트너들을 만나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안 연합 사업 파트너들을 만나다


반가운 이메일 하나를 받았다. 싱가포르에서 3년 전 사업 파트너들을 찾아 헤맬 때 보냈던 메일의 답장이 

이제야 왔다. 미팅을 하고 싶다고... 

미팅은 성공적이었다. 젊은 사업가들의 조합이었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안 중국계 친구들이었다.

마케팅과 경영, 자금조달 능력이 골고루 풍부한 친구들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이해를 아주 잘하고 있었다.

그중 나를 많이 챙겨주었던 친구는 싱가폴리안이었는데 첫 미팅이 있은 이후 우리는 매일 통화를 했다.

나는 그동안 파트너들을 찾아 헤매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얘기했고 그 친구는 

이제 우리들이 있어 너는 적어도 안전하니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 라며 

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안 조합에 대해 덧붙여 설명하기를 

"우리는 돈을 빨리 벌어야 돼. 3년 후에 형편이 어려운 애들을 위해 학교를 짓는 꿈으로 만났거든."

라고 말을 하는데 더 따뜻해졌다.


"나도 그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싶어."

나는 미팅을 위해 앤드류의 차를 타고 4시간씩 걸리는 조호바루로 이동하곤 했다.


나는 쿠알라룸푸르에 있었고, 말레이시안과 싱가포르 2개국 친구들이 함께 만나야 했기에 우리는 조호바루(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국경에 있는 지역)에서 이후 종종 미팅을 진행했다.

그 친구들이 내 항공권을 끊어 보내준다고 하면 나는 극구 사양을 하며 앤드류에게 부탁을 했다.

domestic이면 오버 스테이가 걸리진 않을 거라고 해도 내가 무서웠기 때문에 (가여운 내 친구 흑흑) 앤드류를 괴롭혔다. 한국의 서울-부산 거리를 생각하면 된다. 앤드류의 차를 타고 나는 미팅을 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앤드류가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친구라고 가정했을 때 그냥 친구일 뿐인데 내가 그렇게 도와줬을까 싶다...

조호바루에서 미팅을 하면 그 친구들은 나를 위한 와인과 고급 레스토랑 그리고  회의가 길어지면 쉬었다 갈 수 있는 호텔까지 예약을 해놓곤 했다.



이런 대접 정말 오랜만이다. 그들은 계약서를 쓰고 일을 빨리 진행하자고 제안한다. "제니 워크퍼밋도 있어야 네가 편할 거야. 우리가 만들어줄게." 

'왜 이런 사람들을 이제야 찾게 된 거지? 휴우...

하지만 현재 오버 스테이 상태라고 말할 수가 절대 절대 없어. 그 사실을 알면 저들은 나와 일을 하지 않을 거야.'


그들이 계약 얘기를 하면 나는 

"곧 한국에 들어갔다 와야 돼. 한국에 들어가면 그때 계약서 작성하자." 이렇게 계약 날짜를 미루고 일부터 진행하자고 역 제안한다.

"우리가 너 돈 안 주면 어쩌려고 그래?" 우스갯소리로 그들은 말하지만 

일부터 진행한 후 그들이 내게 배당하지 않고 날 배신해도 상관없다. 

그러지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며 이런 편한 마음과 희망...

너무나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거라는 용기와 확신...



드디어.... 한국에 돌아갈 수 있는 거?



어느 날 앤드류가 연락이 왔다.

“제니! 중개인을 찾았어. 여권 보내줘. 견적 받아올게.”

“응?? 정말? 아... 살았다. 지금 보낼게. 언제까지 되는지 알려줘. 거기에 맞춰서 티켓팅 할게.”

     

아... 드디어... 내가 한국에 갔다 올 수 있구나...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거야! 다시 시작한다. 레쓰고~


나는 오버 스테이를 결정하고 6개월 만에 새로운 현지 사업 파트너들을 찾았고,

7개월 만에 블랙리스트를 지워줄 중개인을 찾았다.

앤드류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극심한 고통과 외로움을 겪어야 했지만 결국에는

오버 스테이를 결정할 만큼 간절했던 그 목적을 달성했다.


거기에 더하여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화려함만 쫒던 내 인생에서 힘든 사람,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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