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넌 멋진 여성이야. 알아?
내 인생은 실패작. 꿈과 희망을 가지라던 어린 시절 교육은 새빨간 거짓이다
두 번째 만난 중개인도 돈을 받아간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정말 혼자다.
어디서부터 내 인생이 꼬여서 여기까지 왔을까?
스트레스와 긴장감. 오랜 기간 지속된 충격으로 몸이 점점 안 좋아진다. 한국어를 가르치러 나갈 수도 새로운 현지 사업 파트너를 찾기 위한 미팅을 다닐 힘조차 없다.
'나... 이렇게 있다가 경찰에 체포되면 추방되면 이제 이 나라 평생 못 오게 되는 거지?
안 오면 되는 건가? 아 몰라 모르겠다..'
현실감각은 점점 떨어지고 살기 위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 속 판타지속에 갇힌 시간만큼은 현실을 망각할 수 있으니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개봉했던 오래된 영화 빠삐용을 본다.
살인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빠삐용의 목숨을 건 탈출이 남의 얘기 같지 않다. 와 닿기 시작한다.
어떻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영화를 보다 이렇게 잠이 들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두렵지 않을 테니까... 1분 1초가 이렇게 두려운데...
한국이 경기가 안 좋다지만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나처럼 두려움 속에 살고 있진 않겠지?
그리운 한국 음식 먹으며, 친구들도 만나고, 가족들과 오손도손 행복하겠지?
이제야 가족들이 생각난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
하지만 연락할 수도 없다. 그때는 그랬다. 그런 마음이었다...
두 번의 사기를 당하고 몸이 아파 프리랜서로 하던 한국어 레슨을 못하니 돈도 떨어져 간다. 너무 답답한 주말에 나 홀로 밥과 차를 마실수 있는 곳에 나왔다.
‘돈을 아껴야 돼...’
처음 아시아권 나올 때 냄새나고 쥐 나오고 지저분하다며 거들떠도 안 보던 야외 호커 센터(야외 푸드코트) 에도 이젠 잘 간다. 들어가 자리를 잡고 정말 맛없는 그 나라의 블랙커피와 호켄미를 시킨다.
그 두 개를 시켜도 우리나라 돈으로 3000원도 안된다.
'내가 가진 돈이 바닥이 나는 순간 나는 객사를 하게 되는 건가? 내가 퍼밋도 없는 데다 무엇보다 오버 스테이라는 것이 걸리면 프리랜서 강의 일도 시켜주는 곳은 없겠지? 아... 우울하다.. 아니 우울도 사치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다 내 인생은 이렇게 종결한다. 어린 시절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라고 했던 가르침은 대체 어른들은 그 가르침에 책임감을 가지고 가르쳤던 것일까?
왜 책임감도 없이 그런 가르침을 주었나?
꿈과 희망으로 열정을 가졌기에 망한 내 인생이 여기 있는데... 그 증거가 여기 있는데...
그냥 내 인생은 끝났으니까...
사람 구경을 하니 숨은 좀 쉴 것 같다.
주말이라 그런지 옆 테이블들에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한참 관찰을 해본다.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넉넉하지 않아 보이는데도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부럽다.....
눈물이 난다. 가족들과 주말마다 외식하며 자랐던 나의 성장기가 그립다.
거의 매일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던 화기애애함이 그립다.
그 모든 과거 시간들이 그립다... 그런데... 지금.. 나는 혼자다.
앗! 근데 나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한 명이 있구나!! 앤드류에게 문자를 남겼다.
"나... 사람과 대화가 너무 하고 싶어..."
앤드류는 말레이시안 중국계 친구였으며 나이가 나보다 많더라도 매우 순수했고 미안한 친구이다. 열심히 살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처자식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왔고 지금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앤드류는 당시 내 사정을 알았고 현실적으로 나를 도울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지만 마음으로는 늘 나를 돕고 싶어 했다.(아직도 그 마음은 늘 감사하다) 난 그땐 나와 대화를 해줄 수 있는 친구 있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그는 천사였다. 그리고 나는 악마였다. 소니뮤직 말레이시아와 연결해줬던 친구도 그 친구였다.
하지만 나는 화려함만을 쫓아 부와 사회적인 포지션을 가진 친구들을 통해 사업가들을 찾으려고 했을 때 앤드류에게 연락도 잘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친구는 자신이 아파보았던 경험이 있는 친구였기에 내가 힘들다는 말을 하면 달려와서 위로를 해주고 가곤 했다.
그날은 앤드류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앤드류는 말없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제니! 넌 멋진 여성이야 알아?
한참을 울고 나니 배가 고프다. 역시 사람이 앞에 있으면 난 단순하다.
”andrew~i’m hungry~“
앤드류는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말한다
”you wanna fish? “
앤드류는 내가 스팀 피시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태국 요릿집에 나를 데려갔다. 맛있는 커다란 생선을 아구아구 먹는다.
밥을 먹으며 앤드류는 얘기한다.
”jenny~you are great woman you know? “
제니 넌 멋진 여성이야 알아?
뒤이어간 그의 말들로 인해 용기라는 아이가 다시 나를 노크했다.
”제니 넌 진짜 멋진 여성 사업가야. 평범한 여성이라면 너처럼 용기 내서 해외에서 그렇게 도전하고 시도할 수가 없어. 난 너의 용기가 정말 대단해. 그리고 꼭 잘될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아. 그리고, 내가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오히려 내가 미안한걸.... 너 힘든데 나는 짐만 되는 친구고... 근데 나 딱 하나만 부탁하면 안 될까? 중개인 좀 알아봐 줄 수 있을까?" (내가 힘드니 뻔뻔함도 불사한다 )
"어? 너 그때 중개인 찾지 않았어? 해결안 됐니?"
"돈 받아가고 잠수 탔어..."
"오 마이 갓... 제니야... 내가 미안해... 몰랐어 그래서 더 힘들었구나. 내가 알아봐 줄게."
앤드류는 그날 나에게 너무나 미안해했다. 외국에서 온 친구에게 이렇게 믿고 잘해줄 수 있을까?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그날 난 앤드류와 헤어지고 다시 용기를 얻었다.
'그래... 다시 힘내자.. 그리고 앤드류 말대로... 맞아... 나 나름 멋진 사람이었잖아? 어떤 여자애가 이렇게 돌진할 수 있어? 그래! 난 제니야!!!’
내가 불면증 없이 이렇게 편하게 잘 수 있다니... 앤드류를 오랜만에 만나고 나는 며칠간 너무나 편안한 숙면을 했다. 일찍 잠들다 보니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나 이제부터 다시 움직일 건데 하늘에 기도를 해보자. 나 대화할 사람도 없는데 누군가는 듣겠지. 그리고, 내편이 돼주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새벽에 한인 교회를 찾아갔다.
(나는 얘기했던 것처럼 교회를 나가지는 않았었지만 모태신앙이었다)
새벽기도는 목사님, 그리고 사모님, 나밖에 없었다.
엄청나게 눈물을 쏟고 왔다. '아 시원하다~~ 이건 카타르시스다!'
억눌린 감정을 모두 표출하고 오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심지어 목사님 내외께서 새벽인데 위험하다며 나를 집 앞까지 태워다 주신다.
‘아... 얼마 만에 한국인들에게서 느껴보는 따뜻함인가... 또 눈물이 핑 돈다. 혼자 감당할 일들이 지속된 채 지내다 보니 작은 거에도 크게 감동한다.
감사함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게 있다면 용서해주세요
그 이후 나는 새벽마다 기도를 하러 갔고 그때마다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고 왔다.
그렇게 시작한 아침은 내게 용기를 주어 움직이게 했고 다시금 미팅을 다니게 만들었다.
감사함을 알게 되니 사고에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